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급여 확대판, 단계적·일시적 운영…모든 비급여 관리 가능성 의문

‘선별급여’ 제도의 또 다른 이름인 예비급여 시행을 앞두고, 전문가들이 예비급여 항목의 선정부터 관리, 평가, 정책결정까지의 과정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70% 달성을 위한 문재인 케어의 핵심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위해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우선 제도권 내에 포함시키는 ‘예비급여’ 제도를 추진 중이다.

대한예방의학회가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에서 마련한 ‘창립 70주년 기념 가을학술대회’에서 ‘문재인 케어와 의학적 비급여 기술의 관리방안’을 주제로 한 세션이 열렸다.

세션에서는 예비급여라는 이름으로 모든 비급여를 통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통제 계획까지 일부 공개됐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박동아 연구위원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비급여 항목 중 3,800여개(치료재료 3,000여개)를 예비급여 항목으로 두고 이 중 기준초과 비급여(325개)를 제외한 등재 비급여 기술 485개에 대한 단계적 예비급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485개 기술 중 2018년 192개, 2019년 108개, 2020년 115개, 2021~2022년 70개 순으로 비급여 항목에 대한 치료효과, 비용효과, 대체가능성, 건강관련 잠재적 이득 등을 평가할 예정이다.

예비급여로 선정된 항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모니터링을 하고 이후 심평원과 보의연이 적합성 평가를 실시한 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필수급여/ 예비급여 유지 또는 조정/ 비급여 등 급여 결정을 하게 된다.

또한 기존 의료기술 중에서도 전문위원회를 통해 재평가 우선순위를 결정해 의료기술평가위원회를 통한 권고등급을 결정, 마찬가지로 건정심을 통해 급여 및 수가조정/ 예비급여/ 비급여/ 퇴출 등의 결정을 한다.

특히 예비급여 항목이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제도가 시행되면 해당 항목 이외의 비급여에 대한 모니터링은 강화된다.

심평원 유미영 급여등재실장은 “예비급여는 한시적으로 도입되지만 일정 가격을 정해준다는 의미에서 환자의 본인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청구내역이 다 들어오기 때문에 실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자료가 축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별급여제도를 운영한 결과, 불필요하게 권유되던 사례는 줄어들고 적정사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던 만큼 예비급여를 하게 될 경우 신의료기술의 급여냐 비급여냐의 판단 이외에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기 위한 기준점검과 전반적인 재평가도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선별급여의 또다른 이름 예비급여

이처럼 예비급여는 기존의 선별급여제도의 확대 시행이지만, 대상 선정 기준과 이로 인한 수가 산정, 환자 본인부담금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먼저, 서울대 예방의학교실 김윤 교수는 현재 4대 중증질환에 한한 선별급여로는 이른바 착한 비급여의 보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정교한 설계를 통한 예비급여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윤 교수는 “언어치료도 치료를 받을 돈이 없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는 경우가 70%로, 이처럼 비급여로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면서 “또 의사들이 비급여로 먹고사는 사회가 유지되면 의사와 환자의 신뢰라는 의료서비스의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된다”고 말했다.

이에 김윤 교수는 “비급여에 대한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되, 예비급여 절차에 대한 보다 정교한 추정과 설계를 통해 재평가를 해야 한다”며 “심평원과 보의연의 역할은 어떻게 나눌지, 급여평가의 방법과 소요시간, 인력은 물론 재평가 방법과 사후 모니터링 등도 추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예비급여는 현재의 선별급여 틀을 그대로 이용하고 용어만 바꿔도 제도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며, 향후 예비급여 시행시 제한적 신의료기술은 상당수 줄어들거나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든 비급여 통제, 가능할까?

예비급여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특히 예비급여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의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된 만큼, 과연 모든 비급여 항목을 제도권으로 유입해야 하느냐의 근본적인 고민도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예비급여는 급여라는 단어로 수가를 보장해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비급여 팽창을 막기 위한 제도로 도입된 것”이라며 “하지만 의학적 기술에 대해 장비 차이, 사회적 성격차이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상대가치점수 하나로 가격을 표준화 했을 때의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빅5병원이 급성장하고 암 질환 치료 중심으로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비급여 치료와 검사로 인한 의료기술 향상의 효과도 있다”면서 “표준화 이전의 신의료기술을 국민이 선택하는 것은 자율성 때문으로, 비급여의 네거티브적인 효과 외에도 의료기술 증진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서 이사는 “그동안 의협은 예비급여가 관행가보다 저평가되거나 낮은 상대가치점수체계의 등재, 급여기준과 심사기준의 경직성으로 인한 의료자율권 침해 문제로 반대해왔지만, 비급여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고유의 효과 이상을 과도하게 포장해 행위를 하는 의료인을 보호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예비급여를 통한 급여타당성 검토과정에서 전문가의 책임성을 높이되, 진료 자율성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형준 정책국장은 “예비급여는 기존에 평가가 되지 않은 비급여를 평가하는 단계로 재평가 후 급여와 비급여를 명확히 보여줘야 하며 이때 전문가들의 책임성이 부여된다”면서 “예비급여의 급여 인정 횟수를 한정하기보다는 의료진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동료평가를 적용하고, 심사도 건당이 아닌 기관단위 등으로 하는 등 전문가의 참여를 독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급여의 사각지대에 대한 관리에 대해서 우려했다. 미용과 성형처럼 안전은 하지만 유효성과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범주의 비급여는 현재도 파악이 불가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관리를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

예비급여체계 지속 시 또다른 불평등 초래

하지만 예비급여는 효율성과 안정성에 따라 본인부담률을 30%에서 최대 90%까지 달리 두고 있는 만큼 이러한 체계는 단기에 또는 일부에 국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예비급여에서의 ‘급여’도 보편적인 보장을 의미하지만 어떤 행위는 환자가 50%를 부담하고 어떤 행위는 70% 부담하라는 나라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선별급여와 예비급여 도입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정형준 정책국장은 “장기적으로 건보제도가 이러한 형태를 유지하게 될 경우는 높은 본인부담으로 인해 민간보험을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예비급여는 매우 한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도 예비급여는 비급여 부담 해소를 위한 중간과정일 뿐, 궁극적으로는 급여범위를 조속히 확대해 나가는 수단이 되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예비급여팀 손영래 과장은 “다른 나라의 경우 예외적인 것만 비급여이고 거의 보험에 포함된 행위로 의료가 이뤄지지만 우리는 비급여가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며 “궁극적으로 건강보험 보장만으로 의료체계가 유지되고 그 외에만 비급여로 되기 위한 솔루션의 하나가 예비급여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이 솔루션으로 포괄수가제가 논의됐지만 정반대로 예비급여는 행위별수가를 극단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기법”이라며 “때문에 예비급여는 전체 비급여 해소를 위한 중간과정의 제도로 봐야 하며 이를 위해 빠르게 급여범위를 확대하면서 수가를 인상해 정상적인 의료기관 운영이 되도록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예비급여는 장기적으로는 그 비중이 줄어들고 급여가 확대돼야 궁극적인 정책 취지가 달성될 수 있는 만큼 예비급여의 확대 및 안정화를 최소화 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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