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구로병원 신정호 교수, '폐경호르몬요법 효과 방해' 지적

많은 갱년기 환자들이 복용하고 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의 일반의약품들과 건강기능식품들이 폐경호르몬요법(Menopausal Hormone Therapy, 이하 MHT)이 꼭 필요한 60세 이전 환자에게서 MHT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갱년기 치료제 시장에서 판매되는 일반의약품은 동국제약 '훼라민큐', 종근당 '시미도나', 녹십자 '훼미그린' 진양제약 '지노플러스'와 '지노큐에스', 한국넬슨제약 '진플러스', 아주약품 '레미페민', 조아제약 '에로스트' 등이 있다.

이들 제품들은 비호르몬 치료법으로 식물성 에스트로겐인 승마, 이소플라본, 레드클로버 등의 생약 추출물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다. 이중 훼라민큐는 한 해 5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다.

건강기능식품 가운데선 지난 2015년 가짜 원료 파동으로 논란이 불거졌던 '백수오' 관련 제품이 2016년 기준 80여개가 출시돼 있다. 백수오 제품은 가짜 원료 논란 이전인 2014년 1,000억원대 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갱년기 여성을 타깃하는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석류농축액, 석류추출물, 회화나무 열매추출물 제품은 지난해에도 175억1,000만원이 판매되는 등 많은 폐경 여성들이 갱년기 증상 관리를 위해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의 일반약 혹은 건기식을 선택하고 있다.

반면 학계에서는 이같은 약물들에 대한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부 증상완화를 보인 연구에서도 결과의 일관성이 부족했던 만큼 MHT에 비해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고대구로병원 신정호 산부인과 교수(대한폐경학회 홍보위원장)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이 60세 이전 폐경 환자들의 갱년기 증상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MHT의 효과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고대구로병원 신정호 교수

지난 9월 미국의학협회지(JAMA)에는 MHT가 60세 이전 젊은 폐경 여성 환자의 사망률을 31% 감소시킨다는 여성건강연구(Women’s Health Initiative, WHI) 결과가 발표됐다.

MHT가 유방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내용으로 의료계를 뒤흔든 2002년 발표 연구에 대한 13년간의 장기추적관찰 연구결과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지원한 이 연구는 50~79세 환자 2만7,34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가 60세 이전 환자에서의 MHT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 증상 관리를 하는 60세 이전 환자들은 해당 약물을 중단하고 MHT를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그간 몇차례 발표된 후속연구를 통해 60세 이전 환자에서 MHT의 임상적 유효성 및 안전성이 강조돼 왔다. 유방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가 여전히 많은가.
많다. 병원에서 MHT 치료제를 처방 받은 환자도 몇달 뒤 약을 안 먹고 있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들어보면 전문가가 아닌 주변의 일반인들에게 카더라 통신으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듣고는 증상을 참고 복용을 멈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일반약·건기식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MHT와 병행해도 괜찮나.
(일반약·건기식은) 대부분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사용하는 것인데,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심장이나 뼈, 혈관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거의 없다. 단지 안면홍조 즉,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만 조금 감소시켜주는 거다.

여성호르몬으로 일하는 수용체는 알파 수용체와 베타 수용체 두 가지가 있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주로 베타 수용체에만 작용을 하고 알파 수용체에는 작용을 잘 못한다. 근데 핵심적인 역할은 바로 알파 수용체에 있다. 때문에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성호르몬은 골다공증에도 도움이 되고 혈관도 유지시켜 준다. 반면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아무리 먹어도 뼈가 튼튼해지거나 혈관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MHT와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병행하면 MHT 효과를 떨어뜨린다.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가지고 경쟁을 하기 때문에 두 약물의 효과가 다 떨어지는 셈이다. 보조제로 쓴다고 해도 보조제가 오히려 실제 약을 방해하는 격이다. 갱년기 관련 시장이 규모가 크다는 것은 갱년기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효과가 없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2002년 연구에서 유방암 이슈는 무엇이 문제였나.
MHT는 자궁근종 등으로 자궁을 적출해 자궁이 없는 환자에게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쓴다.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은 유방암 위험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2002년 발표 당시에도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에 대해선 긍정적인 내용(유방암 사망위험 45%↓, 투약 중지 이후에도 효과지속)이 많았지만, 부정적인 이슈에 묻혔다.

문제가 된 것은 당시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던 MPA(medroxyprogesterone acetate)라는 프로게스테론이었다. 자궁이 있는 환자는 자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프로게스테론을 병합해 써야 한다. 이 MPA를 쓰는 그룹에서 유방암이 증가한 거다. 때문에 프로게스테론 중 MPA는 갱년기 치료 목적으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이후 더 안전한 프로게스테론을 찾으려는 노력이 10년 이상 계속돼 왔고 최근에는 프로게스테론을 쓰지 않는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SERM)가 나오기도 했다. 자궁을 보호해주는 프로게스테론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에스트로겐 단독요법과 같이 유방암 위험성이 증가하지 않을 수 있는 거다. 약도 예전(2002년)같지 않다. 달라졌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임상현장에선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환자들조차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가 많다.

- 2002년 이후 13년간의 추적관찰 연구에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
50~59세의 폐경 여성들은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동안 전체 사망률이 31% 감소(에스트로겐과 MPA 복합군은 33%, 에스트로겐 단독군은 29% 사망률 감소)했다. 에스트로겐 단독만 복용하는 군에서 유방암 위험이 감소됐을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와 치매로 인한 사망도 26% 줄었다.

지난 9월 발표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간 5년, 7년 단위의 추적관찰 연구와 달리 2002년 이후 13년, 총 18년의 연구에서도 우려했던 사망률 증가 등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뇌졸중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증가는 없었다. 또한 50~60세는 오히려 사망률이 감소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떤 약이건 사망률을 30% 줄이는 효과를 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02년 당시에도 50~60세에는 MHT가 사망률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18년을 관찰해 다시 한번 확인이 된 것이다. 아울러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군에서 약물을 중단하고 10년 가량이 흘렀는데도 유방암 발생감소 효과가 유지된다는 것도 놀라운 결과다.

핵심은 60세 이전 폐경 여성은 유방암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더 적극적으로 MHT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폐경 증상을 참을 필요가 없다. 폐경 증상(안면홍조, 열감 등)이 심하면 MHT로 인한 이득도 더 커진다.

- MHT를 사용해선 안 되는 환자와 꼭 필요한 환자를 구분해달라.
유방암이나 뇌졸중, 심근경색 등 중증질환이 생기면 MHT를 쓰지 않는다. MHT가 해당 질병의 위험성을 줄여주기는 하지만 실제 병이 왔을 때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는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뇌졸중을 앓았다거나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 등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중단해야 하는 환자도 이같은 병을 진단받은 경우가 해당된다. 또 폐경 이후 10년이 넘어가면 MHT가 부정적일 수도 있다.

폐경은 보통 만 51세 정도에 온다. 45세 이전에 폐경이 오면 조기폐경이라고 보는데, 이런 경우 더 빨리 반드시 MHT를 써야 한다. 조기에 폐경이 온 만큼 심장병 등의 성인병에도 빨리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젊은 폐경 여성일수록 MHT가 도움이 된다. 대한폐경학회에서도 MHT에 대한 인식개선을 가장 큰 과제로 보고 있다. 'MHT' 더 이상 겁낼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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