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정신과 중재자로 국가정신건강정책 솔루션 마련 나선 정춘숙 의원
"정신질환자에 대한 기피와 무시가 난무한 사회 된 것 아닌가 걱정"

지난 5월 30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다. 1995년 제정됐던 ‘정신보건법’의 명칭은 물론 정신질환자의 정의부터 동의입원·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등 입원제도가 바뀌었고, 환자들의 권리구제 절차도 강화됐다.

20여년 만에 법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강제입원이라고 불리는 비자의 입원제도를 개선해 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탈시설화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시행 전부터 졸속시행이라는 비판에 부딪혔고, 시행 100일이 지난 지금도 적잖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8월 9일 국회에서 ‘국가정신건강정책 솔루션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후로도 지난 9월 6일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자그마치 21개의 정신건강 관련 기관들이 참여한 릴레이 포럼이 개최됐다. 고정 발제자만 20여명으로 탈원화, 회복지향 서비스, 입원절차, 중독 등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면서 정신건강정책의 현실과 과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중심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있다. 정 의원은 이번 포럼이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 개선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에 본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유일무이하게 정신건강정책에 열혈을 보이는 정춘숙 의원을 만나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의 과제와 국회, 의료계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정책은 이슈화 되지 못했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 5월 30일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기념행사가 열려 참석한 바 있다. 그런데 그동안 국립정신건강센터(구 국립서울병원)를 방문한 국회의원이 한명도 없었다고 하더라. 그날 참석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당자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들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지난 23년간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대한민국 최초의 가정폭력, 성폭력 전문상담기관)에서 일 해오면서 정신장애인들을 만나왔다. 그들이 억울한 사연을 겪었음에도 증거능력을 갖지 못한다며 무시당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봤는데, 그때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정신건강정책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됐다.

- 최근 3회에 걸쳐 국가정신건강 정책솔루션 포럼을 주관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될 때부터 100일 정도 지켜본 후에 실제 개정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문제점이나 보완점은 없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뜻을 같이 해주는 21개 정신건강 관련 기관들과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입장을 가진 단체들이 함께하는 자리인 만큼 단 1회로 끝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회에 걸쳐 포럼을 개최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은 것 같다.

포럼 때마다 다양한 주제를 다뤘지만,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할 말을 못해 왔는지 알게 됐다. 또 정신건강정책은 알던 것보다 더 많은 이슈가 있는, 엄청난 과제라는 것을 느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고 지속적으로 정책이슈를 팔로업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러는 사이에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기피와 무시가 난무한 사회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번 포럼은 다양한 정신건강관련 기관과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 실제 지난 6일 진행된 정책솔루션 포럼에서 건강관련 단체들이 자기반성적 성찰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시작은 19개 정신건강관련 단체들이 참여했지만, 마지막에 2개의 단체가 동참했다. 그만큼 이번 포럼이 유관단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계기가 됐다. 더욱이 이들이 그간 논의를 거쳐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차별 철폐를 중심으로 22가지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

기존의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은 거의 고려되지 않은 채 어떻게 하면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인권은 무참하게 짓밟혔고, 사회는 물론 관련 전문가들도 문제 해결에 소홀했다. 그러나 이번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을 계기로 관련 종사자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를 공식 선언했다는 것은 향후 정신건강정책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00일이 지났다. 의도대로 시행되고 있다고 보나.

법 개정으로 인해 정신질환자들에게 과거와 달리 다양한 정책과 복지서비스가 실시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은 괄목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현실은 그간 정신건강 인프라의 지원이 적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법이 개정되고 100일이 지나도록 의원실로 관련 민원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와 그의 가족들, 관련 기관 종사자 등 다양한 이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고 있으면, 법 시행 전에 좀 더 철저히 준비를 했어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들 정도다. 그만큼 앞으로 국회가 날카로운 눈으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관련 사항과 법 자체의 보완점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 법을 둘러싼 의료계와 보건복지부 간 갈등도 적지 않다. 추가 진단의사 부족 등의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당연히 이해당사자와 정부의 충돌은 고쳐가야 하는 부분이다. 정부도 향후 계획과 그 정황을 상세히 설명해야 하고, 정책 시행의 우선 순위를 정할 때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맞춰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한다는 목적은 같은 만큼 현실을 감안해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할 것이다.

