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 - 아프리카

잠베지강변의 평원 위로 아침 첫 햇살이 퍼지는 순간

아프리카에서 맞는 7일째 아침이다. 오늘은 잠비아 쪽의 모시오아투냐를 구경하고 케이프타운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잠베지강변의 평원 위로 아침 첫 햇살이 퍼지는 장엄한 순간을 보기 위하여 조금 일찍 식당으로 갔다. 해가 뜨는 모습이나 지는 모습은 어디서 보아도 좋지만, 아프리카 평원에서 보는 일출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수령이 1,300년이나 되었다는 바오밥나무

8시에 숙소를 떠난 버스는 1,300년 됐다는 바오밥나무(Baobab Tree)가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시대에 씨눈을 뜬 이 나무는 신라왕국보다 더 장구한 세월을 살아온 역사의 증인인 셈이다. 그쯤 나이를 먹었는데도 말라붙은 가지가 하나도 없이 독야청청하고 있으니 참 대단하다. 아프리카 바오밥나무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 B612에는 바보밥나무의 씨앗이 널려있는데, “(바오밥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간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별을 관통할 수도 있다. 아주 작은 별이라면, 바오밥 나무는 그 별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을 우려한 어린 왕자는 싹이 튼 바오밥나무는 눈에 띄는 대로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집 한 채 크기의 B612는 바오밥나무가 자라기에는 너무나 작다는 것인데, 도대체 바오밥나무는 얼마나 클까?

바오밥나무는 몸통이 가장 큰 나무이다. 높이가 20m, 직경이 9~12m이고 둘레는 40m 정도에 이른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미국 최고봉 휘트니산 서쪽의 세콰이어 국립공원에서 자라는 자이언트 세콰이어(Sequoiadendron giganteum) 나무이다. 그 가운데 ‘셔먼장군(General Sherman)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높이가 84m에 이르고, 밑둥의 둘레가 31m이다. 우리가 본 바오밥나무는 높이가 23m에 둘레가 18m에 달한다. 나이는 1,000 ~ 1,500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상에는 모두 8종류의 바오밥나무가 존재하는데, 마다가스카르섬에 6종이 있고,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각각 한 종류가 살고 있다. 바오밥나무의 수명은 몇 천 년에 이르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림포포(Limpopo)의 선랜드팜(Sunland farm)에 있는 수령 4,000년 된 바오밥나무가 가장 오래된 나무로 줄기에 생긴 공간에 (pub bar)를 차려 관광객을 맞을 정도이다. 바오밥나무는 270년까지는 빠르게 성장하다가 그 뒤로는 성장속도가 떨어진다. 500년은 돼야 거목이라 할 수 있고, 1,000년이 되면 줄기 속에 빈공간이 만들어진다. 경주 동궁원과 한택 식물원에 가면 커다란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는데, 한택식물원의 바오밥나무는 호주산으로 키가 7m, 둘레가 3.5m 정도로 원산지의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길이 20~30cm에 수세미처럼 생긴 바오밥나무 열매는 털이 있고, 딱딱해서 쥐처럼 생겼다. 그래서 ‘죽은 쥐 나무(dead rat tree)’라고도 하며, 익은 열매를 원숭이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원숭이 빵나무(monkey-bread tree)’라고도 한다. 열매는 노화 방지 성분이 있으며, 열병이나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다. 딱딱한 과육을 물에 불려 먹으면 새콤한 맛이 난다. 씨의 껍질이 매우 단단하여 싹을 틔우기가 어려운데, 초원에 불이나면 껍질이 갈라지면서 싹이 틀 수 있게 된다.(1)

바오밥나무의 모습을 보면 마치 하늘을 향하여 뿌리를 펼친 거꾸로 선 듯하다. 이런 독특한 모습은 다양한 전설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재미있는 전설의 긴 이야기를 줄이면 이렇다. 세상을 만들 때 신이 처음 만든 바오밥나무는 보잘 것이 없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우는 바오밥나무가 안쓰러웠던 신이 소원을 들어주었더니 끊임없이 욕심을 부렸고, 몇 차례 소원을 들어주던 신도 결국은 화가 치밀어서 “에잇, 이런 욕심쟁이 녀석!!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불과하고 계속 욕심을 부리다니. 앞으로는 뿌리가 하늘을 향하게 자라거라!” 라며 바오밥 나무를 뿌리째 뽑아 거꾸로 심어버렸다는 것이다.(2)

