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의사 양임용 씨의 '내가 경험한 해외 의료봉사,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3)

의대생이거나 의사라면 의료봉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사들에게 의료봉사활동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활동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 여건 등에 떠밀려서는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게 또 봉사활동이다. 그런데 쪽잠을 자면서까지 진료하느라 수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젊은 의사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해외의료봉사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중보건의사로 군복무 중인 양임용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또한 많지 않은 휴가기간을 쪼개어 올해도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청년 의사 양임용 전문의가 해외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다른 의사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선진화된 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 의료진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시골에서도 약을 구하지 못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는 거의 없고 고난이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도 많아졌다. 반면 중증외상 및 응급의료체계 등 개선이 필요한 점들이 노출되고 있고,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곪아 있던 여러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과제들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은 분명히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의료계의 파도속으로 뛰어들기 전 잠시나마 일탈(?)을 꿈꾼 1주일 여의 시간은 어떤 의사로 살아갈지 고민하게 만들었고, 젊은 의사로서 나의 비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의료봉사를 바라보아야 할지 나름으로 정리해보는 시간이었다.

진료대기가 길어짐에도 누쿠스 사람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의료시스템이 현대화되면서 모든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 의학적 체계가 자리잡게 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이 땅에서 의료봉사로 헌신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재능기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이 받았던 그 선물들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해외 의료취약지에서 단기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육체적인 수고에 대한 나만의 뿌듯함으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예전 해외의료봉사는 무상원조나 기부의 개념으로 단순 진료나 수술위주의 접근이 많았고,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국제협력단체들의 경험과 고찰을 통해 우리의 많은 원조나 기부금들이 실질적으로 대상 지역과 현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을 낳게 되었고, 근본적으로 현지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선진 문화와 기술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자발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생산해낼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유수 대학병원과 단체들이 각국 정부와 협약체결을 통해 교육과 지원에 힘쓰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변화된 움직임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선천성 심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를 진찰하는 프렌즈 의료진

가까이 프렌즈 치과팀의 교육 및 구강보건사업 활동을 떠올려보면 의료봉사 단체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깨달을 수 있다. 단순히 의약품을 제공하는 차원에서의 소모적인 활동으로 끝나지 않고 현지의 보건의료정책과 시스템 개선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 정부나 주민들과의 교감이 필수적이고 체계화된 중장기적 계획과 인력 수급이 필요하겠지만, 치과팀을 벤치마킹 하여 우리 종합진료팀 또한 밑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할 단계라고 확신하니 누쿠스를 다녀와서 느낀 감동이나 깨달음은 더 이상 일회성의 만족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덧 시스템과 제도의 테두리에 묶여 ‘의학(Medicine)’이라는 것이 가지는 본연의 고귀한 속성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짧은 시간 타지에서 경험한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의학도로서의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 전공은 내가 제한해놓은 테두리에서만 적용할 때에는 기술(Technique)에 불과할 수 있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겸손한 학문으로써 다가갈 때 그 가치가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청년 의사들이 지금도 쉼 없이 기술과 역량들을 키워나가면서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 중 잠시 멈춰서 힘을 빼고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설정해보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나의 1주일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건강해진 카라칼팍과 누쿠스에 대해 글을 쓰게 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프렌즈 종합진료팀과 누쿠스 소아병원 의료진의 모습

양임용(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총무이사,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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