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일까. 어수선한 틈을 노린 고도의 전략일까.

보건의료정책을 주도하는 보건복지부의 장관 임명 지연으로 사실상 업무 중단도 계속되는 요즘 유독 튀는 곳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이다.

잇따라 보도자료를 내고,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정부에게 공단 업무를 할 천여명 분의 일자리를 열어달라고 주문하고, 건강보험 40주년을 이유로 공단 역할 재정립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더 달라고도 한다.

하지만 공단 노조가 주장하는 내용은 새 정부에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치부하기에는 불편한 대목이 적지 않다. 그들 주장의 핵심에는 심평원과 복지부를 향한 맹 비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단 노조는 보도자료에서 심평원이 공단의 영역을 침범해 업무가 중복돼 돈을 낭비하고, 국민에게 혼란을 줬으며, 두 기관의 존립 근거도 상실시켰다고 했다.

특히 복지부가 심평원만 지원하는 전력을 세워 몸집을 불려줬고, 심평원이 하고 있는 현지조사, 급여기준 제정, 약가관리 등은 공단 일인데 뺏아간 거라 말한다.

비판은 공단과 심평원 노조 간의 갈등으로 커졌다. 심평원 노조가 나서 전면대응을 한 것인데, 사실과 다른 내용을 사실인 냥 호도하는 공단 노조에 더는 못참겠더라는 게 심평원 노조의 말이다.

그래도 공단의 문제 지적은 계속돼 이번에는 심평원의 자동차보험심사 위탁 수행과 심사조정률, 건보재정 낭비 등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이는 한두 해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도 그랬고 그전에도 셀 수없이 많은 성명과 행동으로 여과없이 공단 노조는 심평원을 향해 악감정을 드러내왔다.

그럼에도 이번의 공단 노조의 행태를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주장의 내용이 사실이냐는 것이다.

공단 노조는 심평원이 자보심사 시 건강보험 정보를 불법 활용해 국민과 공급자에게 모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기왕증 심사를 위해 건보 정보를 활용하려 했던 초기 계획은 의료계는 물론 국회에서도 지적받아 중단되기도 했다. 엄연히 현재는 건보자료를 자보심사에 쓰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쯤되면 공단 노조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정말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거라면, 건강보험료의 징수와 급여비 지급 등 건강보험제도 운영의 한축을 담당하는 공단은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근로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한 정당한 노동권 행사라고 보기 힘든, 고의적으로 세를 키우기 위한 이익집단으로서의 행보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노조는 공단과 심평원이 연대해 40주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시점에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공단 보험자의 역할 재정립을 위한 취지였다고는 하나 사실상 공단과 심평원의 영역 논란, 공단의 권한 부여하기로 정리되는 행사였다.

제아무리 사측의 행사보다 먼저 기획됐다고 하더라도 공단 정원의 84%에 달하는 직원이 포함된 노조가 사측의 연대 행사와 반대되는 자리를 고수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토론회는 공단 노조가 주관하고 심평원 직원들이 배석하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행사 기획 단계부터 관련 기관과 정부의 우려를 낳았던 만큼 행사는 다소 미지근하게, 별 소득없이 끝이 났지만, 반성은 해야 한다.

건강보험 40주년을 내건 각종 토론과 이벤트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보험자인 복지부를 대신해 건강보험제도의 실무를 담당하는 공단과 심평원이 한 뜻을 가져야 한다.

그 ‘뜻’이란, 서로를 헐뜯는 것이 아닌,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언제쯤 이 두 노조가 서로 으르렁대지 않을까. 그리고 언제쯤 사측이 그 뒤에 숨어 방관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발전을 논하겠다며 세계 전문가들을 불러 모은 그 시각, 이러한 행태가 있었더란걸 행여나 그 누군가 알아채기라도 했을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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