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 -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 아침을 맞았다. 전날보다 이른 7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5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에 눈을 뜬 것은 방안이 서늘하다 못해 추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날의 일정을 스마트폰에 정리하면서 들으니 창밖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꽤나 거칠다. 겨울밤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 같은 느낌이다. 아침을 먹으러 가다보니 바람소리가 아니라 빗소리였다. 일정이 빠듯하다보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모양이다.

5시가 되어 샤워를 하려는데 온수가 겨우 미지근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목욕하는 동안 호흡이 가빠지고 뒷머리가 당기는 느낌이 든다. 딱 고산증의 증세이다. 호흡을 깊고 천천히 하면서 증상을 달래본다. 목욕을 마치고 나자, 누군가 노크를 한다. 모닝콜이란다. 그때서야 방안을 살펴보니 텔레비전은 물론 전화기도 없다. 모닝콜도 그렇고 전날 밤에 뜨거운 물주머니를 넣어준 일도 그렇고 응고롱고로 소파 롯지는 여전히 아날로그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일이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곳이 인류의 과거일 뿐 아니라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스카이뷰(좌-bing 지도를 캡쳐함), 룰말라신산(정해붕님 제공)

7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어제 온 길을 되짚어 간다. 잠시 능선도로를 따라가다가 산 아래 평원으로 난 비탈길로 내려선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포함한 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역은 1959년에 지정되었다. 1976년에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직경 20km에 전체 넓이가 260㎢에 달하는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분화 당시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산허리가 왕관모양으로 남아 둘러싸고 있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286m에 이른다. 분화구의 깊이가 무려 610m에 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홍수가 나거나 무너진 적이 없다. 응고롱고로 분화구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모양이 잘 유지되어 있는 사화산 칼데라이다. 분화구는 200~300만 년 전에 화산이 분화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분화 전 화산의 높이는 4,500에서 5,800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응고롱고로 분화구 바닥은 해발1,800m 높이이다.(1)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남쪽에는 킬리만자로산, 메루산에 이어 탄자니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룰말라신(Loolmalasin)산이 있다. 해발 3,682m높이의 화산이다. 경비행기를 타고 아루샤에서 세렝게티로 오면서 보았던 산이다.

분화구의 동쪽고지는 무역풍의 영향을 받아 연간 800~1,200mm의 강우량을 보여 산악숲을 이루고 있으나 경사가 완만한 서쪽고지는 400-600mm의 강우량으로 초원과 잡목 숲을 이룬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중심에 마사이어로 소금을 의미하는 마카트(Makat) 혹은 마가디(Magadi)라고 부르는 소금호수가 있다.

소금호수에 유입되는 두 개의 물길이 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남쪽에 있는 올모티(Olmoti) 분화구에서 시작하는 뭉게(Munge)강이 있고, 북서쪽에 있는 레라이(Lerai) 숲에서 오는 물줄기가 있다. 산록에서 평원으로 내려오는 길을 따라서 흘러가던 작은 개울이 바로 뭉게강이라는 것 같다. 강이라기보다는 개울에 가깝다고 보았지만, 평원에 들어설 무렵에는 폭이 꽤나 널찍하다. 우기에는 수량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응고롱고로(Ngorongoro)라는 이름은 이곳에 사는 마사이족이 키우는 소의 방울이 ‘응고로 응고로(ngoro ngoro)하고 우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다. 수천 년 전 응고롱로고 분화구는 사냥꾼들이 모이던 장소였다. 2,000년 전에 음부루(Mbulu)족이 이주해 들어왔고, 17세기 무렵 다투가(Datooga)족이 합류했다. 두 부족들은 18세기에 이주해온 마사이부족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북서쪽 레라이 숲에 있는 깊은 무화과나무 숲은 다투가족이나 마사이족 모두에게 신성한 장소였다.

