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동유럽

본지는 '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 여행'이라는 코너를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양기화 상근평가위원의 해외여행기를 싣는다. 양기화 위원은 그동안 ‘눈초의 블로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내와 함께 한 해외여행기를 실어왔다. 그곳의 느낌이 어떻더라는 신변잡기보다는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찾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터키, 발칸,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이어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왔다. 이 여행기를 통해 인문학 여행을 떠나보자.<편집자주>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성당을 구경한 다음, 일행은 성당 앞에 있는 기념품가게에 모였다. 헝가리가 특산이라는 악마의 발톱, 비타민C 그리고 헝가리 특산의 와인 토카이를 조금 샀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40km 떨어진 토카이(Tokaj) 지방에서 생산하는 토카이 (Tokaji) 와인은 세계 3대 화이트와인의 하나로 꼽힌다. 토카이지방에서는 전통적인 포도재배 방식을 천년동안 유지해오고 있는데, 1650년 처음 와인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토카이 수도원의 마테 쉡쉬 라즈코(Mate Szepsi Laczko)원장이 귀부병에 걸린 포도를 섞어 와인을 만들어 선물을 하곤 했던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와인 애호가였던 루이15세는 토카이와인 맛을 보고는 ‘군왕의 포도주이며, 포도주의 군왕이다(Wine of Kings, King of Wines)’라고 했다고 전한다.(1)

포도의 수확 시기를 놓치면 보트리티스 시네레아라는 곰팡이에 감염되어 귀부병이 생긴다. 토카이와인은 귀부병에 걸린 포도송이가 썩어갈 무렵 수확하여 일반포도와 섞어 발효시켜 만든다. 토카이와인의 등급은 귀부병포도가 얼마나 들어갔는가에 달려있다. 통상적으로 25kg 들이 바구니에 담은 귀부병 포도를 일반 포도를 담은 136리터의 통에 얼마나 넣는가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3바구니를 넣으면 아슈3(Aszú 3)로 잔류당분이 60g/L이상이 되고, 4바구니를 넣으면 아슈4(Aszú 4)로 잔류당분이 90g/L이상, 5바구니를 넣으면 아슈 5(Aszú 5)로 잔류당분이 120g/L이상, 6바구니를 넣으면 아슈 6(Aszú 6)로 잔류당분이 150g/L이상이 된다. 아슈 에센시아(Aszú Eszencia)는 100% 귀부포도로만 만드는데 압착하지 않고 중력에 눌려 흘러내리는 즙으로 만드는 초희귀품이다. 가게에서 제공하는 시음용 와인을 마셔보았다. 약간 신 듯 하면서도 달았는데, 4번보다는 5번, 5번보다는 6번으로 갈수록 단 맛이 강해지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 부근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헝가리 사람들

헝가리 특산품 구경도 하고 귀국선물도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변을 돌아보니 성당 앞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다음 일정은 영웅광장이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광장으로 들어가려는데 맥주 자전거(Beer Bike)가 몇 대 지나간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인데 이제는 부다페스트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맥주자전거는 승객이 페달을 밟아 달리는 일종의 포장마차라고 할 수 있다. 파티자전거, 페달 코롤러, 맥주 자전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이 장비는 1997년 네덜란드의 헤트 피에츠카페(Het Fietscafe BV)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직원파티, 혹은 대학가의 파티에 불려 다니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2) 관광용으로 발전하면서, 암스테르담을 비롯하여 부다페스트, 프라하 등 유럽의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맥주자전거는 2시간 운행하면서 30리터의 맥주가 제공되며, 음향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예쁜 여직원이 동승하여 음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에 더하여 운행 중에 도시의 분위기를 즐기면서 노래도 부를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맥주자전거는 영웅광장에서 버이더후녀드성(Vajdahunyad vára)까지 운행한다.(3) 영궁광장 뒤편으로 버로슬리게트에 위치한 버이더후녀드성은 895년 헝가리 사람들이 판노니아 평원에 처음 정착한 뒤 천년의 세월이 흐른 것을 기념하여 1896년에 이그나트 알포르의 설계로 지었다.

