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 10개월, 성공을 위한 해법은⓷
부교수 출신 2명 영입…정은주 전문의 “호스피탈리스트, 새 의료패러다임 될 거라 믿어"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이 전문의 지원율 저조로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문적인 입원환자 진료를 통해 진료의 질을 높여보려는 병원들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호스피탈리스트제도 성공을 함께 이끌어 갈 동지(?)를 찾으려 적합한 대상자들을 찾아 일일이 호스피탈리스트 운영방침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 발로 뛰는 곳이 있다.

바로 지난 13일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병동을 개소한 연세암병원이다.

이러한 노력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연세암병원은 건국대병원과 동국대병원에서 부교수까지 보장받은 전문의 2명을 호스피탈리스트로 채용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병동 스테이션(세브란스병원 제공)

연세암병원이 외과계 호스피탈리스트 병동을 열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원율이 턱없이 저조한 상황에서 팀 단위로 운영되는 호스피탈리스트 시스템을 준비하기가 여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1차 시범사업 기관에 선정되지 못한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병원의 노력 끝에 지난 5월 입원환자의 진료를 전담하는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3명(정은주·김강미·정윤빈 전문의)을 채용했고, 지난 13일 본격적인 병동운영에 들어갔다.

아직 전체 병상(69병상)을 온전히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스피탈리스트를 추가 모집해 조만간 정상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이강영 적정진료관리실장은 지난 26일 본지와 만나 호스피탈리스트 채용 및 운영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강영 실장은 “환자가 입원했다는 것은 병원에서 실시간 진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지만 실제 환자들에게 실시간 진료가 제공되고 있는지 돌아봤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면서 “호스피탈리스트로 인해 전문적으로 입원환자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진료 질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병원에서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려웠던 호스피탈리스트 채용과정에 대해 이 실장은 “우리 병원은 애초에 5명 이상을 찾았지만 처음에는 지원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나간 전문의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 적합한 대상자들을 찾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호스피탈리스트 운영방침을 설명해주고 지원의사를 타진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호스피탈리트는 업무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스스로 만족해야 서비스 질도 올라가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져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빠른 제도 안착을 위해 인력 채용에 특별히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원자를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이 아니다. 이강영 실장은 함께 나아갈 우리 식구라는 생각을 갖고 세브란스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 실장은 “우리 병원은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우리나라 의료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며 앞으로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속에서 굳건히 자리할 직군이라는 입장을 전문의들에게 적극 어필했다”며 “함께 제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개척자들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채용 초기부터 제도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의들이 지원 기피 이유로 꼽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실장은 “호스피탈리스트가 정말 필요하다면 이 직군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을 때 연속성이 생긴다”면서 “미국 호스피탈리스트들은 나름 전문가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곧 전문가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며 이를 통해 미래 불확실성도 상당수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연세암병원이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병동을 개소하고 정상적인 운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누구 한사람에 의해 주도된 아니라 구성원 모든 사람이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라며 “구성원 모두가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다. 당연히 잘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그들은 왜 부교수를 박차고 나와 호스피탈리스트가 됐나
한편, 건국대병원 부교수 자리를 던지고 연세암병원 외과 호스피탈리스트로 근무하기 시작한 정은주 전문의는 “개인적으로 호스피탈리스트 제도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한국의료가 눈부신 발전을 거뒀지만 취약점도 많은데 호스피탈리스트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전문의는 “물론 아직 호스피탈리스트가 시범사업 중이고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점도 많다”면서 “하지만 하나씩 미비점을 보완해 간다면 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 그동안 외과의사에 대한 역할 설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호스피탈리스트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전문의는 “외과의사의 역할은 수술할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고, 수술 후 관리를 통해 건강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간 우리나라 외과 의사들은 너무 수술에만 집중한 것이 사실이다. 하루에 수술한 환자 얼굴 한 번 못 보는 것이 예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 안전을 위해 병원은 팀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수술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수술을, 케어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케어를 맡겨 질 높은 입원환자 진료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와 환자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도 했다.

정 전문의는 “호스피탈리스트는 정착될 수 있고. 가야하고 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 제도가 전공의특별법 때문에 시행된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와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측면에서 수요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와 환자 안전을 함께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의사들에게 “호스피탈리스트는 대한민국 의료를 바꾸는 첫 발자국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직군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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