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원 원장의 미래 의료를 만나다

작년 12월 인천 길병원에서 도입한 이래 여러 병원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인공지능 IBM 왓슨은 암환자의 치료 방침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왓슨은 의료기기 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의사가 참고하는 일종의 참고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

보다 본격적인 의료 인공지능은 어떨까? 국내 회사들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하고 있는 의료 영상 판독 시스템의 경우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실제로 허가를 받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적용은 어떨까? 국내에서 상당 기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국내 의료보험 수가는 의료인의 행위에 대한 기술료와 사용한 재료에 대한 비용으로 구성된다. 인공지능과 같은 IT 시스템에 대해 수가를 인정해줄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국내에서 IT 시스템이 수가를 받은 전례는 의료 정보 시스템인 PACS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수가는 미국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미국의 경우 틀을 벗어나서 수가를 인정해준 사례가 있다. 컴퓨터를 영상 판독에 적용하는 컴퓨터 보조 진단(Computer-Assisted Detection: CAD)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직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전인 2002년, 노인을 위한 국가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에서 유방 촬영에 대한 CAD에 대해 수가 적용을 결정한 바 있다. 그 결과로 미국의 CAD 시장은 수 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인공지능이 적용되지 않은 기존 CAD의 정확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정확도가 높은 판독 시스템을 만들면 수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의료의 가장 큰 지불자인 건강보험의 수가 적용을 받지 않고 인공지능이 의료 시스템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해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슈는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좋은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여 환자들이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는 수가 적용 없이 인공 지능의 발전 방향에 영향을 끼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영상 판독이 수가 적용을 받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왓슨이 그랬던 것처럼 병원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때, 병원이 원하는 시스템은 건강보험이 원하는 시스템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원은 의료 사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사소한 이상을 모두 찾아내는 시스템을 원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추가 검사 등으로 인해서 의료비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건강보험이 원하는 바와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수가 적용 없이 신기술이 의료에서 적용되는 양상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국가적인 아젠다가 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이 상징하는 신기술이 과거에 만들어진 제도로 인해서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건강보험 수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절대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비용 효율적으로 국민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건강보험의 본래 취지에 무엇이 부합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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