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사각지대②...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납자?
소득·재산에 부과되는 지역보험료, 서류 한장 때문에 건보료 폭탄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장기 체납자’로 분류된 210만 가구. 전체 체납가구 413만 가구의 절반에 달한다. 이들 10명 중 7명은 한 달에 평균 5만원도 안 되는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생계형 체납자’로 불리고, 아파도 의료기관에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사전급여제한대상으로 분류돼 진료 접수단계에서부터 제재를 받거나 진료를 받게 되더라도 부당이득금으로 사후에 비급여 진료비 등 모든 비용을 되돌려 줘야한다. 뿐만 아니다. 적게는 몇백만원, 많게는 몇천만원까지 보험료를 장기 연체한 이들은 임신도, 대학 진학도, 취업도, 대출까지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다. ‘전국민 건강보장제도’라면서 이들은 왜 ‘사회보장’에서 제외돼야 할까. 일각에서는 보험료를 낼 수 없게 만드는 현재의 건강보험 부과와 징수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에 본지는 이른바 ‘생계형 체납자’들의 사연을 통해 건강보험제도의 허점을 조명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 제 나이 스물일곱, 제게는 1,600만원의 빚이 있습니다. 건강보험료 미납금때문에요. 10년째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밀린 보험료가 1,100만원이고, 제게 따로 부과된 보험료만 총500만원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장기 고액체납자가 됐고, 주민등록상 세대원이었던 제가 성인이 됐으니 대신 납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다 5년 전에 제가 단독세대로 분리되면서 세대주로서 별도의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현재 병원을 갈 때마다 부당이득금 고지서가 나오고, 체납독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체납금이 더 커질까봐 아르바이트로 번 돈에서 매달 보험료로 4만5,000원씩 내고 있지만, 체납된 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 역할도 한번도 안하시고, 어디에 계신지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체납까지 저보고 감당하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체납자’라는 이름에 가려진 체납의 진짜 이유

건강보험료 누적 체납금 4조9,225억원 중 지역가입자의 체납금은 3조3,947억원으로 전체 체납금의 68.96%를 차지한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7년 6월 기준). 전체 체납 지역가입자 413만8,000가구 중에서 김 모씨(27세, 여)처럼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체납세대는 32만4,000가구로, 누적 체납금도 1,157억원에 달한다. 아직 미성년자인 10대 체납세대도 8,000가구이며, 이들에게도 20억원의 체납금이 누적돼 있다.

미성년자임에도 체납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은 현행 건강보험법상의 ‘지역가입자 연대납부의무’ 때문이다. 상당수가 부모 및 보호자가 못 다한 보험료 납부의무를 대신 짊어지고 있다. 연대납부의무는 비단 특정 연령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주로 20~30대 청년층의 경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독촉의 고통속에 빠지게 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20개월 이상 체납된 아버지의 건보료 90만원을 대신 납부하라는 독촉장을 받고 있는 30대 최 모씨,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란 20대 여성이 미용실 취업 후 월급을 받자 부모님의 체납보험료 독촉장을 받은 20대 박 모씨, 아버지와 떨어져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보험료를 부과해 체납된 10대 손 모씨 등이 단적인 예다.

이처럼 연대납부의무는 과거 미성년자에게 과도하게 부과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면서 지난 2008년 10월부터 소득이 없는 만19세 미만 미성년자가 자발적으로 연대납부의무 제외 신청을 하면 부모와 동일세대에 있더라도 이를 인정해줬다.

특히 지난 4월 18일부터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인한 건강보험법 개정으로, 기존 2008년 9월 이전 미성년자는 포함하지 않았던 연대납부 면제까지 소급 적용되도록 법적 기반이 마련된 상태다.

따라서 미성년 시기에 부모와 연대해 부과된 보험료와 체납보험료는 연대납부의무에서 제외되고, 성인이 된 이후 부과된 보험료만 납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기존에 신청주의에 의해 적용됐던 미성년자 연대납부 제외의 한계로 인해 실제 연대납부를 한 미성년자의 현황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과 소득이 있는 미성년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등 한계가 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미성년자에게도 보험료 납부 고지와 징수독촉을 하고 있는 사례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어 체계적인 제도 개선과 현황파악이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최근 국회에서는 부과체계 개편시기와 별도로 미성년자의 건보료 연대납부 제외를 소득 및 재산 등과 상관없이 일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사회적 약자인 미성년자에게 건보료 납부를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폭력”이라며 “미성년자 제외로 인한 국가 재정 부담이 크지 않은 만큼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공단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5년 기준 장기체납자 중 25세 미만은 75~85%가 월 보험료 5만원 미만의 생계형 체납자였고, 20세 미만은 50%가 월 보험료 1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에 속해, 전체 장기체납 연령의 50~60%가 생계형 체납자였던 것에 비해 부담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됐다.

서류만 보고 재산있다 간주...생계도 어려운데 보험료 내느라 휘청

뿐만 아니다. 거주지 이전으로 인해 보험료가 실제 소득 및 재산 대비 과도하게 부과돼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는 사례도 많다.

