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동유럽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어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브라티슬라바성

동유럽에서 눈을 뜨는 네 번째 아침이다. 전날 밤 늦게 잠든 탓인지 아니면 커튼을 치고 잔 탓인지 6시에 모닝콜을 받고서야 눈을 떴다. 아무래도 잠을 푹 자면 몸이 가볍고 정신도 맑아진다. 오늘은 8시 출발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거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까지 가는 일정이다. 브라티슬라바는 16세기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헝가리왕실이 피신했던 곳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10시경 브라티슬라바에 들어섰는데, 가이드가 ‘미래로 가는 다리’라고 소개하는 다리를 건너 브라티 슬라바 성 건너편에 있는 성 마틴 성당 부근에서 버스를 내렸다. 브라티슬라바성은 9세기 대모라바 왕국 시절부터, 헝가리 왕국을 거쳐 18세기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지배를 받던 동안에 이르기까지 건설되었는데, 고딕 건축, 르네상스 건축, 바로크 건축이 혼합된 양식을 띠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 중이던 1809년에는 나폴레옹 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1811년에는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었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SNP다리 혹은 UFO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노비 모스트

SNP(Slovenského národného povstania) 다리 또는 UFO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노비 모스트(Nový most)이다. 노비 모스트는 ‘새 다리’라는 의미이다. 1972년 완공된 이 다리는 교량전체의 길이가 430.8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사장교이다. 폭이 21m에 무게가 537톤이나 나가는 다리를 들어 올리는 비대칭 케이블이 주경간 길이가 303m인 두 개의 기둥에 걸려 있다. 84.6m의 철탑 위에 식당을 포함한 구조물이 마치 비행접시를 닮았다고 해서 2005년 이래로 UFO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1) 그리고 보니 한번 가본 동작대교에 있는 식당 같은 시설인가보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UFO를 닮았다

슬로바키아는 중부 유럽의 내륙국으로 북쪽으로는 폴란드,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남쪽으로는 헝가리 그리고 서쪽으로는 체코공화국과 오스트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49,000 ㎢의 국토는 대부분 카르파티아산맥에 속하는 산악지역이다. 인구는 2016년 추정 544만명으로 81%가 슬로바키아인이고, 8.5%는 헝가리인, 2%는 집시들이며, 그밖에 1% 미만의 소수민족으로 체코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폴란드인들이 산다. 공식 언어는 슬로바키아어인데, 체코어와 완전하게 호환이 되므로 통번역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수도는 남서부에 있는 인구 45만 명의 브라티슬라바이다. 브라티슬라바는 도나우강과 모라바강이 만나는 왼쪽 강둑에 있으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와 국경을 나누고 있다.

체코어 ‘슬로바키(Slováky)’에서 온 슬로바키아(Slovakia)라는 이름은 1586년 처음 등장하였다. 15세기까지는 ‘바람강한 땅’이라는 의미의 빈디쉔 란덴(Windischen landen) 혹은 빈덴란트(Windenland)라는 독일어 이름으로 불렀다. 1791년에는 역시 체코어 슬로벤(Sloven)에서 유래한 슬로벤스코(Slovensko)로 불렀는데, 이 이름은 15세기 이전에 사용되던 것이다. 슬로바키아가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지리적인 의미에 국한된다고 하겠다.(2)

방사선 동위원소 측정에 의하면 27만년전 초기 구석기 시대의 고고학 유물이 슬로바키아의 노보 메스토 나드 바홈(Nové Mesto nad Váhom)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슬로바키아의 북부에 있는 가노베스(Gánovce)에서는 20만년전의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선사시대에 이미 슬로바키아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500년 무렵 켈트족의 일파가 브라티슬라바와 데빈 지역에 들어와 정착했다. 로마인과 게르만족들은 기원전 1세기 말, 이 지역을 점령하여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서기 377년 도나우강을 건넌 훈족은 판노니아를 점령하여 서유럽의 약탈 거점으로 삼았다. 서기453년 아틸라가 죽은 뒤 훈족의 세력이 빠르게 위축되면서 카스피해 방면으로 물러났다. 슬라브족은 4세기 무렵부터 이 지역에 이주해 들어왔다. 7세기 초에는 사모(Samo)왕이 모라비아(Moravia)를 중심으로 실레지아(Silesia), 보헤미아(Bohemia), 루사티아(Lusatina) 와 카란타니아(Carantania)등에 흩어져 살전 슬라브부족들을 연합하여 사모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사모왕이 죽은 뒤 제국은 소멸되고 이어서 니트라(Nitra) 공국으로 알려진 슬라브 왕국이 8세기에 잠시 성립한다.

