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해결, 제3의 길] 내과 사례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실시된 지 5년이 넘었다. 그간 이 제도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된 의료사고 감정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의료분쟁해결을 위한 제3의 길을 모색해 보려한다. 본 사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절차에 따라 5인의 감정부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사건개요

흉통, 호흡곤란 및 쉰목소리 증상으로 A내과에서 흉부방사선 촬영 결과 폐암 의심 소견으로 상급병원 권유받아 B대학병원 방문하였으며, 다음날 시행한 CT검사에서 흉부 대동맥류로 진단되어 당일 저녁 대동맥 내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EVAR, Endovascular aneurysm repair, 혈관내 동맥류 재건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사망하였다.

치료과정

환자는 10년 전 폐에 혹이 있다는 소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며, 하루 전 발생한 갑작스러운 흉통, 두통 및 쉰목소리 증상으로 A내과의원에 내원하여 시행 받은 흉부방사선 검사에서 종격동의 좌측에 종괴(mass) 소견으로 상급병원 진료 권유받았다. 같은날 B대학병원으로 의뢰되어 폐암 의심 소견으로 흉부CT 및 뇌MRI 예약하였다.

다음날 15:45 흉부CT 검사에서 대동맥류 발견되어 19:12 전신마취 하에 대동맥 내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 시행 받았다.

중환자실로 이동하여 인공호흡기 적용, 지속적인 신대체요법 (CRRT) 등 집중치료 시행 받았으며, 수술 다음날 00:10경 혈압 및 심박동수 저하되어 심폐소생술 시행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05:30에 사망하였다.

분쟁 쟁점

환자 측: 가슴통증, 두통 및 목이 잠겨 발성이 안되는 등의 증상으로 내원하였으나, 환자를 진찰하지도 않고 이전 병원의 흉부방사선사진만 확인 후 폐암으로 진단하여 아무런 조치 없이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날 응급실 내원하여 대동맥 파열로 확인되어 긴급수술 하였으나 사망하였다.

B대학병원: 환자의 쉰목소리로 인해 주로 보호자(딸)의 진술과 진료의뢰서를 바탕으로 진료하였고, 환자의 과거력(10년 전 폐에 혹이 있었다고 얘기 들음)과 타병원 진료의뢰서를 바탕으로 폐암 의심 하에 확진 및 전이 여부 확인을 위해 다음날 영상검사를 시행할 수 있게 조치하였다. 흉부 CT 확인 후 대동맥궁의 박리 발견되어 응급실 전실하여 흉부외과와 협진 하여 치료받도록 하였다.

감정의견

가. 과실유무

1) 최초 진단의 적절성

환자의 흉부방사선촬영 상 왼쪽 중 폐야에 경계가 좋고 종격동에 닿아 있는큰 덩어리가 보였을 때 고령에서 흔한 질환인 폐암을 가장 먼저 진단으로 고려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폐암인 경우 기침 및 가래 등 호흡기 증상이 동반되는 것이 보통이나 이 건에서 호흡기 증상이 없었고, 종괴 소견의 경우 전종격동 종양 및 대동맥류도 감별진단에 들어가 있다. 대동맥류의 경우 새로운 가슴 통증의 발생은 빠른 팽창, 박리 또는 누출 파열이 임박했음을 의미할 수 있으므로, 이 건에서 하루 전 갑자기 흉통이 있었다는 병력과 10년 전에도 폐에 혹이 있었다는 병력을 고려하였을 때, 폐암 보다는 동맥류의 크기가 점점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드문 병이지만 동맥류의 가능성을 보호자에게 언급하였던 것이 바람직하였다.

2) 수술 시행 이전까지의 조치의 적절성

B대학병원 외래진료에서 폐암으로 의심하고 확진을 위해 흉부CT, 뇌MRI 검사 등을 지시하였으며, 다음날 흉부CT 촬영 후 대동맥류로 진단되어 17:05 응급실에서 수술 전 검사 시행하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에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다고 판단된다.

3) 수술 및 수술 설명에 대한 적절성

동맥류가 크고 환자의 연령이 78세로 고령이어서 개흉 수술 보다 수술 위험이 적은 대동맥 내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을 선택한 것은 적절하였고, 수술에 대한 설명도 동의서에 잘 기재되어 있어 적절하였다고 사료된다.

나. 인과관계

환자의 동맥류는 10년 전부터 서서히 커지다가 흉통이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보아 최근에 크기가 커지고 박리가 더 심하여졌을 가능성은 있으나 오래전부터 존재하여 오던 것으로 보인다. 대동맥 내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을 시행한 후 상태 악화로 사망하였는바, 대동맥류 시술을 외래 방문 당일 시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고령 환자에서 대동맥류에 대한 시술 자체의 사망률이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예후에는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대동맥류 및 대동맥 박리의 진단 지연과 환자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방 Tip.

신청인은 B대학병원에서 진료 시 의료인이 환자를 직접 진찰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의료인이 사진만 보고 폐암으로 단정하고 다음날 검사를 시행하도록 지시한 것에 크게 불만을 표시하였다.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문진 및 환자의 신체 진찰을 시행하고 영상의학적 검사 등의 결과를 참고하여 진단을 내려야 함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아 환자 보호자의 불만을 사게 되었고, 흔히 이러한 불만이 의료분쟁으로 진행되는 실마리가 된다.

진단에 있어서 폐암이었다면 문진상 기침 및 가래의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것이 상례이나 호흡기 증상이 없었고, 흉부방사선촬영 상 좌측에 큰 종괴의 경우 흔한 질환인 폐암의 진단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드문 질환도 감별 진단의 하나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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