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분야 민간 NGO 대표들에게 듣는 해외봉사활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여름방학, 여름휴가 시즌이 되면서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봉사활동이라는 게 오랜 시간 준비기간을 거쳐 진행되는 것이지만 여러번 점검을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 일쑤다. 따라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현지인들에게는 해가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더욱이 최근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해외의료봉사활동이 자칫 현지 의료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해외봉사활동을 나갈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20년 가까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해외봉사활동을 주도해온 (사)메디피스 신상문(한의사) 사무총장, (사)글로벌케어 백은성(의사) 상임대표, (사)비전케어 김동해(의사) 이사장, (사)아프리카미재재단 김억(목사) 사무총장, 비전케어 김재윤(의사) 이사를 모시고 해외의료봉사활동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 대학들이 여름 방학에 들어갔다. 해외로 봉사활동을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모든 봉사활동이 다 그렇겠지만 현지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갈 경우 오히려 그들에게 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동해 : 학교도 학교지만 종교단체나 NGO 등 사실 해외의료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고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해외의료봉사를 갔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프리카미래재단 김억 사무총장

김억 : S그룹 봉사단이 가져온 약을 의사가 아닌 현지 선교사에게 주고 간 적이 있다. 전문의약품도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선교사는 누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그때그때 증상에 따른 약을 골라주더라. 물론 의사면허가 없는 선교사였다. 현지인들이 아프다고 하니 전문약이니 일반약이니 할 것 없이 약을 준 것이다. 봉사단도 좋은 뜻에서 한국에서 의약품을 가져와 현지인들이 아플 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주고 간 것이겠지만 현지인들에겐 의약품을 오남용하는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선의라 하더라도 현지인들에게는 해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백은성 : 이제 마음만 가지고 무턱대고 가는 의사들은 없다고 본다. 예전에는 봉사활동을 가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봉사활동을 가는데 있어서도 면허증을 보내야 하고 보건부에 진료를 하겠다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의료봉사활동을 가더라도 진료만 해주고 오는 게 아니라 TOT(training of trainers)라고 해서 현지의 의료인에게 교육을 해주고 오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현지인들과 컨퍼런스를 한다든지 비전케어가 하는 것처럼 현지 안과 의사들을 교육해주고 환자가 오면 같이 봐주고 한다는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진료만 해주고 왔던 사람들도 이제는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다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

글로벌케어는 지난 97년 국제의료구호기관으로 시작한 국내 최조 국제구호개발 NGO다. 국내뿐만 아니라 8개 나라에서 보건사업, 결핵사업, 모자보건사업, 콜레라 예방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지구촌 곳곳의 전쟁, 천재지변, 자연재해 시 전문적인 긴급의료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 : 과거에는 진료 위주로만 했다면 이제 현지인을 교육시켜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인가.

비전케어 김동해 이사장

김동해 : 단지 수술하고 치료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현지 상황에 맞는 교육을 해주고 수련을 해주면서 현지의 메디컬 시스템을 개선해주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게 바로 보건사업이다.

사회 : 특별히 해외의료봉사활동의 방향이 바뀐 계기가 있나.

김동해 : 현지 의료수준이 올라간 것도 한 몫 했다. 의료시스템이 낙후된 곳이더라도 이제 의사나 의과대학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아프리카에도 의과대학이 생겼고, 레지던트도 있을 정도다.

비전케어는 WHO 산하 IAPB(세계실명예방기구)와 함께 국적, 인종,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로 전세계 시각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이 다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국제실명구호기구이다. 2001년 백내장 수술 등 안과분야 단기사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현지 보건위생환경 개선과 의료기관 자립을 위해 저개발국 안과역량강화사업 및 선진의료기술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상문 : 국제보건활동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점들이 몇 개 있다. 첫째는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서 가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누구를 보고 올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지역과 봉사활동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15명 정도 4박 5일 일정이라고 했을 때 5,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5,000만원 이상을 들여 봉사활동을 갔는데 소화제나 나눠주고 감기약을 주고 오는 것으로 만족스럽지 않을 수밖에. 마지막은 우리 활동들이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곳에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 현지의 보건의료시스템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봤더니 커뮤니티가 중심이 되어 현지의 보건의료시스템에 맞춰 지속가능한 활동을 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

메디피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종교적 보건의료 전문 민간단체다. 2009년 Peace Asia(동북아평화연대) 의료위원회로부터 분리 독립돼 설립됐다. 빈곤과 재난으로 인해 인권과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보건 의료 활동을 펼치는 것을 비전으로 한다. 긴급구호(난민과 이재민을 대상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활동), 보건의료(보건의료 사각지대에 대한 의료서비스 지원 및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의료 인프라 사업 등), 개발교육(보건의료캠프, 좋은강의, 캠페인 등), 연구조사 활동(세미나, 출판 등) 등을 펼치고 있다.

사회 : 이제부터 봉사활동을 해볼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말이다.

김동해 : 의료봉사활동을 준비하거나 하려는 사람들은 너무 겁먹지 말고 기존에 하던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된다. 굳이 혼자서 할 필요가 있나. 기존에 그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던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모두 내일처럼 도와줄 텐데.