또 법 시행 전 2차 진단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자체 진단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상태다. 이는 당시 큰 논란이 되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2차 진단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도 않아 실효성과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 때문에 당초 복지부 계획대로 국립정신건강센터에 2차 진단 전문의를 배치해야 하며, 질 높은 2차 진단을 위해 16명보다 더 많은 숫자를 채용해야 한다.

그 외에도 정신과 수가가 낮다는 지적도 있다. 낮은 수가로 인해 1분 단위 진료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만큼 정신질환의 특수성을 감안해 우선적으로 적정 수가를 지급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정신건강 정책에 대한 정부 예산과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 굉장히 부족하다. 올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정책 예산은 1,339억원으로 복지부 전체 예산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1,339억원으로 정신질환의 예방부터 치료, 재활은 물론 중독관리, 자살예방, 약물오남용까지 다 감당해야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자살예방에만 한해 7,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로 인해 자살률이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미국도 정신건강사업에만 1조3,000억원이 투입됐는데 인구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1,339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 뿐만 아니라 인력도 부족하다.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 담당자는 11명뿐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 최소한 정신건강정책국과 각각 전담과를 만들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신건강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 지난해 국립서울병원이 정신건강사업과 정신건강연구 등의 기능을 강화한 국립정신건강센터로 탈바꿈했다. 이 센터가 정신건강관련 정책 수립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4월에 센터를 방문했을 때 국가정신건강정책과 연구를 수행하고 취약계층 등을 위한 공공 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정된 예산 때문인데, 건물은 리모델링 됐지만, 아직 이러한 업무를 수행할 전문인력이 부족해 비어있는 층이 있다.

정신건강은 무엇보다 전문 인력과 예산 등 인프라가 중요한 사업이다. 센터가 정신건강정책에 핵심타워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 한정된 정부 살림에서 정신건강정책을 위한 별도 예산을 꾸리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어떻게 하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 자살관련 과가 복지부에 신설되는 만큼 이에 대한 예산은 확대될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국이 생겨야 한다고 나 또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신건강 관련 공약을 낸 만큼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관련 대안이 나올 것이다.

다만 정신건강정책의 예산 지원과 제도 개선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려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중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이 치매국가책임제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이제는 치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많은 국민들이, 그리고 정부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도 마찬가지다. 정신질환자를 둘러싼 사회적 낙인을 지우고 조기치료를 통한 사회로의 복귀가 가능하다는 점을 전문가들이 나서서 알려야 하고 다양한 솔루션도 제시해야 한다.

- 장기적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의 성공적인 안착과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의 발전을 위해 의료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맞다. 그동안 행정중심적인 말을 하는 복지부와 현장중심적인 말을 하는 정신과의사들 사이에서 경청하면서도 이들을 중재하려고 노력해왔다.

의사들도 복지부 말고도 기획재정부와도 만나 아이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해야 한다. 필요하면 청와대도 만나 설득하는 등 전 사회적인 동의가 있어야 그 만큼의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과 소통할 때도 전략이 필요하다. 수가만 올려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치료해야 효과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위해 현재의 수가로는 어렵다는 점을 알리는 등 대의명분을 강조해야 한다. 그동안에도 의료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줬지만 결국에는 수가요구만 기억에 남는다. 계속해서 잊혀져 가는 기본, 그 당위성을 계속 이야기하고 인식시켜 줘야 한다.

- 정신건강복지법 등을 비롯한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국회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은 3차에 걸쳐 토론을 진행했으니 이를 토대로 개정해야 하는 부분을 정리하고 있다. 또한 정책적으로 제안할 것을 찾아내는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시작을 했으니 지속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추진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포럼에 함께 한 단체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을 생각이다. 마치 막아놓은 댐이 열리듯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더라. 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수렴해 중장기 플랜을 짜도록 하겠다.

또한 최근 발의한 국립트라우마센터 설립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면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시작을 하면, 마침표를 찍자'는 신조대로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이 개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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