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29개 섬 순회 진료하는 ‘충남501'
드라마와 달리 외과의사·여의사는 없어

섬마을에서 당장 수술이 필요한 맹장염(충수염) 환자가 발생했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는 육지까지 가려면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더라도 2~3시간은 걸린다. 마침 이 섬에 병원선이 와 있었지만 수술이 가능한 곳이 아니다. 이때 병원선에 부임한 외과 의사가 등장해 치과 진료실에 있는 진료 의자에서 치과용 석션(suction)기기 등을 이용해 수술을 시작했고 성공했다.

MBC 드라마 <병원선>에 나온 장면이다. 드라마처럼 의료취약지인 섬마을을 다니며 주민들을 진료하는 배가 병원선이다. 현재 인천과 충청남도, 경상남도에 각 1척, 섬이 많은 전라남도에는 2척이 운항 중이다. 드라마는 실제 병원선의 모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선’이라는 설정만 빼면. 물론 배우 하지원이 연기하는 외과 전문의 ‘송은재’와 같은 여의사도 실제 병원선에는 없다. 병원선에 근무하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는 모두 공중보건의사들이다.

지난 1971년 6톤급 선박으로 출발했던 충남501은 1978년 135톤급으로 22년간 운항했으며 현재는 2001년 건조된 160톤급으로 운항 중이다.

병원선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지난 7월 중순, 대천항을 찾았다. 충남도에서 운영하는 병원선 ‘충남501호’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지난 1971년부터 운항해 온 충남501은 우리나라에 있는 병원선 5척 중 환자 진료 실적이 가장 많다. 충남도 내 29개 섬마다 월 1회 이상 방문해 진료한다. 인구수에 따라 한번 출항해서 3개 섬을 순회한다. 2010년 KBS <인간극장>과 2014년 <다큐3일>에 나오는 등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을 타 병원선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다.

충남501은 드라마 <병원선>의 모델 중 한 곳이기도 하다(현재 드라마는 병원선 ‘거제511’이 운항 중인 거제도를 배경으로 찍고 있다). 윤선주 작가는 집필 전 일주일 정도 충남501을 타고 섬 진료를 취재했다고 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치과 공보의 ‘차준영’(김인식 분)도 충남501에 근무했던 치과 공보의의 이름이다.

섬주민들에게 병원선은 ‘종합병원’

이날 충남501이 진료를 하러 간 섬은 대천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삽시도(충남 보령시 오천면)다. 면적 3.8㎢인 삽시도는 충남 지역 섬들 중에서도 비교적 큰 섬으로, 주민 500여명이 살고 있다. 보건진료소가 유일한 의료기관인 삽시도에는 약국도 없다.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삽시도를 찾는 충남501이 주민들에게는 ‘종합병원’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오전 10시경 대천항을 떠난 충남501은 1시간 뒤 삽시도 선착장 인근에 정박했다. 이후 작은 보트로 선착장에서 기다리는 주민들을 병원선으로 이동시켰다. 오종명 선장(병원선운영팀장)은 “선착장에 배를 대면 여객선이나 어선이 다니는데 불편할 수 있어 바다 위에 정박하고 보트를 이용한다”며 “지역에 따라 육상으로 의료진이 나가서 진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트를 타고 병원선에 오른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진료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충남501에서는 내과, 치과, 한의과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임상병리검사와 방사선촬영도 가능하다. 약제실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하지만 드라마 <병원선>에 나온 수술실 또는 그런 역할을 할 공간은 없다. 160톤급이라고 해도 내부 시설·장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1차 진료, 그것도 만성질환 중심으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충남501은 초음파기, 치과유니트, 방사선(X-ray) 촬영장치, 골밀도측정기, 자동생화학분석기, 전해질분석기, 자동뇨분석기, 당화혈색소측정기, 자동혈액분석기를 갖췄다.

충남501 보트를 이용해(위) 병원선에 오른 삽시도 주민들은 최건용 사무장(아래 왼쪽)에게 진료 접수를 한 뒤 진료실 앞에서 대기한다.

오 선장은 “섬 주민들은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들로 두 번 이상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으면 약 처방도 하지 않는다”며 “두달 동안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 환자에게는 한 번 더 진료를 받지 않으면 약 처방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보낸다”고 했다.

