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권 제한·환자 쏠림 우려 적지 않아...성공여부 '진료의뢰-회송'·'일차의료 강화'에 달렸다 지적도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 중 하나로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진료를 중심으로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정수가를 지급하는 ‘심층진찰료’ 시범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적정수가 지급에는 환영하면서도 환자들의 치료권 제한, 상급종병 쏠림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심층진찰료 시범사업에 진료의뢰-회송 시스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등이 연계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심층진찰료로 기대되는 2차 효과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을 위해 진료비를 차등 적용하는 심층진찰료 도입방안 마련을 위한 1단계 연구용역을 실시키로 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 입원 및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심층진료비를 주고, 의원급 의료기관은 경증질환 및 외래를 중심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일차의료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경증질환자도 상급종병 등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3차 의료기관이라는 본연의 취지와 달리 3분 진료가 만연해 있다. 이에 상급종병이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중증질환자들을 진료할 때 충분한 진료시간을 할애할 경우 그에 따른 수가를 보전해주겠다는 게 심평원의 생각이다.

이미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일부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15분 진료라는 이름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민간 차원이 아닌 건강보험 수가를 지급해 주는 심층진찰료 시범사업을 실시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복안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심층진찰료는 질병 중증도와 진료시간을 반영, 수가 모형이 개발된다. 특정 환자군과 진료프로토콜 등 기준에 따라 진료를 하면 그에 상응하는 수가를 준다.

기존에 평균 3분씩 총 5명을 진료해야 받을 수 있던 진료비를 15분 동안 심층 진료가 필요한 1명의 환자만 진료해도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계산했을 때 병원에서는 기존 진찰방식과 비교했을 때 경영상 수입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15분에 담길 내용이다.

큰 그림은, 1차나 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 상급종병으로 온 환자 중 선별해서 심층진료를 실시하되, 진료 시 환자의 병력, 투약이력, 증상 등을 확인해 중점 치료하고, 재진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물론, 치료과정에서 증상이 호전될 경우 2차 의료기관이나 1차 의료기관으로 회송하는 시스템을 연계할 방침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기존 상급종병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검사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심층진료는 15분 간 충분히 진료를 하면서 검사의 양도 줄일 수 있는 2차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현재 진료의뢰-회송 사업처럼 상급종병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만 의뢰하고 상급종병도 경과에 따라 1-2차 의료기관으로 회송할 수 있는 진료협력 체계가 잘 연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모든 환자에게 확대돼야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심층진찰료’라는 명칭만으로도 대상 질환 선정부터 환자의 선택여부, 질환에 따른 수가 차등의 타당성, 수가인상 시 재원부담, 환자 대기시간 지연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의사들 중에는 15분~30분씩 진료를 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에 따라 필요한 경우 충분히 진료하고 있다”면서 “15분 진료를 도입하게 되면 오히려 기존 환자들의 대기시간만 길어져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수입이 감소할 수도 있어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모든 의료기관과 모든 환자에게 이같은 심층진료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우선순위를 정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 교수는 “1차 의료기관에서는 만성질환의 초기평가를 위한 진료가 필요하고, 상급종병은 중증질환자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찰해야 한다”면서 “모든 환자에게 심층진료는 필요하다. 누구에게만 15분 진료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15분간 어떤 진료를 해야 할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확한 중증질환에 대해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결국에는 모든 환자에게, 모든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특히 “그동안 상급종병은 경증질환자 진료를 줄이라고 하면 진료수입이 줄어든다고 반대했었다. 이는 경증질환자를 줄이고 중증질환자를 충분히 진료하라고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면서 “전체를 보고 제도를 그려야 한다. 적정 기준과 수가는 그 이후에 잘 연구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도 “완벽한 제도가 처음부터 있을 수는 없다”면서 “상급에서 중증질환자 치료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면 한계가 있다. 심층진료를 통해 환자의 불안을 해소해주고 1-2차 의료기관으로 회송하면 환자의 치료 순응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 많아...통합 제도 운영 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상급종병에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심층진찰료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돼 제도화 되려면 일차 의료의 활성화 등 제도보완이 시급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고혈압 환자들의 고혈압 관리율은 45%수준이며, 당뇨환자의 혈당 관리율은 13%에 불과하다. 만성질환자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김윤 교수는 “일차 의료의 질을 올리지 않는다면 동네의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게 할 방법이 없다”면서 “일차 의료가 코디네이션과 포괄진료라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행위별수가와는 별도로 환자관리료, 초기평가 수가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일차 의료에 초기평가와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따른 수가(2회 진찰 기준 6만5000원)를 지급하고, 질병관리교육, 의뢰와 회송, 환자관리료(비대면서비스), 진료정보교류 가산 등 급여를 확대하면 810만명의 환자의 만성질환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차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일차의료연수교육, 질 평가, 평가결과 환류와 공개, 인센티브 제공 등이 있어야 한다”면서 “일차의료가 게이트키핑이 아닌 네비게이터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행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과 진료의뢰 회송사업,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등을 연계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심평원은 이번 심층진찰료 시범사업과 함께 의뢰-회송시범사업의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또한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상대가치점수 개편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전체 로드맵을 가지고 진행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시행가능한 부분부터 적용해 나가려는 것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면서 “현재 하고 있는 시범사업과 관련 제도를 고려하고 심층진찰료도 병원들의 손실을 주지않는 선에서 대상을 한정하는 등 시범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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