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25주년 기념 그랜드포럼서 전문가들 건보 거버넌스 개혁 강조
“시스템 두고 재원만 투입해서는 보장성 강화 목적 달성 못해”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등으로 현재의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건강보험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이를 극복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건보 체계의 변화가 예상되는 현 시점이 새 판을 짜는데 적기라는 지적이다.

청년의사가 ‘한국의료체계, 새 판을 짜자’라는 주제로 지난 13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창간 25주년 기념 그랜드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건보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최병호 초빙교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최병호 초빙교수는 ‘건강보험 거버넌스 구조,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발제를 통해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된 1989년까지 소위 ‘1977년 패러다임’이 유효하게 작동했지만 그 이후에는 변화하는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보장성 강화 및 지불제도 변경, 보험료 부과방식 개편 등 정부가 나름의 노력은 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로 인한 법적 보험자와 실질적 보험자의 괴리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취약한 보험자 기능 ▲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원구조의 비효율성 ▲요양케어의 제도적 이원화 ▲의료정보관리 미흡 ▲의료기술평가의 취약 등을 현행 건보 거버넌스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가 시행됐다”면서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재원만 투입해서는 보장성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으로 패러다임 전환에는 거버넌스 개선도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새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거버넌스 개혁 방향의 원칙을 제시했다.

최 교수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건보를 위해선 보편보장, 적정비용, 질 향상, 효율, 형평이 확보되는 거버넌스를 짜야한다”면서 “특히 의료 질 향상과 효율성 제고에 가장 역점을 둬야한다”고 피력했다.

또 “정부가 직접 통제·감독하기보다는 보험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이전하고 간접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면서 “하부 조직에 책임과 권한을 나눠줘야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금껏 정부가 주도해 온 주요 의사 결정은 보험자, 공급자, 환자(시민) 간의 참여와 합의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면서 “거시적인 틀에서는 정부가 통제력을 갖고 공정 경쟁을 감시하되, 미시적으로는 시장원리와 인센티브에 의해 시스템이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원조달과 관련해서 “소득비례의 일원화된 방식으로 운영하며, 이를 국세청이 맡아야 효율적 운영이 가능해진다”면서 “복지부와 보험자는 건강보험기금을 형평하게 배분하는 사업에 역점을 둬야한다”고 주장했다.

지속가능한 건보 체계 구축을 위해 투명한 거버넌스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문재인 케어 성공과 지속가능성 보장을 위한 보건의료체계 개혁’ 발제에서 “건보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고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심사체계 개편과 의료기술 관리 체계 마련하고 적정의료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를 만들어야 성공적인 보장성 강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의료계 참여가 필수적인데 투명한 거버넌스 체계 구축으로 그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김 교수는 “현재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는 큰 신뢰가 없다”면서 “앞으로 함께 일을 하려면 의료계에 ‘정부가 마음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투명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 구조적으로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료계와 정부, 시민사회단체를 적정 수 참여시켜 ‘문재인 케어 위원회’를 구성하고 문재인 케어 시행과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로 활용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이와 함께 국고 지원액에 대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령화 속도가 빠른데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가 타당한가’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고령화 속도가 빠른 현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의료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더 파국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면서 “보장성 강화를 동력으로 의료체계를 개편해 의료비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고령화 대비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패널토의에서도 현 건보 체계 문제점들이 지적되며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거버넌스 개혁이 요구됐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복지부 1년 예산과 버금가는 재정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며 "위원 선출도 복지부가 전적으로 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정심 구성과 관련해서도 “가입자 대표 8명은 보험료를 내는 사람들일 뿐 의료를 이용하는 주 계층이 아니다”라며 “환자단체 대표도 지난해에 겨우 들어갔을 뿐 아니라 건보 재정의 38%를 쓰는 노인 대표는 여전히 없다”고 비판했다.

또 “위원들 중 의학계 대표와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 건보 보장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며 “건정심이 50조가 넘는 재정을 움직이는데 바람직한 구조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의대 신의철 교수는 “우리 건보 거버넌스는 극단적인 정부 중심의 구조”라며 “심하게 말하면 독재 체계다. 정부가 건정심을 앞세워 건강보험의 급여범위를 정하고 가격 결정하며 보험자와 제공자를 완전히 통제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이어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책 행위를 해도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 점”이라며 “결손이 발생해도 차후에 보험료를 올려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뿐더러 그 주체도 건정심이기 때문에 정부는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거버넌스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각 주체들의 역할과 책무를 잘 설계해야 한다”면서 “차후 건보 거버넌스는 주요 역할자 간의 공정한 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조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역할자 간 서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면서 “이런 큰 틀에서 정부는 상호 견제와 경쟁을 통해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만의 특성을 반영한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의과학대학 지영건 교수는 “현 의료전달체계가 우리 문화적 특성과 합쳐져 근본적인 개혁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거버넌스를 논의할 때 외국에서 했으니 우리도 해보자는 식은 안 된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가진 속성과 전문의가 일차의료기관에서 전문 진료 수행하고 있는 특성을 감안해 어떻게 하면 근본적인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 시행에 의료계가 주도적 참여해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구 운영위원장은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급여가 25%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바라보지만 말고 실질적 증가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국민들의 동의와 합의만 만들어 진다면 의료계가 가진 숙원을 해소할 수 있다. (의료계가)생각했던 일들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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