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사각지대①...한번 체납되면 빠져 나올 수 없는 늪
장기체납자 10명 중 7명, 한달 5만원도 없는 생계형 체납자...살 길 막막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장기 체납자’로 분류된 210만 가구. 전체 체납가구 413만 가구의 절반에 달한다. 이들 10명 중 7명은 한 달에 평균 5만원도 안 되는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생계형 체납자’로 불리고, 아파도 의료기관에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사전급여제한대상으로 분류돼 진료 접수단계에서부터 제재를 받거나 진료를 받게 되더라도 부당이득금으로 사후에 비급여 진료비 등 모든 비용을 되돌려 줘야한다. 뿐만 아니다. 적게는 몇백만원, 많게는 몇천만원까지 보험료를 장기 연체한 이들은 임신도, 대학 진학도, 취업도, 대출까지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다. ‘전국민 건강보장제도’라면서 이들은 왜 ‘사회보장’에서 제외돼야 할까. 일각에서는 보험료를 낼 수 없게 만드는 현재의 건강보험 부과와 징수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에 본지는 이른바 ‘생계형 체납자’들의 사연을 통해 건강보험제도의 허점을 조명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 저는 천식환자입니다. 호흡기장애2급 판정을 받아 매달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숨 쉬는 것도, 걷는 것조차 힘듭니다. 하지만 매번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8년째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해 사전급여제한대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는 제게는 매달 보험료를 내는 것이 너무 버겁습니다. 28년 전 매입했다가 잔금을 지급하지 못해 가등기상태인 집 한 채를 제 재산이라며 매달 10만원이 훌쩍 넘는 보험료를 내라고 합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밀린 보험료를 조금씩 냈지만, 건강 때문에 일을 자주 그만둬 분할납부조차 쉽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여동생이 주방일이라도 조금씩 할 수 있도록 고용해줬어요. 다행히 지난 4월부터 직장가입자로 매달 6만원씩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체납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며 건강보험 진료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공단에 체납보험료 분할 납부를 신청했지만, 과거에 분할 납부를 중단했다며 6개월 내에 1,200만원을 다 완납해야 보험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요. 한 달에 50만원의 병원비도 못내는 제게 매달 200만원을 내라니요.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사정도 해봤지만, 담당자는 “보험료 한번만 내고 병원가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하네요. 어렵지만 지금은 보험료도 내고 있고, 체납금도 조금씩 갚으려고 아픈 몸으로 주방 설거지 일을 하고 있는데, 없는 재산 있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보험료 납부할 기회도 안주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생계형 체납자들을 부도덕 하다 말할 수 있나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내내 숨이 차 제대로 말도 못 이어가던 허 모씨(58세, 여성).

보험료 체납 413만 세대 중 그녀처럼 보험료를 6개월 이상 납부하지 못해 의료기관 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가입자는 210만 세대에 달하며(건강보험공단 2017년 6월 지역가입자 기준), 공단이 ‘생계형 체납자’로 분류하고 있는 ‘연소득 500만원 미만’의 ‘월 보험료 5만원 이하’ 체납자는 248만 세대로, 전체 체납세대의 60% 이상이다.

특히 생계형 체납자(248만 세대) 중 6개월 이상 장기 체납이 145만 세대에 이르며, 이들이 체납한 건보료는 1조7,303억원으로, 전체 지역가입자 체납액 3조3,787억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5,085만2,000명) 중 지역가입자가 7,665세대(1,408만9,000명)이니, 월 5만원 이하의 보험료를 장기간 납부 못한 ‘생계형 체납세대’의 비율은 전체 가입자에 1.89%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지역가입자 체납금의 절반이 이들 ‘생계형 체납자’들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매년 400만명 장기체납...미성년자 체납자도 4000여명 달해

그러나 1년에 소득이 500만원도 안되는 가입자들은 과도한 보험료 부담 이외에도 독촉고지, 예금 압류, 의료기관 이용 제한 등의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특히 잦은 이직 등으로 생계조차 불안정한 체납자들의 경우 월 보험료조차 납부하기 어려워 한번 체납되면 좀처럼 이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와 건강세상네트워크, 아름다운재단이 공동으로 진행한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보고서’에서도 이같은 생계형 체납자들의 사정이 고스란히 확인됐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건강보험 6개월 이상 체납자 DB와 자격 DB, 개인별 건강보험 자격이력 추적 데이터, 건보증 자격DB 등을 분석 한 결과, 연간 220만~230만건의 장기 체납이 발생하고 있다.

2015년 기준 가구원수를 적용해보면, 체납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전체 인구는 4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2015년 기준 체납액은 3조400억원이 넘는다.

체납자들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 31회~36회 가량 체납해 매년 체납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많게는 336회까지 체납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인당 평균 체납액은 약 140만원으로, 월 보험료가 낮아질수록 체납횟수는 많아졌다.

장기 체납자 중에는 35~54세의 중장년층이 절반을 차지했지만, 20세 미만 미성년자도 4,000여명 이상, 20~24세 청년층도 4만2,000여명에 달했다. 세대별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지역가입자 특성상 연대납부의무로 인한 부모 또는 보호자의 납부책임이 자녀에게 이관된 것이다.

실제로 25세 미만 장기체납자들(4만7,892명)의 체납 시작 시기를 보면, 68%(3만2,626명)가 20~24세로, 1세 미만인 아이에게 체납이 시작된 경우도 81건(0.2%)에 달하는 등 10세 미만인 경우가 3%에 달했다.

이같은 현실 때문에 장기체납자들 중에 체납된 그해에 정산을 다 한 경우는 26%에 불과하다. 체납자 중 상당수는 수년간 체납이 반복돼 만성화 되고 있었다.