본격적으로 응고롱고로 분화구 탐사에 나섰다. 분화구의 산록을 따라가는 도로에서 벗어나 비탈길에 들어섰는데, 비탈길을 모두 내려와 평원에 이르니 길이 엉망이다. 우기를 지나 땅이 많이 물러진 탓인지 차량의 바퀴자국이 깊게 파였다. 프랜시스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는 모양이지만, 사파리차량이 전후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그런 와중에서도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던 아내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다행히도 프랜시스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더니 차에서 내려 떨어뜨린 스마트폰을 주워왔다. 이곳 역시 야생동물의 천국이니 사파리 차량에서 내리는 일은 상당한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

아스필리아꽃밭에 숨은 버펄로(좌), 버펄로의 친구 캐틀 이글릿(우)

사방은 온통 키 작은 메리골드 혹은 금작화 닮은 노란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프랜시스가 아스필리아(Aspilia)라고 알려준다. 외래종인데 동물들이 먹지 않기 때문에 골치라고 한다. 아스필리아(Aspilia)는 데이지과에 속하는 아프리카 원산의 꽃이다. 침팬지 종류는 아스필리아를 구충의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피임의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2)

아스필리아 꽃밭 사이로 버펄로가 육중한 몸을 숨기고(?) 있다. 아스필리아의 키가 1m가 넘는다고 하는데 전혀 감춰지지 않는다. 버펄로 주변에서 온몸이 하얀 캐틀 이글릿(cattle eglet)도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왜가리 종류의 새로서 열대, 아열대지역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이다. 캐틀 이글릿은 축우 혹은 버펄로 등의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나 파리 같은 곤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 하지만 진드기가 매개하는 전염병을 옮기기도 한다.(3)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위좌), 위버의 빈둥지(위우), 버스터드(아래좌), 위버(아래우)

응고롱고로 평원을 밤새 덮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지만 산자락에는 여전히 두터워 보이는 구름이 걸려있다. 초원의 곳곳에는 버펄로를 비롯하여 얼룩말, 멧돼지 들이 흩어져 풀을 뜯고 있다. 작달막한 키의 가시아카시아 나무에는 엉기성기 엮은 듯한 둥지가 걸려있다. 세렝게티에서도 자주 보던 것이다. 프랜시스에게 물어보니 위버(weaver)의 둥지란다. 샛노란털이 아름다운 위버는 우리말로 ‘베짜는 새’라고 하는 것을 보면 둥지를 짓는데 선수라고 하겠다.(4) 위버의 둥지를 지나자 덩치가 조금 큰 새 몇 마리가 등장한다. 버스터드(busterd), 우리말로는 느시과에 속하는 새인데 두루미과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가 만난 코리 부스타드(kori bustard)는 아프리카 원산으로 날아다니는 새 가운데 가장 크다. 수컷은 120-150cm에 이르고 날개폭이 230-275이며 체중은 7-18kg 정도 된다.(5)

사파리차 바로 옆을 지나는 사자(좌), 사파리차량 사이를 유유히 뚫고 지나간다(위우), 놀라서 달아난 멧돼지들은 사자의 거취만 살피고 (아래우)

사파리 차 앞에 우람한 수사자 한 마리가 등장했다. 사파리 차량이 다니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하여 사파리차가 그 옆을 지나가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걸음걸이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지나가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내가 너희들 정체를 다 안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자에게는 무생물로 인식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고 싶어도 차안으로 뛰어들까봐 겁이 날 지경이다. “용감한 남자는 사자 때문에 반드시 세 번 겁을 먹는다. 처음 사자의 발자국을 볼 때 처음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때 처음 사자와 마주할 때(6)”라고 헤밍웨이는 말했다지만 발자국이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 갑자기 백수의 제왕이라고 하는 수사자와 조우하게 되니 오금이 저리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차안에 숨어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놀던 멧돼지 일가는 순간 긴장하면서 지켜보다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다. 하지만 사자의 모습으로 봐서는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아마도 먹을 것을 사냥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밤사이에 자신의 영역에 문제는 없었는지 순시 중인 모양이다. 수사자가 유유히 초원을 순시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발길을 재촉했다.


세렝게티에서 응고롱고로까지 사파리게임을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야생동물들을 만났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사파리차가 접근하면 후다닥 도망치거나 적어도 슬금슬금 몸을 사리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세렝게티에서 만난 표범과 응고롱고로에서 만난 수사자는 달랐다. 심지어는 몰려든 사파리차량 사이를 유유히 뚫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을 깡그리 무시하고서 말이다.

참고자료:
(1) Wikipedia. Ngorongoro Conservation Area.
(2) Herb2000.com. Aspilia.
(3) Wikipedia. Cattle eglet.
(4) Encyclopædia Britannica. Weaver.
(5) Wikipedia. Kori bustard.
(6) 어니스트 헤잉웨이 지음, 킬리만자로의 눈 75쪽,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생복한 삶’, 문학동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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