잠시 맥주자전거에 팔렸던 관심을 영웅광장으로 돌린다. 영웅광장(헝가리어로는 회쇠크광장 Hősök tere)은 한국대사관이 있는 페스트 지역의 안드리아시거리(Andrássy Avenu) 끝에 있다. 1896년 헝가리 탄생 1천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 곳이다. 1894년 헝가리왕국의 밀레니엄을 기념하는 기념탑을 비롯한 건축물을 세우기로 하고, 알버트 쉬케단츠(Albert Schickedanz)가 설계하였지만, 1929년까지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3년 후에 이 지역을 영웅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 있는 조각작품들은 렌다바(Lendava)의 조각가 자라 기외르기(Zala György)의 작품이다.

밀레님엄 기념탑 왼쪽 뒤에 있는 열주(좌) 밀레니엄 기념탐(중) 밀레님엄 기념탑 오른쪽 뒤에 있는 열주(우)

영웅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밀레니엄 기념탑은 높이 36m인 흰색 기둥으로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서 있다. 왼손에는 십자가를 오른손에는 왕관을 든 가브리엘 대천사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헝가리인들을 축복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들고 있는 십자가는 크리스마스 씰에서 보는 두 개의 가로대가 있는 모습인데, 헝가리에서는 이를 이중십자가 혹은 사도의 이중십자가라고 부른다. 왕관은 성이슈트반 대제의 거룩한 왕관을 의미한다. 기념탑 기단에는 이곳에 처음 도착한 마자르부족의 일곱 족장들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의 동상을 세웠다. 헝가리왕국을 개창한 아르파드(Árpád)가 맨 앞에 서있고, 이어서 엘뢰드(Előd), 온드(Ond), 콘드(Kond), 타스(Tas), 후바(Huba) 및 퇴회툄(Töhötöm) 족장으로 이어진다.

밀레니엄 기념탐 아래에는 세노타프(cenotaph)라고 부르는 커다란 돌이 놓여있다. “우리 민족의 자유와 우리국가의 독립을 위하여 삶을 바친 영웅들을 기억을 위하여” 헌정된 것이라고 한다. 이를 무명용사의 묘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무덤이 아니라 기념비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세노타프 뒤로는 1878년 빌모스 시그몬드(Vilmos Zsigmondy)가 시추하여 성공한 아르테시안 우물임을 표시한 청동판이 있다. 이 우물은 971미터 깊이로 섭씨 74도의 물이 분당 831리터 용출되어 인근에 있는 세체니창과 다갈리탕에 온천수를 공급한다.

밀레니엄 탑 뒤로는 반원을 이루는 열주들을 두 개로 나눈 건축물이 있고, 헝가리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7명의 동상을 각각 배치했다. 두 개의 건축물 위에는 각각 2개씩의 청동 조각을 올렸다. 왼쪽 열주의 바깥쪽에 있는 낫을 가진 남자와 종자를 파종하는 여자의 동상은 노동과 부를 나타낸다. 안쪽에는 뱀을 채찍으로 사용하여 전차를 모는 남성의 모습으로 전쟁을 나타낸다. 오른쪽 열주의 안쪽으로는 왼손에 종려나무 잎을 들고 마차를 몰고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평화를 나타낸다. 오른쪽 열주의 바깥쪽으로는 작은 황금동상을 들고 있는 남자와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있는 여자의 동상은 지식과 영광을 나타낸다. 이제 많이 익숙해진 성 이슈트반 대제의 동상은 왼쪽 열주의 가장 바깥쪽에 서 있으며, 마차시왕은 오른쪽 열주의 안쪽에서 두 번째 동상이다.(4)

영웅광장 왼편에 있는 미술박물관(좌) 영웅광장 오른편에 있는 예술의 전당. 마침 그 앞으로 맥주 자전거가 지나고 있다.(우)