실제 37세 이 모씨는 가정불화로 인해 아내 소유의 집에서 나와 부모님 집에 거주하고 있지만, 주소지를 옮기지 않았다가 경매절차 중인 집의 대표 세대주로 자동 전환됐다. 이후 집은 타인의 소유가 됐지만, 주소지 변경을 못한 이 씨는 또다시 전세 세입자로 간주돼 기존의 1만3,000원이었던 보험료가 8만5,530원으로 늘었다. 이혼으로 인해 이같은 사실을 모른 채 정신과 진료를 받으려다 사전급여 제한을 당하면서 65만1,800원의 체납금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39세 장 모씨의 경우는 교통사고로 인해 구치소에 수감된 기간에 거주지 이전을 못했다가 보험료가 과도하게 부과됐다. 출소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장기간 거주지가 불분명했던 장 씨는 과거 거주했던 주소지로 인해 과도한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52개월간 170만원의 보험료가 체납되면서 최근에는 통장까지 압류, 일용직을 나가 일을 해도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체납자 중에서는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장기 체납하는 도덕적 해이에 의한 체납자 이외에, 사실상 납부할 능력이 없는 보험료가 부과돼 ‘만들어진’ 생계형 체납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의 억울한 사정이 실제 보험료 조정이나 감면 등으로 이어지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건강보험료 부과 및 징수가 서류상의 절차를 까다롭게 적용하기 때문인데, 정해진 기준과 서류 등으로 증빙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실제 이 씨를 포함해 주소이전 지연으로 인해 실제 재산이 아닌데도 재산으로 간주된 사례에 대해 공단은 주민등록법을 원칙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건강보험법상 보험료부과방식이 지역가입자는 소득, 재산 및 생활수준과 경제활동참가율 등을 고려해 세대 단위로 이뤄진다. 이때 소득은 ‘소득세법’에 따른 종합소득을, 재산은 ‘지방세법’에 따른 재산세의 과세 대상으로 주택, 토지 등이 없으면 임차주택의 보증금 및 월세 등이 반영된다.

때문에 공단은 세무당국의 과세자료로 소득을, 지자체의 재산세과세표준 등으로 재산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된 사례처럼 주소이전 지연 등으로 인해 보험료가 과다하게 부과된 때에는 관련 법상 자료가 변경되거나 무상거주확인서 등의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만 한다.

공단 관계자는 “실제 가입자가 어디에서 살았는지 우리(공단)가 모르기 때문에 주소지를 근거로 한다. 가입자가 다른 곳에 살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이를 인정하면 주민등록법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주민등록법에 따라 거주지가 바뀌면 주소지를 옮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내년부터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부과체계가 개편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점점 높아지는 불만, 이의신청 중 보험료 부과·징수 60%

이같은 현실 때문에 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공단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실제 건강보험에 대한 가입자 및 피부양자 자격, 보험료 등에 대한 권리구제절차인 ‘건강보험이의신청’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이의신청 ‘발생(신청)건수’는 2011년 3,205건 이후 2014년(2,668건, 자진 납부기간 운영)을 제외하고 꾸준히 증가해 2015년 3,841건으로 늘었다.

이의신청건 중 이의신청위원회의 심의가 실제로 이뤄진 ‘결정건수’만 보면, 연간 3,000건이 넘는 이의신청 결정건 중 보험료 부과·조정과 징수에 대한 문제제기 비율은 많게는 60.7%(2012년)에서 적게는 54%(2013년)에 이른다.

이에 비해 이의신청 후 이의가 인정된 ‘인용’건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2015년을 기준으로 이의신청 발생건의 56.5%인 2,170건은 보험료 부과·조정(1,667건)과 징수(503건)으로, 이중 이의신청위원회 심의 결정으로 최종 인용(인정)된 건수는 보험료부과 48건, 징수 82건에 그쳤다.

심지어 해마다 전체 ‘인용’ 비율이 증가하는데 비해 보험료와 관련된 인용률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까다로운 이의신청 절차와 투명성과 공정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한 체납자 가족은 “과도하게 부과된 보험료를 조정해달라고 아무리 관할 지사에 이야기를 해도 그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이의신청도 해봤지만 기각됐다”면서 “이제는 이의신청에서 기각됐으니 더 이상 보험료 조정 등을 해줄 수 없다고만 한다”고 토로했다.

한 이의신청 위원은 “이의신청위원회가 열리면 안건만 200~300개가 넘는다. 이중에서 4~5개정도만 심의하고 대부분 지사와 본부서 제시한 의견대로 의결한다”면서 “이중에 체납은 거의 논의조차 안된다고 보면 되는데, 구체적인 사례나 회의록도 공개되지 않아 투명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의신청 현황을 보면 공단의 지역본부별 이의신청 건수 대비 인용률의 격차가 커 지역 간 행정처리가 다르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15년 지역본부별 이의신청 발생 및 결정현황을 보면, 이의신청 결정이 가장 많은 지역인 서울(총 1326건)의 인용률은 7.8%(104건)로, 전국 인용률 12.8%보다 낮은 반면, 대전(총 361건)의 경우 인용률이 33.2%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이의신청이 매년 유사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지역별로 인용률이 차이가 나고 있다”면서 “특정 지역에서만 인용이 안되는 사례가 접수된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이러한 현상은 지역본부별로 제대로 부과하고 징수했는지 파악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상담센터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공단 직원들에게 체납 독촉을 위한 재량권이 많이 부과돼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분할납부 기준도 법에서 재산청시 승인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담당자에 따라 분할납부 및 압류 해제 기준을 달리적용하고 있지만 그 이유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공단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내부 지침에 따라 민원을 처리하고 있으며, 사례에 따라서 결손처분이나 감면 등의 직원 권한을 확장시킬 경우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공단은 (보험료 부과 및 징수 업무를)집행하는 기관이지 정책결정기관이 아니라 개선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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