삽시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신명자씨도 “한 번 더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으면 고혈압약을 처방해 줄 수 없다고 해서 왔다”며 “병원 진료를 받고 고혈압 약을 처방 받으려면 대천까지 나가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섬 주민들한테 병원선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종합병원 같다”고 말했다.

병원선만 2년째 타고 있는 내과 전문의

충남501에는 드라마 <병원선>처럼 내과 전문의와 한의사, 치과의사가 공보의로 근무 중이다.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주민들이 진료를 받으러 와 오후까지 환자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통 하루 평균 60명 정도 진료하지만 이날은 80여명이 진료를 보러 왔다.

충남501에서 공보의로 근무하고 있는 내과 전문의 정상옥씨와 치과의사 양병진씨, 한의사 최형준씨가 삽시도 주민을 진료하고 있다(위에서부터).

가장 많은 환자가 몰리는 건 역시 내과였다. 내과 전문의인 정상옥씨는 공보의 2년차로 1년차 때는 전남에서 병원선을 탔었다. 병원선만 2년째인 셈인데, 배 멀미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병원선이 출항하면 기관실에 누워 있다가 진료를 할 섬에 도착해 정박하면 일어나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그는 “섬 간 거리는 전남보다 가깝지만 격렬비열도를 가야 하는 날은 2박3일이나 3박4일을 배에서 있어야 해서 힘들다. 파도가 센 날은 거의 누워서 지낸다. 배 멀미는 적응이 안된다”고 했다.

치과 공보의 1년차인 양병진씨는 선배의 추천으로 병원선을 타기로 했다고 한다. 섬 마을을 다니며 진료하는 경험을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병원선에서 할 수 있는 진료가 많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이를 빼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케어하는 게 쉽지 않아 많이 흔들릴 때만 발치한다”며 “특히 신경치료를 못하는 게 아쉽다. 장비 지원은 잘 되지만 신경치료는 3~7일 간격으로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 자주 진료할 수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한의과 공보의 1년차인 최형준씨도 병원선 근무를 원했다고 한다.

“계속 배에 있어야 하는 건 힘들지만 섬을 다니면서 진료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가끔 섬으로 직접 나가 진료를 하면 음식을 가져오시는 데 섬 주민들의 정이 느껴진다.”

충남501 터줏대감들

충남501 터줏대감은 따로 있다. 1991년부터 방사선사로 근무한 최건용씨와 1992년부터 근무한 이용우 임상병리실장이다. 최씨는 충남501 사무장으로, 드라마 <병원선>에서 배우 박광규가 연기하는 ‘추원공’의 모델이다. 최 사무장이 병원선을 타면서 섬 주민들과 함께 생활해 온 지 벌써 26년째다. 최 사무장은 “배 멀미가 너무 심해서 병원선을 오래 못탈 줄 알았는데 26년이나 탔다. 내년이면 정년퇴임한다. 10년 전 엑스레이 촬영을 한 한 주민의 폐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돼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었다. 폐암 초기였다. 그 분이 나중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더라. 이런 보람 때문에 일한다”고 말했다.

간호사 정항심·정희정·채정원씨도 오랫동안 충남501에서 근무하면서 매년 새로 오는 공보의들과 손발을 맞춰왔다.

의료팀 외에 선박운항팀인 김연익 기관장, 김순범 기관사, 이선영 일등항해사, 장재성 이등항해사, 최종훈 갑판장, 민정환 감판원, 김진식 통신사, 정명희 주방장도 오랜 세월을 충남501과 함께 해 왔다.

오종명 선장은 “이 섬 저 섬을 다니며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팀만큼 운항팀도 중요하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사람들이다. 섬 주민들이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한다”고 말했다.

오 선장은 약국도 병원도 없는 의료취약지에 사는 섬 주민들에게 병원선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지만 정부 지원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법적 근거 없이 지자체 조례로만 운영되고 있어 힘들다는 지적이다.

“병원선을 운영하는 데 가장 많은 드는 비용이 유류비다. 지자체 조례로만 운영되다보니 정부 지원이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다른 지역에서 병원선 진료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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