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사각지대③...당신도 체납자가 될 수 있다!
체납금 징수에 집중하는 공단, 감면·경감 정보제공 미흡

#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지난 10여년 간 어린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 한번 못 갔어요. 체납금 분할납부가 취소되고 나니 성인이 돼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자식 앞으로 부당이득금 청구 우편물을 보내고, 통장 압류까지 하더라구요. 지금은 허리부상으로 남편까지 돈을 못 벌어 월세까지 밀린 상태라 보험료 내기 너무 힘듭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인데 국민의 의무라는 이유로 체납보험료에 월 보험료 5만원, 15%에 달하는 연체이자 7,500원까지 부과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을 상대로 사채업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 50대 권모 씨(여성)

# 6세 여아를 홀로 키우고 있는 기초생활수급권자입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쉼터와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살아왔지만, 그 순간에도 보험료는 계속 부과됐어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체납보험료 때문에 단 하루도 맘 편히 살 수가 없어요. 재산도, 통장 잔액도 없는데 압류하겠다고 협박을 하니 불안감과 우울증에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이제 그만 협박과 독촉장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30대 이 모씨(여성)

체납 독촉에 아파도 참는 생계형 체납자, 우울증·자살 충동까지

이처럼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 중에는 당장의 생계조차 버거운 이들이 적지 않다. 6개월 이상 월 보험료 5만원을 납부하지 못한 ‘생계형 체납자’들이 겪는 체납보험료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류상 재산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 질병과 실직으로 생활비조차 부족한 가족, 미혼모와 장애인 등에게도, 공단은 사회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일정금액을 건강보험료를 청구하고 있다.

하지만 체납된 보험료는커녕 먹고 살길 조차 막막한 이들은 아픈 것을 참다가 더 큰 질병에 걸리거나, 수년째 반복되는 체납독촉과 예금압류로 인해 억울함과 분노, 우울감, 자살 충동까지 느끼고 있다.

특히 이들은 납부할 수조차 없는 보험료의 부과와 징수로 사회보험이라는 제도적 틀에서 완전히 소외돼 이로 인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서류상의 소득과 재산이 보험료 산정 기준에 단순 적용됨으로써 실제 능력에 비해 과도한 보험료에 시달렸거나 취약계층으로서 보험료 경감 및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엄연히 법적으로 보험료를 경감 또는 면제 받을 수 있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해 겪지 않아도 될 고충에 시달린 것이다.

취약계층 위한 보험료 경감제도, 모르면 죄?

현재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뉘어 일정 기준과 요건을 충족할 경우 보험료를 경감 또는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 있다.

체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가입자의 경우, 세대별로 ▲65세 이상 노인 ▲70세 이상 노인 가입자만 있는 세대 ▲한부모 가족(조손가정), 소년소녀 가정 ▲등록 장애인 또는 국가유공자 중 상이자가 있는 세대 ▲장기수용(행방불명)인 세대, 만성질환 세대 ▲사업장 화재·부도, 재산 경(공)매·압류 세대 ▲55세 이상 여자 단독세대 등을 대상으로 한 경감제도가 있다.

거주 지역에 따라 ▲농어촌 세대 ▲농어업인 세대 ▲섬·벽지 거주 세대 등에 대해서도 많게는 보험료의 50%까지 경감혜택을 준다.

실제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권 모씨(27세, 여성)는 아픈 아이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느라 28개월간 월 보험료 5만3,000원을 납부하지 못했고 체납보험료는 140여만원까지 불어났다. 체납금을 분할 납부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키는 날도 많아지자, 최근에는 압류독촉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건강세상네트워크에 체납금 구제 도움 요청을 하면서 뒤늦게 본인이 한부모 가정으로 감면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단에 경감신청을 해 보험료는 3,950원으로 조정됐고, 체납보험료도 29만원으로 줄어 과거 어렵게 납부했던 체납보험료로 충당하고도 돈이 남아 되돌려 받았다.

하지만 권 씨는 그동안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겪었던 심리적 부담과 체납 독촉으로 인한 고통, 이 모든 게 공단이 보험료 부과업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권 씨의 경우는 그나마 구제를 받은 사례다.

한부모 가정 등 ‘신청’에 의한 경감대상은 ‘신청일이 속한 달의 다음 달부터’ 경감된 보험료가 적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신청 이전에 부과된 보험료와 이로 인한 체납금은 소급해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권 씨처럼 한부모 가정인 김 모씨(24세, 여성)는 한부모 시설에 생활하면서 무상거주확인과 한부모세대가 인정된 그 시점부터만 기존의 2만8,510원이었던 보험료를 7,500원으로 경감받았을 뿐, 그 이전의 보험료는 여전히 체납된 상태다.