특히 기존에 해왔던 분들은 서로간 활발히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각 나라들의 처한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에게는 어떤 게 필요한지 공유하고 있는 만큼 여기 이 자리에 오신 메디피스나 글로벌케어, 아프리카미래재단, 비전케어의 문을 두드려줬으면 좋겠다.

사회 : 단기로 해외의료봉사활동을 가는 경우 아무래도 교육 등에 신경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단기 해외봉사활동은 문제가 있다라고 하기엔 봉사활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 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김동해 : 개인적으로 단기든, 장기든 의사들이 많이 나가야 한다. 사실 15명이 나가 5,000만원을 쓴다고 할 때 이 재원이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펀딩을 받거나 스스로 돈을 내고 봉사활동을 가는 것 아닌가. 이디오피아만 해도 인구가 1억명이다. 단기라고 해도 한팀이 가서 일주일에 100명을 수술해주고 온다고 해보자. 표시가 나겠나. 인구는 우리나라의 2배이지만 안과의사는 우리나라가 3,500명인데 비해 이디오피아의 경우 120명에 불과하다. 단기 해외의료봉사라 하더라도 영향력이라는 게 무의미할 수 있다. 오히려 현장에서 현지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봉사하러 갔던 우리나라 의료진이 느끼고 오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단기라고 하더라도 나가봐야 지속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 나가기 어렵다면 나갔던 경험을 되살려 후원이라도 해주게 된다.

메디피스 신상문 사무총장

신상문 :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일회성과 단기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일회성 단기 의료봉사의 경우 몇일 동안 슈바이처가 되어 볼 수 있는 굉장히 낭만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참가자에게 학습효과가 있다는 것 이외에 장점이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일회성 봉사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단기 의료봉사활동의 경우 일회성 의료봉사와 방법론 면에서 전혀 다르다. 특히 일각에서는 해외의료봉사활동이라면 현지에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해서 그에 맞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데 단기 봉사활동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단기라는 용어로 이 복잡한 활동들을 매도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지 의과대학 의료기관과 지속적으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그 의과대학이나 의료기관들의 역량들을 강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트레이닝 하고, 그런 가운데서 환자를 보는 작업들이 단기라는 굴레를 벗어 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시스템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핵심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하느냐 안하느냐 문제이지 단기라서 현지 시스템을 망가뜨리게 될 것이라 단정 짓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었나 하는 부분에서 단기로 가면 조금 위험 할 수도 있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단기는 시스템을 망가뜨린다고 접근 해버리면 억울한 부분이 너무 많을 수 있다.

아프리카미래재단은 질병과 빈곤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 주민들이 선진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하고, 아프리카 지역이 안정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설립됐다. AIDS와 질병예방 및 퇴치사업, 남부 아프리카 의대 및 IT 공대 설립을 통한 전문인 배출, 아프리카 현지인 선진교육을 통한 빈곤퇴치, 병원 설립을 통한 남부아프리카 지역 양질 의료서비스 제공 등을 주요 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사회 : 의과대학이든 병원이든 민간차원에서 해외로 의료봉사활동을 가는 곳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보면 일부 지역에 중복되거나 하지는 않나. 이런 것을 조율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할 것 같은데.

김동해 : 봉사활동을 한 지 오래됐고 조직들도 많아지다보니 중복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우리나라만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등 전세계 국가에서 가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지난 2012년 한국의료민간단체협의회(의민협)가 설립됐다. 외국은 물론 국내 소외 계층에 의료봉사를 해왔던 단체들이 손을 잡고 NGO간 협력과 정부와의 민관협력을 통해 중복후원 등을 피하자는 취지였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주도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의민협에 대한 지원이 끊어지면서 현재는 유야무야 됐다.

사회 : 마지막으로 해외의료봉사활동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만은 주의하라’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글로벌케어 백은성 상임대표

백은성 : 어디를 간다고 하더라도 다음의 3개는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첫째는 항상 수혜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해주고 온 것이지만 현지인들에게 우리가 다녀간 후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둘째는 시대가 바뀐 만큼 조금 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진료만 해주고 와도 그게 어디냐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와 함께 현지의료인들을 교육할 수 있는, 현지에 있는 병원들과 같이 한다든지 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의료봉사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마지막은 철저한 사전조사 후 떠나야 한다. 현지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야한다는 주장들도 있지만 그러다보면 아마 못가지 싶다. 그보다는 이미 현지시스템을 이해하고 잘하고 있는 NGO들이 많은 만큼 그들과 함께 하는 게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김동해 : 좋은 말씀이다.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게 익숙지 않을 수 있지만 이미 잘 하시는 분들이 많고, 잘하고 있는데 혼자하려 할 필요가 있을까. 서로 협력하며 살을 붙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의료는 혼자서는 절대 안되는 분야다. 내과, 외과, 영상의학과가 다 있어야 한다. 다같이 함께할 수 있다면 효과는 몇 배, 아니 그 이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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