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동유럽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어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볼프강 호수 유람선의 종착지 볼프강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

배가 도착한 볼프강 마을은 참 예쁘다. 산록에서 호수로 흘러내리는 산기슭에 들어선 마을은 집집마다 화분을 내놓아 그림 같은 풍경을 더 예쁘게 한다. 이렇듯 예쁜 볼프강 마을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다하우(Dachau) 집단수용소 산하의 수용소가 설치되었었다고 한다. 부두에 내려 언덕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세일트 길겐에서 내렸던 버스가 이곳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소금광산으로 유명한 할슈타드로 간다.

할슈타트는 상부 오스트리아의 오스트리아주에 있는 시장마을이다. 마을 위쪽에 소금세계(Salzwelten)이라는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있다. 할슈타트의 소금생산 역사는 역사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450년에 이르는 초기 철기시대의 켈트부족 등 일리리아 이전 사람들과 연결되는 할슈타트문명을 성립시켰다. 1846년 요한 게오르그 람사우어(Johann Georg Ramsauer)는 할슈타트 인근에서 선사시대의 집단분묘를 발굴했다. 2천여 명이 매장된 1,300개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주거지는 아직 발굴되지 않아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장품으로 미루어볼 때 부유한 생활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므로 당연한 일이었겠다.

소금이 보존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섬유, 목재, 가죽 등이 잘 보존된다. 따라서 광산에서 사용하던 신발, 천조각, 배낭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도구 등이 보존되어있었다. 고고학자들은 할슈타트광산에서 출토된 유물을 분석하여 기원전 12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의 할슈타트문명을 4단계로 구분하였다. 기원전 1,200년부터 1,000년까지의 할슈타트A와 기원전 1,000년부터 800년까지의 할슈타트B의 시기는 초기 켈트족의 른필드(Urnfield)의 청동기문화에 해당한다. 기원전 800년에서 650년에 이르는 할슈타트C와 기원전 650년에서 475년에 이르는 할슈타트D는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할슈타트 C 시기에 발굴된 청동 유물에 섞여 철검이 처음 등장했다. 할슈타트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라인’이 있다고들 한다. 4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파이프라인은 13,000개의 통나무의 속을 파내서 연결한 것이다. 1890년 할슈타트 서쪽 강가에 있는 바위를 폭파하여 길을 내기 전까지는 보트를 타거나 산등성이의 좁은 산길을 통해서만 할슈타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1)

주차장에서 바라본 할슈타트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좌), 비탈에 세운 집들이 참 재미있다(중)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서 있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마을 사람을 위한 기림비(우)

호수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터널을 지나고 바로 호수가 주차장에 섰다. 버스에서 내려 호수로 다가서는 순간, 쏟아져 내릴 듯 높다랗게 곧추선, 표고 3000m에 달하는 다흐슈타인 산(Dachstein)의 산자락 끝에 겨우 의지해서 들어선 아담한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흔히 비탈에 들어선 집에서는 앞집 때문에 전망이 가릴 수도 있지만, 이 마을은 그럴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호수 위로 걸쳐서 만든 듯하다. 마을 초입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을 사람들을 기리는 탑이 서 있다. ‘죽은 사람을 기리고 살아있음을 상기하자(den toten zu gedenken den lebenden zur mahnung)’라는 의미의 글귀가 다가온다.

할슈타트 박물관 입구(좌), 박물관 뜰에 서 있는 람사우어의 동상(우)

유람선이 닿는 부두를 지나가면 시간여행으로 이끄는 계단을 지나 할슈타트 박물관을 만난다. 할슈타트 박물관(Hallstatt Museum )은 1844년 시모니 (Friedrich Simony)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할슈타트 소금광산을 중심으로 하여 발굴된 선사시대로부터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이다. 시모니와 람사우어 등 할슈타트문화를 탐색하는 고고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할슈타트 박물관은 할슈타트의 역사적 발전과정, 민속, 일과 공예는 물론 상부 오스트리아의 개신교 공동체와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전시하고 있다.(2) 박물관의 뜰에는 1846년 할슈타트에서 선사시대의 집단분묘를 발굴한 람사우어의 동상이 서 있다.

