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 “바이러스 있다고 모두 병 생기지 않아” VS “후유증 큰 만큼 적극 관리해야”

인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를 제2군 법정감염병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발의된 것을 두고 의료계 내에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자연치유가 가능할뿐더러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하면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자궁경부암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밝혀진 만큼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국민의당 이찬열 의원은 지난 11일 인유두종 바이러스 등을 제2군 법정감염병에 포함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의 중요한 원인 인자로 알려져 있으며, 파필로마바이러스과(Papillomvirus family)에 속하는 이중 나선상 DNA 바이러스다.

현재까지 알려진 100여 종의 인유두종 바이러스 중에서 40여종이 생식 기관에서 발견되며, 자궁경부 상피 내에 병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고위험군(high-risk group)인 발암성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과 연관성이 높다다.

이에 이찬열 의원은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 여성암 중에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발병률이 높은 암으로 우리나라도 매년 수천 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고통 받고 있다”며 “발병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못한 다른 암과 달리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때문에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를 제2군감염병에 추가해 국민 건강 증진을 도모해야 한다”고 법 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법안이 발의되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무리한 입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인유두종 바이러스의 경우 20~30대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 절반 가까이 양성으로 나온다”면서 “하지만 양성이 나왔다고 모두 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균이 증식이 돼야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지 증식하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치유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검사 방법이 예민해져서 병을 일으킬 정도로 증식되지 않아도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전염병이라고 하면 일정한 치료나 격리가 이뤄지는데 증상이 없는 사람을 격리하거나 치료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꼬집었다.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될 경우 환자 개인정보가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A씨는 “환자 개인정보는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할 사항인데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면 이를 신고 또는 보고해야 한다”며 “그러면 환자가 원치 않은 경우도 강제로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증상이 없는데도 국가가 환자 정보를 마음대로 가지고 가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라고 지적했다.

또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되면 일정부분 의사들에게 신고의무가 부과되는데 이는 의사들에게도 부담”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인유두종 바이러스를 법정전염병으로 정한 나라도 없는데 왜 우리나라만 지정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B씨도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주로 성생활로 전파되는데 이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면 어떻게 전염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환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도 있을 텐데 법안은 이러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분명한 만큼 법정감염병 지정이 타당하다는 입장도 있다.

비뇨기과 전문의 C씨는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자궁경부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남성에서도 음경암이나 인후두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씨는 이어 “감기처럼 후유증이 남지 않는 질병이면 문제가 없지만 치명적이고 복구가 완벽히 불가능한 질병이기에 법정전염병으로 규정하는 것이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방법론적 문제를 잘 논의한다면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취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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