체납 시 연체료에 독촉·압류·의료기관 이용제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액, 장기 체납자들에 대한 구제보다는 과도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따라서 미납보험료에 대한 연체금 부과는 물론 체납보험료 독촉 고지,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예금통장 압류, 보험급여 제한 등으로 저소득층의 생계에 악순환이 야기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료는 장기요양보험료, 연금보험료 및 고용·산재보험료와 함께 사회보험료로 분류돼, 납부의무자라면 누구나 공단이 매월 부과·고지하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만약 기간 내 납부하지 않으면, 연체금이 0.1%로 계산돼 다음 달 보험료와 함께 고지된다. 한달이 지나도록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이후 최대 9%까지 연체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2016년 6월에 개정된 것으로, 2008년 6월 30일 이전에 고지된 보험료는 연체 시 3개월 이내 5%, 이후 6개월 이전까지 추가 5%, 이후 추가 5%가 더 부과돼 최대 15%를 부과했던 방식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또 체납보험료를 4개월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공단이 독촉장을 발송하는데, 이후에도 납입하지 않으면 체납보험료 강제 징수를 위해 동산, 부동산, 자동차는 물론 임금과 임대보증금, 예금통장과 같은 채권도 압류된다(단, 예금통장 잔액이 150만원 미만이라고 주장할 경우, 이를 확인 한 후 압류를 해제한다).

체납 보험료의 징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급기야 지난 2014년 7월부터는 보험료를 6회 이상 체납한 경우 연체금 부과뿐만 아니라 보험급여 혜택을 사전에 차단하는 ‘사전급여제한제도’가 도입됐다.

문제는 건강보험료 체납이 의료이용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와 신용, 소득평가에도 적용돼 정상적인 사회활동까지 제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출산을 앞둔 미혼모 김 모씨는 소득이 없어 월 5만7,000원의 보험료를 2년간 연체, 의료기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 모씨는 보험료 체납으로 인한 통장 압류로 양육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취업을 준비중인 최 모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모님의 보험료가 체납돼 지원서류인 건강보험납입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해 취업서류조차 제출 못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임산부를 위한 고운맘카드 발급 제한, 근로장려금 및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등이 입금되는 통장 압류, 거주지 마련을 위한 대출, 은행업무 등에 제한을 받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건강세상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2016년 5월부터 2017년 1월까지 9개월간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례만 519건이다.

10대는 물론 70대 이상까지 다양한 연령의 생계형 체납자들이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가장 큰 고충은 ‘병원 이용의 제한’으로, ‘심리적 압박’과 ‘통장 압류’ 등 가압류로 인한 어려움, ‘부당이득금 환수조치’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건세넷 관계자는 “체납자는 공단의 제재로 급여제한, 통장압류 및 취업제한, 심리적 고통 등 여러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제때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한 체납자는 건강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공단의 무분별한 통장압류는 당장의 기본적인 생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150만원 미만의 예금은 압류를 할 수 없음에도 무분별하게 하고 있으며, 이는 취업 제한으로 이어져 경제적 형편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현재 체납자에게 가해지는 제재가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권익위, 국회 등 과도한 급여제한 등 개선 요구 이어져

이처럼 체납자에 대한 제재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국회는 물론 권익위원회, 시민단체 등에서 계속돼 왔다.

실제 권익위원회는 지난 2008년 12월 “건보료 체납자 관리는 급여제한, 체납료에 대한 가산금 부과, 체납자 의료이용시 부당이득금 징수 등 불이익이 강력하고 중복적”이라며, “급여제한이 체납세대주 뿐만 아니라 세대원에게도 적용돼 체납시 장애인, 희귀질환자 등 의료약자들도 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권익위는 “급성질환자, 임산부, 희귀난치성질환 등은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권익위는 지난해 9월에도 체납보험료의 분할납부 등에 대한 충분한 안내가 없이 체납처분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 압류통장에 대한 해제 조건도 공단이 일정액 납부 후 분할납부 등을 임의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 체납자가 체납액과 납부능력을 고려해 일정기간 자율적으로 분할납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렇다할 변화는 없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빈곤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소득-재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부족이 송파 세모녀 사건을 낳았다”면서 “장기-생계형 체납세대에 대한 과감한 결손처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단이 건강보험 체납과 관련된 통계를 주기적으로 생산하고 모니터링을 해 징수 뿐만 아니라 체납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관계자는 “지금까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나 국정감사 등의 요구에 의해 비정기적으로 체납자료가 생성됐고 그마저도 현재 지역가입자에 한해 통계량이 산출됐다”면서 “자격이 변동되도 체납 이력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가입자격과 무관하게 전체 체납자의 규모와 청산경과를 모니터링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건강보험이 체납되면 국민연금도 함께 체납되고 신용대출 같은 다른 금융생활에도 제약을 받는다”면서 “부담 능력이 없는 체납자들에 대한 엄격한 체납처분과 사전에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보험료 경감 및 결손처분 지원, 의료수급권자 전환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단측은 생계형 체납자의 체납금 일괄 결손 처분은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며, 다만 장기적으로 결손처분 대상 기준을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은 공보험으로 연대해서 보험료를 납부하고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생계형 체납자라고 해서 일괄 결손처분을 하는 것은 성실하게 납부하는 이들과의 형평성에 맞지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소액재산자 등에 대한 결손처분 적용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으로 내년도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시기에 맞춰 적용할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5만원 미만 보험료세대에 대해서는 예금 압류를 유보하고 사전급여제한도 적용하지 않고 있는 등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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