요세프황제와 엘리자베트황후의 방문기념 식수대(좌), 할슈타트 중앙광장(중), 할슈타트 중앙광장에 서있는 성삼위일체탑(우)

더 올라가면 합스부르크제국의 프란츠 요세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방문을 기념하는 식수대가 있다. 그리고 중앙광장에 이른다. 그리 크지 않은 중앙광장은 역시 예쁜 집들이 둘러 서있다. 중앙광장 가운데 1744년에 세운 성삼위일체탑이 서 있다. 그런데 탑을 세운지 6년이 지난 1750년 지금의 카페 데블(Café Derbl)이 있던 케페르백(Keferbäcks)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35개의 집이 타고 4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있었다고 한다.(3)

할슈타트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惠州)에서는 1조 1천억원을 들여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한 할슈타트를 복제하듯 옮겨지었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할슈타트 마을이 발끈하였는데, 중국관광객들이 원조 할슈타트마을을 보려고 몰려들자 그만 누그러지고 말았다는 뒷소문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후이저우 하슈타트어(哈施塔特)를 보러가는 중국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다만 중국의 부호들이 몰려들어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집을 사들이는 대박을 맞았다는 것이다.(4) 역시 중국답사는 생각을 해본다.

주차장 부근에서 소금광산으로 가는 푸니쿨라가 있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할슈타트마을 위로 세운 360m 높이의 전망대와, 광산 안에 설치된 유럽 최초의 나무계단 등 7,000년 전부터 소금을 채굴하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또 지하 400m에 내려가면 청동기 시대의 생활을 담은 동영상도 볼 수 있다고 한다.(5) 소금광산 체험은 뒤로 미루고 내일의 일정을 위하여 6시에는 잘츠부르크를 향하여 출발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후지야라는 이름의 일식당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조금 신듯하지만 김치도 나오고 반찬도 짜지 않아서 좋았다. 8시가 조금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길가이기는 해도 뒤로 숲이 들어있어 바람소리가 좋았다. 최근에 리모델링했는지 화장실까지 깔끔해서 와이파이가 안돼도 용서한다. 마지막 남은 컵라면을 야식으로 먹고 포만감 속에 잠들었다.

동유럽에서 맞은 여섯 번째 아침이다. 눈을 떠 창문을 여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가을비 치고는 꽤 많이 내린다. 전날 밤 인솔자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우산과 우비를 가방에서 꺼내 따로 챙겨 넣었다. 스페인에서 그리고 터키를 여행할 때도 두어 번 비를 만났는데 챙겨간 우산을 버스 밑에 싣는 가방에 넣어 두는 바람에 꺼내지 못하고 비를 홀딱 맞았던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이런 상황에 꼭 맞는 코엘류의 금언을 새겨본다. “오늘 길을 가는 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다행히 우산과 외투가 있긴 했지만 문제는 그게 멀찌감치 주차한 차 트렁크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향해 달리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신께서 내게 기묘한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 건 아닐까?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만나는 폭풍에 대비해 필요한 것을 늘 챙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개 우리 가슴속 깊숙이 갇혀있어 막상 필요할 때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을 찾는 건 이미 역경에 패한 뒤입니다”.(6)

이날은 일정상 더 일찍 출발해야 했지만 아침을 7시에 제공한다는 숙소의 원칙 때문에 8시에 출발했다. 심지어 프런트도 정확하게 7시에 열었다. 식당도 미리 예약한 시간에 입장이 가능하다. 우리 일행과 함께 식당에 들어왔던 다른 한국 일행 몇 분은 챙겨들었던 접시를 내려놓고 식당에서 나가야 했다. 7시 20분에 식사하기로 약속됐기 때문이란다. 원칙을 세우고 칼같이 지키는 이 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제대로 본 셈이다. 과일도 없었고, 유럽의 어느 호텔에서도 흔히 제공하는 계란요리 삼종 세트 가운데 삶은 달걀 그것도 일인당 한 개만 개별적으로 제공되는 빈약한 아침이 화제에 올랐다. 워낙이 현지여행사가 받는 여행비용이 많지 않아서 어쩔 수 없나 보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준비를 하고 로비에 내려갔는데 비가 더 거세졌다. 버스를 숙소입구 가까이 세웠지만 버스를 타는데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짐칸에 가방을 싣고 버스에 올라타는 동안에 기다리면서 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 간격을 잘 유지하는 등 효율성을 발휘해서 비를 많이 맞지는 않았다. 어제 온 길을 30여분을 되돌아가서 잘츠부르크의 미라벨정원을 구경했다. 미라벨정원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멎어서 다행이었다.

참고자료:

(1) Wikipedia. Hallstatt.

(2) Welterbemuseum Hallstatt.

(3) Hallstatt: Your holiday place in Austria.(Home Page). Welcome to Hallstatt’s market square.

(4) 조선일보 2013년 9월 12일자 기사. 곽수근 기자. [클릭! 취재 인사이드] 짝퉁 천국 광저우.

(5) Salzwelten. Hallstatt.

(6) 파울로 코엘류 지음. 흐르는 강물처럼 321쪽, 문학동네, 2008년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