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 저자 최민·김대호 전문의,가 동료의사들에게 바라는 당부

한여름 태양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강철 구조물 사이에서 한창 공사 작업중이던 23세 청년이 돌연사했다.

그를 담당했던 응급실 의사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추정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후에도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게 고인이 산업 재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희박해 질 무렵, 직업환경의학과 류현철 전문의가 청년이 일했던 공사 현장을 찾았다.

류 전문의는 그곳에서 청년이 ‘열사병으로 인한 구토, 그로 인한 질식사’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청년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이 사건은 신작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에 소개된 수많은 산업 재해 사례 중 하나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14명이 산업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이야기와 안타까운 사연들을 담고 있다.

(왼쪽부터)근로복지공단 김대호 연구위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상임활동가

이 책의 공동저자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근로복지공단 직업성폐질환연구소 김대호 연구위원(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앞선 청년과 같은 사례들이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때문에 “근로환경으로 인해 병이 발생할 수 있음”을 동료의사들도 인지토록 하고자 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민 상임활동가는 "이 책은 의사들을 위해 만들었다. 오늘 당신이 만난 환자가 노동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의 직업이 어떠한 질병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대호 연구위원은 직업성 폐질환의 산업 재해를 승인·관리하는 직업성폐질환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산재의 인정이 거듭될수록 직업 환경 또한 개선된다는 점을 체감했다며, 이러한 산업 재해로서 판정하는데 의료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업장에는 많은 위험 요소가 있지만 이를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해 산업재해로 판정되면, 사업주는 제2의 산재를 막기 위해 시설을 개선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 활동가는 “2002년 무렵 노동자들이 집단 산재 투쟁을 하면서 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공장에는 사람을 대신해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는 다양한 장비가 생겼고 인력 충원도 이뤄지는 등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이들은 또 외상사고로 인한 위험 예방 못잖게,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 예로 수은 중독이라는 직업적 환경을 인지하지 못해 어린 중학생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사건을 언급했다.

최 활동가는 “1987년 공장에서 온도계를 만들다가 불면증과 두통, 전신발작 증세 등을 보인 중학생 문송면 군이 의원, 한의원, 심지어 무당집까지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며 “뒤늦게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수은 중독 가능성을 인지하게 됐다. 아마 좀더 빨리 그의 근로환경을 인지했더라면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산재 인정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인정 기준이 높다기보다, 노동자와 그의 병을 진단하는 의사가 ‘직업으로 인해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 활동가는 “분진 노출로 생긴 폐암과 류마티스에 의한 폐질환은 병리학적으로 동일하다. 의사가 환자 이야기와 함께 직업, 환경 등에 귀를 기울이면 병리학적으로 동일한 질환이지만, 발생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원인에 따라 치료와 건강관리 방법을 다르게 처방할 수 있다. 이는 곧 한 생명을 살리고 또다른 희생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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