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주최 토론회서 학계·공급자·시민단체도 지불제도 개편 준비 부족 지적

새로운 비급여 차단을 위한 신포괄수가제 민간 확대, 질평가 인센티브 확대 등 정부가 지불제도 개편의 의지를 밝혔지만 이를 두고 정책연구기관과 의료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현 행위별수가체계 하의 지불제도 개편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정부의 정책 속에는 정작 국민이나 공급자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특히 정부의 신DRG 민간확대는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날선 비판과 함께 가치를 반영할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등 단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 16일 양재동 엘타워에서 개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체계 혁신포럼Ⅱ’에서는 연일 이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은 이날 신DRG를 포함한 지속가능한 지불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그간 지속적으로 신DRG에 대한 연구를 해왔던 신 연구위원은 앞으로 서비스 행위별 지불단위를 질병군 중심으로 개편하고 가치에 기반한 신DRG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에는 국민이 의료를 많이 이용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국민이 더 건강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보상체계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DRG는 일산병원과 지역거점 공공병원 등 42개소를 중심으로 시범운영 중인 만큼 민간 확대를 위해서는 원가에 기반한 기본 수가를 산정해야 하며, 개별의료기관 단위가 아닌 유형별 조정계수를 반영하고 의료질, 효율성, 비급여 축소에 따른 정책가산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료비의 효율성과 의료의 질이 비례할수록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개편돼야 한다고 했다.

의료질평가지원금, 전문병원평가처럼 최근 의료 질을 반영하는 가치기반 지불제도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미국 등과 같이 가치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것.

특히 의원의 경우 진료량에 따라 보상이 이뤄졌던 것과 달리 FFS에 기반한 P4P를 확대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는 월당, 시간당 정액 형태의 포괄적 지불제도로 개편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은 물론 의료계, 시민단체, 관계기관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기본적으로 개편방향이 정부의 일방적인 탑다운 방식이라는 지적과 의료현장에서 수용가능한 확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가장 먼저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새정부의)개편방향은 과거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은 탑다운 방식이라 이러한 논의의 자리가 정책에 기여하는 바는 제로이거나 마이너스 일 것”이라며 “(신현웅 위원의 발표에서) 지불제도 개선을 위한 변화의 시간을 ‘고통의 시간’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한사람으로 볼 때 아직도 권위주의적 시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주환 교수는 “전체적인 스토리는 학자로서 생각하는 것과 가깝지만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의사나 국민이 모두 공동의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인정하고 제로베이스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적 절차가 없기 때문”이라며 “정책단위의 연구라고 한다면 공급자와 국민의 입장이 완전히 결여돼 있어 이러한 상태의 개편은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도 “현재의 지불제도 논의가 적절하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현 정부의 전략이나 의지인 지불제도개편을 (토론회의)한꼭지를 다뤘지만 구체적인 의지도, 전략도 없어 얼마나 정책이 실현 가능성을 가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급자 입장에서는 지불제도 개편에 따른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면서 “어떻게 바뀔지 체감을 하고 겪어볼 수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지 포괄수가의 냄새가 조금나는 신포괄수가 형태로는 참여기관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치’ 척도 기준 없다…법적 기반 마련 필요

특히 가치기반의 지불제도 개편의 핵심인 가치에 대해서도 설전이 오갔다. 과연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이며,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냐는 것이다.

이상일 교수는 “의료질평가지원금, 의료질의 개념이 들어갔다고 해서 가치기반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현재는 비용을 측정할수 있는 자료는 급여항목뿐으로 매우 부분적인 심사청구자료로 분석가능한 범위만 가치를 측정한다면 모를까, 전반적인 가치기반으로 가려면 비급여를 포함한 모든 진료자료를 의료기관으로부터 제출하도록 해야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급자조차 비급여가 얼마나 손실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인 만큼 정부와 공급자 모두 정보를 내놓고 같이 이야기를 해야 가치를 평가할 수 있지, 지금의 심사형 자료만으로는 질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지영건 급여기준실장 역시 심평원에도 현재는 가치에 대한 평가자료가 없다고 털어놨다.

