생명윤리관련 연구자연대, 낙태죄 페지 찬성 성명서 발표
생명윤리 관련 연구자들이 낙태 반대만이 생명윤리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며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고 나섰다.
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철학·신학 연구자연대는 14일 성명을 통해 “낙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보다 성숙해지고 제도적인 개선의 결실로 이어져 수많은 여성들이 처벌의 공포와 죄의식이라는 삼중의 굴레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한다”며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다.
연구자연대는 “형법상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면 반생명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이에 반대하는 것만이 윤리적, 신학적으로 올바르다는 주장은 편협하고 일방적”이라며 “이는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생명윤리학과 철학, 신학의 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구자연대는 “낙태가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이를 국가의 법률 조항에 넣어 모든 낙태를 일괄적으로 규제하고 처벌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일부 생명윤리론자들의 주장이 전체 생명윤리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자연대는 “물론 낙태죄 폐지 주장이 곧 모든 낙태를 윤리적으로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낙태를 통해 고통받는 여성을 형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여성에게만 가혹한 불공정한 일이며 낙태를 불법으로 단죄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길이 아니라는 것에 모두 동의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 연대는 그동안 낙대에 대한 다양한 윤리적 담론들을 공론의 장에 풍부하게 제공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며 이제라도 다양한 견해와 주장들을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흑백논리와 선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낙태죄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과 제도 개선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낙태 반대만이 생명윤리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
2017년 9월 30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이후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이 청원은 한 달 새 23만여 시민들의 지지를 모을 만큼 주목을 받았으나 일부 종교계를 비롯한 반대의 목소리도 그만큼 높았다. 우리 ‘낙태죄의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철학•신학 연구자 연대’는 낙태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서, 이번 기회에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결론이 내려지기를 소망한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과거의 엄격한 낙태 규제법을 다양한 규정과 제도를 가지고 대체해 왔던 반면,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의 낙태 금지조항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73년 정부 주도 가족계획 정책의 일환으로 몇몇 제한된 경우에 한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규정을 모자보건법에 두기는 하였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여 대부분의 낙태시술이 불법으로 규정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현실과 법의 괴리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을 뿐 아니라 의료인의 전문직 윤리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실, 생명윤리학계에서는 서구에서 등장한 다양한 이론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과 사상에 입각하여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낙태에 대해 전향적인 견해를 표명해 왔다.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뜨거운 낙태죄 폐지 요구에 대하여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생명윤리론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이 또한 하나의 학문적 견해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낙태가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이를 국가의 법률 조항에 넣어서 모든 낙태를 일괄적으로 규제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주장이 전체 생명윤리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시작된 변화의 흐름이 행여 꺾인다면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낙태죄의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철학•신학 연구자 연대’는 그동안 낙태에 대한 다양한 윤리적 담론들을 공론의 장에 풍부하게 제공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며, 이제라도 다양한 견해와 주장들을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이를 통해 낙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보다 성숙해지고, 나아가 제도적인 개선의 결실로 이어져, 이로 인해 커다란 심신의 고통을 겪은 수많은 여성들이 처벌의 공포와 죄의식이라는 이중 삼중의 굴레에서 해방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서명자 명단 강명신(강릉원주대 교수, 철학/생명윤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