6세기 초반 도나우강의 중부 지역을 차지한 게르만족인 롱고바르드(Longobard)족이 슬로바키아의 북서쪽 일부를 차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568년 투르크-몽골 종족동맹인 아바르족이 밀고 들어오자 이탈리아 방면으로 이주했다. 덕분에 베네치아가 생겨났다. 830년 모즈미르 1세(Mojmír I)가 도나우강 북쪽에 정착한 슬라브부족들을 통합하여 대모라비아왕국을 세웠다. 846년 왕위는 조카 라티슬라브(Ratislav)에게 넘어갔다. 라티슬라브왕은 프랑크왕국의 간섭을 차단할 목적으로 비진틴황제 미카엘 3세에게 요청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때 성 시릴(St. Cyril)과 메토디우스(Methodius)형제가 들어왔고, 시릴 성인은 최초의 슬라브문자를 만들어 복음을 전파했다.

라티슬라브왕이 재위할 때가 대모라비아왕국의 황금기로 지금의 모라비아와 슬로바키아는 물론 중부 헝가리까지, 오스트리아 남부, 보헤미아, 실레지아, 루사티아, 폴란드 남부, 세르비아 북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라티슬라브왕은 니트라 공국을 조카 스배토풀루크(Svätopluk)에게 영지로 주었지만, 그 조카는 프랑크와 동맹을 맺어 870년 왕위를 찬탈했다. 역시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는 없었나보다.

894년 스배토풀루크왕이 죽으면서 모즈미르2세(Mojmír II)와 스배토플루크2세에게 각각 모라비아와 니트라를 통치하도록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둘은 왕국 전체를 통치하겠다고 싸우기 시작하면서 주변 지역 대부분을 잃게 되었다. 두 사람은 904년부터 907년 사이에 벌어진 헝가리인들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슬로바키아의 역사는 1918년까지 헝가리의 역사와 같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패전하면서 체코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탄하였지만, 전쟁 후 다시 독립을 이루었지만, 1948년 소비에트의 위성국가가 되고 말았다. 1989년 벨벳혁명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것을 계기로 1993년 연방을 해체하여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하게 되었다.(3)

성 마틴 성당(좌) 앞에서 본 모습(우, Wikipedia에서 인용함)

성 마틴 대성당(St. Martin's Cathedral)은 브라티슬라바의 로마천주교 대성당이다. 바닥 면적이 69.37 x 22.85m에 높이16.02m의 전통적인 십자가 형태를 취하고, 첨탑의 높이는 85m이다. 브라티슬라바 성 아래 있는 대성당은 1563년과 1830년 사이에는 헝가리 왕국의 대관식이 거행된 교회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포함하여 모두 11 명의 헝가리 왕과 왕비, 그리고 8 명의 후손의 대관식을 이곳에서 치렀다.

이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블라티슬라바 성에서 예배를 보았는데, 안전을 고려하여 1221년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을 지었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교회가 비좁게 되자, 1311년부터 원래 교회터와 인접한 공동묘지를 포함하여 고딕양식의 새로운 교회를 짓기 시작하였지만, 보헤미아전쟁으로 건설이 중단되었다가 1452년에 완성되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번개와 화재, 전쟁과 지진 등 재난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4)

손잡이를 돌리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옛날식 기계(좌) 인형극에 호기심이 생긴 꼬마아이는 무대로 들어갈 것 같다(우)

