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사업단 김열홍 단장, "정밀의료는 세계적 추세이자 4차 산업혁명 성패 요소"

치료 반응률이 높지 않다고는 해도 다양한 암종에 효과를 보이고 있는 새로운 표적치료제·면역항암제의 등장은 암 환자들에게는 벼랑 끝에서 만나는 동아줄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다고 해도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본인에게 적합한 치료가 무엇인지 조차 환자들은 알기 쉽지 않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잡스는 막대한 자산으로 췌장암 치료를 위해 자신의 유전자변이를 수차례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스티브잡스처럼 억대의 비용을 들여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이런 스티브잡스도 결국 자신의 유전자 변이를 치료할 수 있는 항암제를 찾지 못했다.

이런 암 환자들에게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정밀의료사업단이 희망이 될지 주목된다.

미국과 일본은 수년 전부터 정밀의료 사업을 정부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유전체 정보 분석 등을 통한 국민 건강증진과 질병치료 개선을 위해 지난 2015년 ‘정밀의료 발전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도 같은 해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Japan Agency for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 AMED)'를 설립하고 게놈 의료 현실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올해부터 정밀의료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비 631억원을 투입한다. 정밀의료 사업단의 컨트롤타워는 안암병원이 맡았다.

고대안암병원 김열홍 교수(종양혈액내과)는 이번 사업에서 정밀의료사업단의 총 사업단장과 함께 2개의 세부사업단(암 정밀 진단치료법 개발 사업단,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사업단) 중 암 정밀 진단치료법 개발 사업단장으로 사업을 수행한다.

김 교수는 사업단을 이끌며 환자들 각각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안전성·유효성을 보인 후보약물을 이용한 임상시험 프로세스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또한 유전자변이 검사를 토대로 제약사의 의약품 지원을 받아 전국의 사업 참여병원에서 환자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5년간 1만명의 환자들의 유전자변이를 분석해 임상시험을 통한 치료기회를 열어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김 교수를 만나 정밀의료사업단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암환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한암학회 이사장인 김 교수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장, 한국유전체학회 회장, 고대안암병원 암센터 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정밀의료사업단장 김열홍 교수(오른쪽)와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사업단장' 이상헌 교수.(사진제공=고대안암병원)

-사업단은 어떤 일을 하나.
암 환자의 유전자변이 검사를 해서 그 결과에 따라 적합한 의약품을 찾아 임상시험을 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전국에 있는 종양 분야 전문의들에게 임상 경험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분석해 활용할 것이다. 사업단은 유전체 분석을 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고 임상시험에 필요한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 제약사와 매칭시켜주는 일을 하게 된다. 유전체 분석은 사업단에서 하고 임상은 전국적으로 실시한다.

사업단은 환자들의 조직이나 혈액 등 분석해야 될 자료에 대한 결과지를 각 병원에 보내고 유전자 분석을 토대로 임상시험에 참여시키라고 조언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 변이를 표적으로 한 임상시험이 해외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면 이를 국내에서도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내 암환자들의 임상시험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같은 유전자분석 사업의 시작이 좀 더 빨랐다.
우리는 미국, 일본의 사업단들이 문제점으로 겪은 것들을 보완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해당 국가에서 분석된 유전자 검사결과도 참고가 되겠지만, 인종별로 다른 점도 있을 수 있고 임상 디자인도 다른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조직만 가지고 유전자 검사를 했다. 그러다보니 조직이 없는 환자는 참여가 어려웠다. 조직은 한번 조직검사로 얻기 힘든 경우가 많다. 우리는 조직뿐만 아니라 액체생검(혈액 내 떠다니는 DNA) 분석도 같이 병합한다.

-성과를 내기에 5년이라는 기간은 짧다는 지적도 있다.
정밀의료는 모든 질환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이번 사업단에선 암진단과 의료정보에 대한 사업이 진행된다. 의료정보에 대한 부분은 병원마다 의료정보의 표준화를 통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통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암 정밀 진단치료법 개발 사업은 암환자의 진단치료에 대한 부분을 정밀하게 하자는 내용이다. 일단 유전자 분석과 다른 추가적인 분석을 통해 각각의 환자에 적합한 진단과 치료법을 개발해 맞춰줄 것이다. (이번 사업기간 내에) 환자 한명 한명까지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그룹을 지어 해당 그룹에 맞는 진단법을 찾아 치료전략을 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를 위해 5년간 1만명의 암 환자 전부의 유전체를 분석하려고 한다. 이후 국내사나 다국적사의 안전성 및 유효성이 확보된 후보약물을 찾아 임상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적어도 20개의 임상을 하는 게 목표다. 그렇게 되면 임상으로 치료받는 환자들이 최소한 1,000~2,000명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환자들이 이 임상에 참여할 수 있나.
표준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이다. 더이상 치료방법이 없거나 특정 유전자변이가 있는데 외국에서만 해당 임상이 진행되는 경우 등에 적용될 수 있다. 환자들이 허가받지 않은 약을 쓰기 위해선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임상에 참여하는 기회를 열어줘야 새로운 신약에 대한 치료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임상시험에 쓰이는 의약품은 주로 어떤 종류인가?
모든 의약품을 다 고려할 순 없다. 일단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약제이기 때문에 표적치료제들이 주가 된다. 사실 병용임상을 하고 싶은데 넘어야할 벽이 많다. 여러 제약사의 약을 동원하기 위해선 각 제약사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참여를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표적치료제는 반응률이 기껏해야 75%다. 이것도 높이 잡았을 경우고 일반적으로는 50% 미만이다. 면역항암제들도 단독으로 써서는 반응률이 15%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 제약사에서 2가지 약에 대한 소유권이 모두 있는 경우 병용임상을 해보자는 접근을 하고 있다.

