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 현장에서 듣다⑩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정형민 교수

인체에 이식돼 여러 신체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는 많은 이들에게 매혹적인 단어로 인식돼왔다.

관련 특허나 논문 발표만으로 높은 관심을 받지만, 동시에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 생명윤리 논란 등 의혹의 시선도 여전하다.

건국대 정형민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줄기세포센터장)는 이같은 줄기세포치료제 분야에서 한국의 1세대 연구자로 꼽힌다.

정 교수 이름으로 등록된 줄기세포만 60여개로 한국이 보유한 줄기세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줄기세포 관련 논문도 200편 가량을 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줄기세포 권위자’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정 교수는 2009년 차병원에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승인 받으며 황우석 박사 논란 이후 중단되다시피 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명맥을 이었다.

2011년에는 차병원그룹 차바이오앤디오스텍(현 차바이오텍) 대표를 역임하며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혈소판으로 분화를 유도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줄기세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정 교수는 “줄기세포치료제 연구는 초기단계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줄기세포치료제 시장의 문제점, 연구자들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짚어봤다.

동물생명공학 박사인 정형민 교수는 차바이오앤디오스텍 대표, 차의과대 세포및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 차병원 의생명과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건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정부 부처(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미래창조과학부 등)에서 전문위원 및 기술수준평가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정형민 교수

-줄기세포치료제의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를 모두 경험했다.

의사가 아닌 과학자로서 시험관 아기 등과 관련한 불임의학을 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줄기세포라는 학문이 나왔다. 98년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때였다. 배아줄기세포라는 학문이 미국에서 매일 TV에 나왔는데, 정자나 배아를 누구보다 많이 만져봤기 때문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99년 1월 짐을 싸서 한국에 와서 곧바로 연구를 시작했다.

차병원 불임센터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됐다. 가지고 있는 기술을 불임환자를 치료하는 산부인과 의사들과 접목하니 아기가 태어났다. 떠올려 보면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혼자서는 실험만 하고 논문만 썼는데 의사들과 함께 하니 아픈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로서 쉽게 하지 못할 경험이었다. 때문에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연구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미래부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원을 지원받았다. 어떻게 쓰이고 있나.

2015년 ‘줄기세포 기반 신약 스크리닝 시스템 개발 사업’에 선정됐다. 1년에 20억원씩 5년 동안 지원받는 과제다. 신약개발 시 실패가 많은 부분 중 하나가 비임상시험에서 독성시험을 할 때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임에도 동물을 가지고 하는 데이터는 인간과의 차이로 한계가 있다. 동물보호로 인한 반대 여론도 거세다. 따라서 동물을 쓰지 않는 독성평가법에 대한 니즈(needs)가 많은 상황이다.

줄기세포를 활용하면 심장이나 간, 혈관, 피부 등을 만들 수 있다. 만들어진 세포는 실제 인체가 가지고 있는 세포와 거의 유사하다. 훨씬 더 정교한 독성검사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나아가선 신약 스크리닝도 가능하다. 약물을 투여했을 대에 효과를 금방 측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외에는 방광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있다. 내년 식약처 1, 2상 임상시험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줄기세포치료제는 이슈에 비해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을 꼽으면.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전 세계적으로 허가받은 품목이 7개 뿐이다. 적어도 수십개 정도가 돼야 시장에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예를들어 무릎연골손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줄기세포 치료제가 나왔는데, 전세계적으로 카티스템 밖에 없다. 적어도 3~4개가 있고 그에 대한 임상결과들이 충분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제품이 너무 적다.

효능도 원인이다.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인 의사들도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 쓰이기 위해선 대체의약품이 없거나 기존 치료법 및 약물에 비해 효능이 동등하거나 우월해야 한다. 동등한 경우에는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시술의 용이성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치료제가 아직까지 못 나왔다. 효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줄기)세포치료제는 시장에선 도입단계인 1세대 제품이다.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아스피린으로 치면 버드나무 잎을 따서 크루드(crude)하게 먹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줄기세포치료제의 효능을 올릴 수 있을 것인지, 이식하는 방법을 간단히 할 수 있을 것인지, 표준화 등으로 대량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인지가 줄기세포치료제 연구의 다음 단계인 셈이다. 세포치료제, 줄기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의 학문은 이제 역사가 길어야 20년이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도 10년 이상이 걸리지 않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1차 수요자인 병원이나 의사들에게도 아직 생소한 분야다.

-높은 생산원가를 고려한 제도개선의 목소리도 많다.

(세포를 주입해야 하는) 줄기세포 특성상 의약품보단 시술에 가까운 면도 있다. 환자맞춤형이 되다보니 고비용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생산원가가 높기 때문에 개발비용을 회수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전세계적으로도 제도개선이 활발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도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를 ATMP(Advanced Therapy Medicinal Products)로 분류하고 해당 의약품의 임상시험 신청 및 품목허가 심사신청시 우선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먼저 심사하고 먼저 승인해주는 것이다. 일본도 재생의료법을 통해 1상이나 2상이 끝나 안전성만 확보되면 품목허가를 내준다. 특히 일본을 잘 모니터링 해야한다. 임상1,2상만 하면 허가를 내주니 업체들이 일본에 가서 임상을 하고 있다.