지영건 실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란, 환자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어떤 이유로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포함하지만 심평원은 무슨약을 줬는지 치료과정에 대한 자료만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은 다하는데 왜 가치기반 평가를 못하냐고 묻는다면 그곳은 DRG거나 국가소속 병원이기 때문에 적절한 퇴원확인을 위한 자료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 실장은 “하지만 우리나라는 환자입장의 가치기반 평가를 위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그래서 차선의 가치로 환자를 살리는 기술이나 장비보다 인간에 대한 가치를 두자는 방식으로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법적 기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현재의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환자군 정립과 수가만능주의 또한 개선돼야 궁극적인 지불제도 개선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지 실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요양병원의 수가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며 “장기요양보험제도와 건강보험제도를 같이 보고 개선해야 하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나 분만취약계층 수가인상 등도 잘되는 큰 병원의 수가를 올려주는 정책이기에 수가 외에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DRG 민간 확대 반대…불확실한 상태선 참여 힘들어”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입장은 더 단호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물론 신DRG의 실현가능성에 고개를 저으면서 아예 단계적인 추친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이용민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정부의 발표는 지난 정부의 공약을 더 쇼킹하게 발표했을 뿐이며 이대로 실현된다면 공급자측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용민 소장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치료적 비급여만 생각했을 때 최소 100조원이 넘는다. MRI하나만 급여화해도 20조원이 든다”면서 “이 정책은 과대포장된 국민 기만이자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무원도, 학자도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병원협회 서진수 보험위원장은 “지금도 심사평가의 일관성이 담보되지 않아 승복을 못하는 일들이 많아 다른 지불체계라도 동원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현재는 평가를 위한 데이터를 너무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 이대로는 공허하게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신DRG를 민간에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비슷한 규모의 민간과 공공병원이라고 해도 현실의 차이는 크다”면서 “민간은 존립의 문제가 있는 만큼 신포괄을 통한 원가 공개시 적어도 어느 정도 (경영이)유지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던져주지 않으면 끌여들이기가 쉽지 않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보다 신DRG의 유형을 다양하게 만들어 시범사업을 하는 등 단계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국장은 현재로서는 신DRG의 민간확대는 물건너간 것이라며 설계자체를 현재 10%의 의료기관이 이득보는 시스템에서 나머지 90%가 이득보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형준 국장은 “정책을 추진할 때 국민입장에서 얼마나 본인부담이 낮아지는지, 이로 인한 체감이 얼마인지 보여줘야 하지만 기존의 신DRG 결과에서는 국민의 이득이라고는 만족도 조사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7개군 DRG를 포함해 의료질이 떨어졌다고 한다면 국민들 또한 지불제도 개편에 우군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지불제도 개편 논의와 신DRG시범사업도 지지부진하다. 20년 정도 지나야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려면 그만한 인센티브나 예측가능한 도구를 마련해 민간이 참여했을 때 무엇이 이득인지 보여줘야 한다. 거창하게 논의만 하다가가는 진입도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정부 로드맵 아니다…정부 불신 때문에 생긴 오해”

이같은 비판이 이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정책연구 기관 발표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엇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로드맵을 발표하지 않았고, 이 모두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며 말을 돌렸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홍승령 사무관은 “오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에 대해 다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다른 변명이라고 전제하고 들을 것 같다”면서 “기본적으로 국민과 공급자 모두가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승령 사무관은 “신현웅 박사가 발표한 것은 지불제도 개편이 이렇게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방향성에 대한 설명일뿐 정부의 전체적인 로드맵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구체적으로 로드맵을 발표하지 않았다. 의료비 절감방안에 포커스를 맞추고 국민 부담 완화를 위해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면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며, 신DRG도 비급여 억제 수단 중 하나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속조치 발표를 설명하지 못해 오해와 우려가 있는 듯 하다”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지불방식이 다양하게 도입될 수 있다. 신 DRG사업도 그런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으며 참여동기를 만드는 것은 의료계와 함꼐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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