영웅광장 오른편으로는 예술의 전당(Hall of Arts)가 있다. 헝가리 예술학교에 소속되어 독일의 쿤스트할레스(Kunsthalle) 프로그램처럼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한다. 영웅광장 오른편으로는 부다페스트 미술박물관(Museum of Fine Arts)이 있다. 영웅광장은 헝가리인들의 자부심의 상징일 뿐 아니라 헝가리 예술의 중심이 되고 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헝가리가 위치한 카르파티아 분지에 초기 인류가 등장한 것은 기원 50만년에서 35만년 사이라고 추정된다. 10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흔적이 있으며, 이들은 4만 년 전에 사라졌다. 현생인류는 기원전 3만3천년에서 2만8천년 사이에 등장했다. 카르파티아 분지에 철기문화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800년 무렵이고, 기원전 750년에는 할스타트(Halstatt) 문명의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왔지만, 기원전 6세기 무렵 페르시아의 다리우스1세의 발칸진출에 따라 이주한 사람들과 충돌을 빚었다. 기원 5세기 무렵에는 일리리아(Illyrian)부족의 갈래인 판노니아족(Pannonians)이 이주해 들어왔다. 기원전 4세기에는 켈트족이 들어와 일리리아부족을 격파하였지만, 결국 동화되어갔다.(5)

로마제국은 기원전 35년부터 기원전 9년에 이르기까지 도나우강 서쪽을 정복하여 판노니아 속주를 설치하였다. 헝가리의 영토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되었는데, 로마제국의 지배는 4세기 후반 훈족이 침입해 들어와 433년에는 로마제국이 인정하는 독립국가로 자리잡게 된다. 훈족의 지배가 끝난 뒤 동고트족, 랑고바르드족, 게피족 등 게르만족이 등장하였고, 9세기에는 슬라브족과 아바르족이 자리잡았다.

우랄어를 사용하는 마자르부족은 볼가강과 우랄산맥 사이의 숲지대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 여러 부족으로 쪼개져 있던 마자르부족을 하나로 통합한 아르파드(Árpád)는 895년 부족들을 이끌고 헝가리 분지에 정착하여 왕국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의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던 대모라바왕국(Great Moravia)을 무너뜨리고 판노니아평원을 차지하여 유럽대륙을 놀라게 하였다. 아르파드왕조의 대공 게저의 아들 이슈트반이 부족의 지배권을 차지한 다음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행정조직을 정비하자, 1000년 신성로마제국의 오토3세는 이슈트반 1세를 헝가리왕국의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1102년에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달마티아 등 발칸국가들의 영역에 포함시키면서 세력을 확대하였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영웅광장에 모여들어 줄을 서더니 춤을 춘다

헝가리왕국의 역사는 뒤에 다시 이어가기로 하고, 다시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으로 돌아가자. 해가 저물 무렵이라서 사람들이 뜸해졌다. 그런데 몇몇 젊은이들이 몰려들더니 줄을 맞추고 나자 카메라가 이들을 향한다. 이윽고 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진 듯 한바탕 춤을 추고는 바로 흩어진다. 감독의 오케이사인이 떨어진 모양이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플래시몹인가 싶었겠는데, 정체를 모르겠다. 광고를 찍었거나 아니면 젊은이들이 단편 영화의한 장면이라도 찍은 것 아닐까 싶다. 워낙이 전광석화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바람에 붙들고 물어볼 짬을 내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 쪽 광장모퉁이에도 역시 한패의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있는데 이들 옆에 서 있는 칠판에는 E=mc2이 적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젊음을 주제로 한 한바탕 토론이라도 벌일 분위기이다. 그리고 보니 년 전에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와는 도시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곳곳에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 말고도 도시 전체에 생기가 넘치고 있다.

참고자료:

(1) 유로비행기나라 블로그. 헝가리 토카이 와인(Tokaji Wine)의 역사와 등급종류, 토카이 와인 역사 문화경관

(2) Wikipedia. Party Bike.

(3) 부다페스트 맥주자전거 홈페이지.

(4) Wikipedia. Hősök tere.

(5) Wikipedia. History of Hungary before the Hungarian Conq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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