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주최 그랜드포럼서 전면 급여화 따른 심사체계 개편 필요성 등 제기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겠다는 '문재인 케어'로 야기될 수 있는 혼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려대 의과대학 윤석준 교수는 지난 17일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열린 청년의사 창간 25주년 기념 그랜드포럼 '한국의료체계, 새 판을 짜자!'에서 발표를 통해 "현재 요양급여 청구건수는 1년에 약 16억건"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심사 효율화 등을 위해 전산심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 체계로는 비급여의 급여화로 쏟아질 급여청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의 평가 원칙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윤석준 교수는 "현재는 약제, 행위 등에서 신의료기술이 들어오면 근거문헌 등을 따져 급여에서 제외함으로써 비급여로 남거나 시장에서 기술이 퇴출됐다"며 "그러나 문재인 정부 발표대로라면 일단 이 기술들을 제도권에 진입시켜야 한다. 이에 대한 평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급여화로 인해 환자 본인부담이 줄어들면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했다. 비급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나타났던 환자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조언이다.

특히 문재인 케어 발표와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재정추계에 대한 부분도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 교수는 "현재 국내 건강보험 보장률은 63%로 이를 정부 계획대로 70%로 올리기 위해선 56%인 공공재원의 비중을 64%까지는 늘려야 한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에 필요한 재정을 30조원으로 추계하고 21조원의 건강보험 적립금 중 1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5년간 연평균 2~3%로 유지하고 정부지원금을 건강보험료 수입의 13.8%(약 6조9,000억원)로 끌어올려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재정추계는 항상 부정확성과 변수를 내포하고 있는 만큼 더욱 철저한 재정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윤 교수는 "성별·연령별 인구 추계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 한국과 같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사회는 인구추계를 정확히 해내야 한다"면서 "한국은 의료이용량을 정부나 보험자가 적극 통제하기 어려워서 추계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발표한 '적정수가'에 대한 명확한 방침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윤 교수는 "적정수가라는 말은 추상적 명제로는 좋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며 "(모럴해저드를 심화시킬 수도 있는) 의료서비스 이용량을 어떻게 관리할 지도 핵심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케어의 방향은 잘 설정했다고 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느냐는 것은 전문가들의 조언과 국민들의 협조가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적정수가 없는 보장성강화 대책은 어렵다"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지 않는 적정수가 설정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낮은 수가가 책정되면 의료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북대병원 권근상 교수는 "수가가 충분치 않다고 여겨지면 이에 따른 퀄리티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보장성 강화에는 퀄리티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모니터링할지 고민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의료 이용량과 관련해서도 적정수가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낮은 수가로 인해 환자를 보는 빈도수를 높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광주시의사회 홍경표 회장은 "한국이 의료이용량 및 의료비 증가가 높다고 하지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OECD 국가 중 한국은 국민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굉장히 적다. 의료비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의료비의 상당부분이 요양병원이나 한방병원에 집중되고 있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 회장은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지만 개선된 점이 없었다"며 "낮은 수가로 인한 진료 증가 및 실비보험으로 인한 도덕적 헤이,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했다.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개선 없이는 문재인 케어의 성공적인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 정기현 원장은 "건강보험 보장성강화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선 재정과 비급여-급여의 정리,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개선이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보장성강화 대책은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책임의료조직(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ACO)과 같은 형태로 시범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에서 행위별수가제를 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행위별수가제 일부를 차용하는 곳은 있지만, 의료비 증가 등으로 인해 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 연구위원은 "현재 의료체계는 민간이 공급하고 공공이 제어하다보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유럽은 공공에서 공급·공공이 제어하고 미국은 민간이 공급·민간이 제어한다"며 "한국은 공급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지점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수도권으로의 환자쏠림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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