성당 아랫길을 걸어 구시청사로 향했다. 작은 공터에는 손잡이를 돌려 노래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인형극을 보여주는 할아버지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이어지는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보니 길바닥 맨홀구멍으로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파파라치’부조와 함께 이곳에 온 사람들이 꼭 찾아본다는 ‘맨홀맨’이다. 브라트슬라바 구도심 곳곳에는 스탈린, 앤드 워홀 등, 다양한 조상(彫像)이 숨겨져(?)있어 이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쇤네르 나치(Schoener naci)라는 이름의 조상은 이그나즈(Ignaz)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였는데, 사랑을 이루지 못해 실성한 그는 늘 말쑥하게 차려입고, 지나는 행인에게 인사를 하거나 아름다운 여성에게 꽃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예쁜 마음과 함께 해본다.

브라티슬라바 거리에 숨어있는 조각상들. 안녕하세요 이그나즈씨?(좌) 맨홀맨(우상), 헬로 미스터 나폴레옹?(우하)

구시청사 앞 광장에는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커다란 무대가 시청건물을 가리고 있다. 덕분에 시청벽에 박혀있다는 나폴레옹 군대가 쏘았다는 포탄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벤치에 팔꿈치를 받치고 있는 나폴레옹 모자를 쓴 사나이와 포즈를 겨루어보았다. 조각상을 찾다보면 조각상인 척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재미를 주고 작은 은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구 시청의 시계탑

구시청사 옆길을 따라 프리메이트 궁전이 있는 작은 광장으로 갔다. 작은 노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프리메이트궁정은 에스테르곰(Esztergom)의 대주교를 위한 건물로 1781년 완공되었다. 슬로바카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전주의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궁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6점의 17세기 태피스트리가 중요한 소장품이다. 지붕에는 쾨글러(J. Kögler)와 프로콥(F. Prokop)이 제작한 우화상과 메세르쉬미트(JA Messerschmidt)의 꽃병 작품이 올려있다. 박공의 삼각면에는 이 궁전에 제일 먼저 살게 된 요세프 바트야니(Jozef Batthyányi) 추기경의 삶을 묘사한 것이다. 광장에는 용을 처치한 전설의 기사 성 조지(St George)를 묘사한 분수대가 있다. 이곳에 용을 물리친 성 조지의 동상에 세운 것은 도시에 불어닥친 (종교) 개혁의 열풍을 용에 빗대어 이를 물리치려는 대주교의 노력을 성 조지에 비유하기 위함이다.(5)

프리메이트 궁전(좌) 프리메이트 광장에 있는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우)

용을 물리친 기사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며 14성인으로 모시는 게오르기우스(Georgius)로 거슬러 오른다. 4세기 무렵 소아시아에 있는 리비아의 작은 나라 시레나의 호수에 무서운 용이 나타나 무서운 독기를 내뿜으며 매일 젊은이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워낙이 작은 나라라서 금세 왕의 외동딸 차례가 왔다. 다행히도 용이 공주를 삼키기 전에 카파도키아에서 온 젊은 기사 게오르기우스가 창으로 용을 찔러 죽이고 공주를 구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을 제압했다고 해서 리비아 사람들을 개종시킨 게오르기우스는 뒤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끝에 참수형을 당했다.(6)

요한 네포무크 훔멜의 생가 (Wikipedia에서 인용함)

프리메이트광장을 건너가면 요한 네포무크 훔멜의 생가를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건물이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지휘자였던 훔멜은 빈 고전파의 일원으로 바이마르에서 활동할 무렵 괴테에 명성을 겨룰 정도의 유명인사였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등에게서 사사했으며, 펠릭스 멘델스존과 카를 체르니 등이 대표적 제자이다.(7)

참고자료:

(1) Wikipedia. Most SNP.

(2) Wikiipedia. Slovakia.

(3) Wikipedia. History of Slovakia.

(4) Wikipedia. St. Martin's Cathedral, Bratislava.

(5) Visit Bratislava Homepage. Primate’s Palace.

(6) 위키백과. 성 게오르기우스.

(7) Welcome to Bratislava. MUSEUM OF JOHANN NEPOMUK HUM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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