-관련 업체들이 모임으로써 일본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의 수많은 병원들이 줄기세포에 대한 경험을 쌓게 된다. 해당 치료제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저변이 깔리는 거다. 또한 기업들이 모여듦에 따라 고용창출은 자연히 이뤄진다. 특히 줄기세포는 관련 산업에 파급력이 큰 편이다. 의료장비나 원료, 소모품 소요가 어마어마하다. 일본은 이런 부분들을 국산화하기 시작했다. 재생의료 산업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까지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줄기세포 강국을 한국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잖다. 1830~40년대에 금을 찾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캘리포니아에 몰려갔던 것처럼 세포치료제 기업들이 일본으로 모이고 있고 실제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제도개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거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줄기세포 관련 기술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 예타(예비타당성)작업을 위한 기술성평가를 하고 있는데, 줄기세포 최고 기술보유국을 ‘미국’이라고 하고 미국 기술력을 ‘100’, 한국은 ‘70’, 기술격차 5년 하는 식으로 기재가 돼있다. 허가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한국이 4개 캐나다가 1개 일본이 1개 이탈리아가 1개다. 물론 연구자 수 등으로 인해 사이언스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는 있어도 이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내 식약처에 심사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관/심사관들은 미국 FDA와 비교하면 굉장한 격무에 시달린다.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 세포치료제 관련 학회에 NIH나 FDA 심사관이 오면 업계 사람들이 몰려가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그러면 해당 심사관들은 다 컨설팅을 해준다. 해당 분야에서 가장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한국 식약처는 심사관 한 사람이 처리해야할 업무량이 너무 많다. 전문성을 제고하면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인력도 2배 정도 늘렸으면 좋겠다. 식약처는 국민 건강권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식약처가 뚫려선 안 된다. 국방부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미국 FDA에 최종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치료제가 없다.

미국도 올해 초 의회를 통과한 ‘21세기 치료법’으로 품목허가 기준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 FDA는 세포치료제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다. FDA의 기본적인 룰은, 약이라고 하면 약을 투여했을 때 인체에서 어떻게 흡수가 되고 대사가 되고 배출이 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줄기세포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는 아직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분포되는지 정도다. 이렇다보니 허가를 내줄 방법이 없었다. FDA에 최종허가 품목은 없지만 후기 임상에 들어가 있는 품목은 꽤 있다. 점차 허가가 나기 시작할 것 같다.

-줄기세포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간 각국에서 실시한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부작용에 대한 리포트가 거의 없다. 때문에 일반의약품에 대비해서 낮으면 낮았지 크진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의약품으로서 시험단계에 있다는 것을 고려해 불법적인 시술 등은 더욱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제도권 하에서 규칙에 맞춰 진행되는 임상시험을 보면 큰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정을 따르지 않고 작위적인 투여가 이뤄진다면 사고가 날 수 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미용성형 분야에서도 (배양되지 않은) 줄기세포에 대한 시술이 많다. 이런 부분도 제도권 안으로 양성화시켜야 한다. 한국에선 줄기세포를 분리해 증식을 시키면 의약품으로 분류가 되는데 분리해서 바로 쓰면 의료시술에 해당한다. 현재 미용성형 분야에서 행해지는 것은 전부 시술이다. 관리에 있어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것이다. 안전하고 어렵지 않은 시술이다 보니 많이 쓰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숨길 게 없다. 투명화시켜야 한다. 관련 학회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1세대 연구자로서 다음 연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구자들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시니어가 돼버렸다(웃음). 후배, 제자인 연구자들이 많이 생겼는데 다들 정말 열심히 일한다. 아쉬운 것은 변심을 너무 자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연구 시스템 자체가 정부 의존적이다. 정부 연구비가 어디에 쏠리느냐에 따라서 연구자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거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황우석 박사로 인해 대세가 됐다가, 논문조작 사건 이후 몰살을 당했다. 이후 성체줄기세포가 주목받으면서 연구자들이 이 연구로 쏠렸다가 최근에는 IPS(유도만능줄기세포)가 나오면서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IPS 연구를 하고 있다. 또 바이오프린팅, 오가노이드 등 융복합 기술로 몰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학자로서 정체성이 없어진다. 성체줄기세포면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길을 쭉 따라가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부도 R&D 정책을 수립할 때 뜨는 분야가 있다고 연구비를 몰아버리면 안 된다. 기존에 다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기존 연구를 포기하고 여기에 따라가 버리면 잘해야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다. 프론티어(frontier)가 될 수 없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