-현재 사업은 어떤 단계에 와있나.
사업 인프라 구조를 구성하고 전문가를 비롯한 여러 인원을 뽑았다. 사업단 내에 위원회도 만들었다. 임상시험 4개는 개발된 상태다. 임상시험 대상은 폐암 2개, 대장암 1개, 희귀암 1개다. 참여 제약사는 종근당, 유한양행, 삼양(바이오팜), 머크, 노바티스가 섭외됐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사업단의 구체적인 역할은.
후보물질이 항암 신약으로 개발되기 위해선 그 약이 주 표적으로 하는 타깃, 유전자변이를 찾아줘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론상으로 또는 동물실험상으로 입증된 이들 약물을 임상시험에서 입증해야 한다. 이 역할을 사업단이 하는 거다. 중요한 것은 환자들에게 약을 써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에 쓰일 약물은 적어도 독성시험이나 적정용량에 대한 시험을 마친 단계에 와있어야 한다. 이 후보약물로 임상을 해서 효능이나 부작용에 대한 결과가 나오면 이를 역추적해 효과의 원인이 처음 분석했던 유전자변이 외에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 등을 분석하게 된다. 유전자변이도 종류별로 굉장히 다양하다. 염기 하나만 치환된 변이도 있고 유전자 일부가 통째로 없어진 변이, 다른 유전자와 접목된 변이 등이 있다. 이 중 어떤 타입이 해당 약물에 잘 맞는 타입인지 분석해간다면 점점 더 정밀하게 진단·치료가 될 수 있다.

유전자 분석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특정 유전자변이를 타깃해서 만든 표적치료제도 실제 효과가 있는 환자는 그 변이가 있는 환자의 50~75%에 불과하다. 특정 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켰는데도 주변에 있는 다른 세포들이 내성으로 극복시킬 수도 있고 다른 변종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몸은 복잡한 구조로 돼있다. 때문에 우리도 더 정밀하게 파악해서 들어가야 한다.

-사업 과정에서 여러 바이오마커가 개발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마커는 임상적 유용성과 연계돼야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공통적으로 몇 %에서 이 유전자변이가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기도 했지만, 그보단 그 유전자를 치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암이 실제 줄어든 효과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업단에선 그러한 임상적 유용성에 맞는 유전체 정보를 찾으려고 한다. 유전체를 분석만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페이션트케어미'라는 환자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했다.
정밀의료사업단의 주 역할은 특정 환자에 특효약은 이미 나와 있는데 그러한 정보를 접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항암제만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에 있다.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차세대 염기서열분석)가 보험급여가 됐다고는 하지만, NGS 분석이 필요한 환자의 10%도 혜택을 못받고 있을 거라고 본다. 비용문제도 있고, 이 서비스를 하는 병원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암 정보 관련 사이트도 있지만, 활용도 측면에선 아쉬운 면이 있다. 사업단은 적어도 특정유전자 변이에 대해 특효약이 나와 있다면 그 약을 쓰게 해주려고 한다. 환자들이 궁금한 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정보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면 해당사이트의 정보는 정보로서 유용성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쉽진 않겠지만 환자들이 찾는 정보를 주는 사이트를 운영해보고 싶다.

-정밀의료사업단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체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환자들도 그렇지만 정부와 일부 학계도 마찬가지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의 연구비를 가져간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 사업은 세계적인 추세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한국이 얼마나 빨리 틀을 잡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4차 산업혁명의 성패가 갈릴 수도 있다.

정밀의료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개인정보의 문제다. 개인정보라는 것이 워낙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보들이 얼마나 믿을 만한 곳에 의해서 관리가 되는 지다. 이러한 정보 구축이 후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 사업이 얼마나 소중한 사업인지 계속해서 홍보를 해나갈 생각이다. 막연한 불안감에만 휩싸이면 한치 앞도 나아갈 수 없다. 환자분들이 동참해주시지 않으면 이 사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도 허술해선 안 된다. 정보 안전성에 있어선 계속해서 보안해나가며 나갈테니 흔쾌히 참여했으면 좋겠다.

면역항암제 등 병용임상이 많아지고 있지만, 어떤 약제조합도 전체 암을 조절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개개인의 생김새가 다르고 삶이 달랐듯 암조직도 조직·형태가 다 다르다. 개개인별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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