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구 교수 "치료용 운동프로그램인 만큼 의사가 처방해야"

고령화로 인해 만성질환 관리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해결책으로 ‘운동’을 제시하는 전문가가 있다.

‘운동은 의료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김진구 교수다.

만성질환자에게 제대로 된 운동법을 알려주면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복합만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하지만 만성질환자에게 알려주는 운동법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스포츠의학을 근거로 한 치료용 운동프로그램인 만큼 김 교수는 반드시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형외과 분야 중에서도 스포츠의학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 축구선수 안정환, 설기현, 야구선수 홍성흔 등이 김 교수의 손을 거쳐갔다.

많은 유명 운동선수들이 찾을 정도로 스포츠의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김 교수는 왜 갑자기 ‘만성질환’에 푹 빠지게 됐을까.

“왜 환자가 운동할 수 있는 곳은 없는가”

스포츠의학 전문가인 김 교수는 운동을 통한 질병치료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그가 지난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후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EXERCISE IS MEDICINE(EIM)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EIM은 스포츠의학에 근거를 둔 다양한 운동치료법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으로, 미국, 독일,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EIM 운동을 건강관리서비스 정도로 해석해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EIM은 스포츠의학이라는 정통의학 근거를 바탕으로 다양한 운동치료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환자에 적용할 때도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와는 다르다.

EIM은 현재 전세계 7개국에 거점센터를 두고 있으며 43개국에서 지부를 만들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EIM 한국지부 설립을 위해 뛰고 있다. 운동이 필요한 환자가 운동을 하지 못하는 환경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질환들은 운동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운동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운동이 중요하다. 운동하세요’라고 말하지만 그게 전부다. 운동을 잘하면 병을 예방할 수 있고 비싼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운동은 의료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나라 재활치료는 물리치료나 마사지 등이지 환자가 적극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전세계 선진국에서 운동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운동이 의료라는 개념도 없다”고 지적했다.

든든한 전문가 군단, 6개월이면 소집

EIM 코리아 설립을 위해 뛰고 있는 김 교수는 벌써 든든한 동지를 여럿 만들었다. 본격적인 지부 설립 시동은 자신이 걸었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EIM에 관심을 가진 여러 전문가들이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엇던 것이다.

김 교수는 “EIM 지부 설립의 시작은 EIM 비전을 받아들이고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이다. 커뮤니티에 정부조직 관계자, 국립대병원 관계자 등이 들어가는 이유는 EIM 프로그램을 비영리로 운영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EIM 측에 처음 접촉한 것은 지난해 말이다. 지부 설립까지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미 국내에서 개별적으로 도입을 생각하는 개원의도 있고 해외에서 연수를 받은 대학교수도 있더라. 우리나라에는 아직 EIM에 대한 개념도 없는 상황이지만 본격적으로 깃발을 들고 지부 설립을 추진하면 6개월 안에 100여명의 전문가는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IM 국내 도입 성패, 교육이 결정

EIM의 성공적 국내 도입을 위해 EIM을 이해하는 의사, 운동전문가 등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 교수는 건국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를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할 생각이다.

김 교수는 “EIM 국내 도입 성패의 50%는 교육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체육대학 출신 청년들을 EIM 전문가로 만들어야 하고 의사들이 EIM 프로그램을 치료에 접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국대병원을 이들을 교육하는 중심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양한 사람을 EIM 전문가로 키우기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근거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논문만 수천편이다. 학계의 역할은 이런 논문을 평가해 국민들의 생활 속에 넣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IM 도입의 관건, 발상의 전환

EIM 국내 도입을 위해 김 교수가 강조하는 다른 하나는 ‘발상의 전환’이다. 운동을 통해 환자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EIM으로의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의료인, 체육전문가, 보건소 등 모든 관계자들이 ‘운동이 약’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운동이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는 운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만성질환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마나와 심포지엄을 준비 중이다. 인식을 넓히고 공론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건국대병원과 김진구를 보지 말고 EIM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다는 점만 알아줬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치료라는 영역을 좁은 병원이 아닌 일반 환자들이나 일반인이 있는 공간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 (의사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이 중심이 되지만 병원이 아닌 환자들의 친숙한 공간에서 (의사가 처방한) 운동치료법을 통해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많은 헬스장이 있고 사람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동하고 있지만 정작 만성질환자가 운동을 하려고 하면 헬스장 프로그램을 따라갈 수 없다”며 “최종 목표는 국내 어느 헬스장을 가더라도 인증받은 운동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를 위한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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