의료급여 대상인 국가유공자를 별도의 안내 없이 건강보험에 적용시켜 수년간 직장가입자 보험료를 부과하다 실직 후 지역가입자로 자동 전환시킨 사례도 있다.

오 모씨(37세, 남성)의 경우 거주지 이전으로 고지서 통지를 받지 못했다가 6개월 뒤 체납독촉 고지서를 받으면서 의료보험에서 제외된 것을 알았으나, 체납 보험료를 경감 받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폐질환, 만성신부전증 등 만성질환으로 6개월 이상 병원 진료를 받고 있으나 타인의 도움없이 일상생활이 곤란하고 생계가 극히 어려운 세대 등도 보험료 경감을 신청하면 된다.

또 소득이 감소했거나 폐(휴)업, 퇴직(해촉)한 경우, 재산 소유권이 변경된 경우,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는 경우 등도 가입자가 신청을 하면 사례별 기준시점에 따라 지역보험료를 조정받을 수 있다.

체납자의 경우에도 통장 압류 시 예금 잔액이 150만원 미만일 경우 소명 시 압류 해제가 가능하며 기초생활급여, 기초노령연금도 행복지킴이 통장을 개설하면 압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체납원인 해결보다 체납금 독촉에 집중...가입자 권리보장 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거나 안내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라는 게 문제다. 현재 공단은 보험료 조정 기준을 고지서 ‘이면’을 활용해 안내하고 있으며, 공단 홈페이지, 사이버민원센터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지만, 접근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체납자들은 공단에 보험료 관련 민원 및 상담을 할 때조차 이러한 경감 및 조정, 면제 정보를 안내하지 않으며 체납금에 대한 납부만 강조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체납자 허 모씨는 “공단이 통장 잔액이 150만원 이하인 경우 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그동안 통장에 50만원 이상 있어 본 적도 없을 만큼 공단은 돈을 다 빼갔고 잔액이 0원이어도 압류를 해놓았다. 잔액을 소명하면 압류 안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국민이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지적했다.

허 씨는 “차라리 사회보험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어려워도 매달 돈을 냈는데 몇 달 동안 못냈다고 사회적 빚쟁이로 몰리고, 병원도 이용 못하게 할 바에야 그 돈을 모았다가 병원갈 때 쓰는 게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꼬집었다.

허 씨 외에도 장 모씨(30대 여성)는 100만원이 든 통장을 압류당해 공단에 문의했다가 “체납금의 절반을 일시 납부해야만 압류해제를 해준다”는 답을 들은 반면, 주 모씨(50대, 여성)는 “분할 납부를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는 등 일시에 많은 체납금 납입만 독촉할 뿐, 압류금지채권이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특히 보험료 경감 및 면제의 상당수가 자발적 신청에 의한 것인 만큼, 해당 정보에 대해서 공단이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선 건강정책연구센터장은 “가입자가 건강보험료에 대해 몰라서 발생한 체납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일반인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문재인 케어 홈페이지를 만들 듯이 내용을 알고 콜 센터 문의하도록 해도 민원처리가 수월해 질 수 있다. 지금 공단은 민원에게 설명할 여력도 없어 오히려 시민단체에서 더 적극적으로 체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명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지난해 5월부터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상담센터’를 운영해 오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생계형 체납자 등 1,942명이 이 센터에 보험료 부과 및 체납 상담을 받았고, 센터를 통해 보험료 경감 및 조정 정보를 받고 실제 해결된 사례도 적지 않다. 그 외에도 의료기관 이용 등 긴급한 상황 및 경제상황을 고려해 210명에 대해서는 1개월분 체납보험료를 지원했다. 아름다운재단의 펀딩으로 지원된 금액만 6,124만원에 달한다.

건강세상 관계자는 “현재 건강보험은 가입자가 신청을 해야만 하는 신청주의의 한계가 나타난다. 제도의 구조적 문제라 가입자가 모든 것을 챙겨서 하지않으면 안된다”면서 “적어도 가입자 당사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체납이나 급여제한, 압류는 되지 않아야 한다”고 구조적 개편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유관단체 자료 연계가 가능해지면서 자동으로 보험료를 경감하고 있고, 의료급여의 경우도 자격을 취득하면 월 1회씩 보훈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로 자동 적용하고 있다”면서 “자료가 누락되는 경우는 특별한 사례로 최대한 행정기관과 자료를 연계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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