잠비아에서 짐바브웨로 향하는 트레일러에는 1차 가공된 구리뭉치가 실려있다. (정해붕님 제공)

바오밥나무를 떠난 일행한 전날 저녁 보마식당에서 구경한 목각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이곳에서 우리도 나무를 깎아 만든 기린을 6불에 샀다. 그동안 우리가 들렀던 어떤 기념품가게에서도 이런 품질의 기념품을 이런 가격에 파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서 조금은 걱정을 했지만, 짐바브웨를 떠나 잠비아로 가는 입출국 절차가 수월하게 진행되면서 벌충을 했다. 잠비아에 입국수속을 하면서 보니 일차 가공한 구리덩어리가 가득 실린 커다란 트레일러가 짐바브웨로 가고 있었다. 1970년대만해도 잠비아는 연간 75만톤의 구리를 생산하던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국이었다.

모시오아투냐로 가는 길에 태양을 가리는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다(좌), 폭포 위를 흐르는 물은 차분하지만...(우)

잠비아에 다시 입국한 일행은 모시오아투냐로 향했다. 땅으로부터 거꾸로 하늘로 향해 피어오르는 구름을 멀리서부터 볼 수 있어 모시오아투냐가 가까워짐을 알 수 있다. 9시반 무렵 관리사무소에 도착해서 현지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폭포구경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폭포에 흘러드는 잠베지강을 구경했는데, 물흐름이 고요해서 잠시 뒤에 굉음을 울리면서 폭포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이라는 분위기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동쪽 폭포의 초입부터 안개비가 만만치 않다(위), 나이프 엣지에서 파노라마 뷰로 찍은 동쪽 폭포의 전경은 온통 비와 안개 속에 숨어있다.(아래)

잠비아쪽에서는 나이프 엣지(knife edge)라는 이름의 절벽에서 모시오아투냐의 동쪽 폭포만을 볼 수 있는데, 수량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폭포에서 만들어지는 물안개가 그야말로 폭우를 쏟아내고 있었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방울 세례 덕분에 나이프 엣지에는 열대 우림이 들어서 있다. 폭포 위 잠베지강을 구경할 때만해도 화창한 날씨였지만, 폭포를 구경하는 산책길에 들어서자 이내 안개비가 떨어지다가 좀 더 들어가면 소나기로 변한다. 폭포 역시 스스로 만들어내는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아서 전체의 모습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모시오아투냐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

눈길이 닿는 곳까지 아울러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나와 반대편에 있는 인도교 쪽으로 뜬 무지개를 찍는 순간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작동을 멈춘다. 아니 스마트폰 자체가 꺼지고 말았다. 전날 짐바브웨 쪽에서 모시오아투냐를 구경할 때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카메라 등은 특히 침수에 조심하라는 인솔자의 당부를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짐바브웨 쪽의 모시오아투냐에서는 안개비처럼 뽀얗게 눈앞을 가리는 비였다면 잠비아쪽 모시오아투냐는 물보라가 만드는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붓는 소나기라서 우비를 입었다고 해도 온 몸이 순식간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는데, 당연히 조심을 했어야 했다. 역시 모시오아투냐의 위용을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어야 하는데 욕심이 지나쳤다.

스마트폰이 멈추자 자연스럽게 모시오야투냐의 장엄한 모습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의 저자 탕누어가 전하는 나바호족 나카이노인의 말에 따르게 된 셈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기억하고 눈길을 한 곳에 멈춰 그 모습을 기억하라. 눈이 내릴 때의 산의 모습을 관찰하고 푸른 풀이 돋아날 때의 모습을 관찰하고 비가 내릴 때의 모습을 관찰해라. 가서 산을 느끼고 신의 냄새를 기억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산속 바위의 촉감을 탐색해라. 이렇게 하면 이곳이 영원히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잊고 있던 것을 모시오아투냐가 일깨워준 셈이다.(3)

다행히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외교부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하면서 스마트폰이 소생 가능성을 알렸다. 하지만, 일단 조심하기 위해서 케이프타운의 숙소에 도착하여 헤어드라이기로 말릴 때까지 꺼두기로 했다. 그래서 모시오아투냐에서부터 케이프타운의 숙소에 이르기까지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참고자료:

(1) 열대식물 이야기. 바오밥나무 이야기.

(2) 트리 플래닛.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에 대한 진실.

(3) 탕누어지음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209쪽, 글항아리,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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