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정부사업 방향 등 불만 빗발…정책위 '다부처 사업 개선 의지' 등 밝혀

바이오제약산업 육성에 관한 세부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범부처 보건의료 R&D 사업에 대한 손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조원준 전문위원(보건의료 정책담당)은 지난 13일 서울 켄싱턴호텔에서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주최로 열린 '새정부 출범,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나아갈 방향 토론회'에서 "범부처 사업은 개선된 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 정책 담당부서가 혼재돼 있어 발생하는 혼란이 있다. 질서를 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특히 대표적인 범부처 사업인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 포스트게놈다부처유전체사업은 (이전 정부에선)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추진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각 행위 주체들의 주체성이나 책임성이 결여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조정과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개선된 체제가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바이오 및 의약품 육성전략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세부적인 이행계획은 국정기획자문위의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추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국정기획자문위에서 세부적 작업을 하고 있다. 바이오 관련 주요 공약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제약·바이오·의료기기 분과 설립', '국내 신약 글로벌 진출 활성화를 위한 보험약가결정구조 개선', '산학연 연계 신약개발 협력시스템 구축'"이라고 전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정부의 바이오제약 R&D 시스템에 대한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R&D 분야의 선정 및 사업의 방향성이 국가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신약 안 나오는 정부 R&D 사업, 허점 있다"

이날 청중으로 참석한 녹십자랩셀 황유경 세포치료연구소장은 정부의 R&D 사업 추진은 국내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발전을 현재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이 됐지만, 정부의 지원을 업은 연구들이 정작 실용화 단계에서 성과가 부족하고 이는 R&D 정책의 허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황 소장은 "(정부가 투자한) 연구들이 상용화가 될 때가 됐다고 본다. 그럼에도 상용화가 되지 않으면 기업도 답답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황소장은 정부 R&D 사업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으로 대학 교수들에 대한 창업지원 정책을 꼽았다.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생태계 구축을 위해선 학계와 산업계의 연결고리 강화에 더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소장은 "산업화를 위해 대학에 창업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바이오의약품 개발에서 대학을 기반으로 창업한 회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창업해서 나온 교수들은 그간 하지 않았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행착오을 겪고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학계는 상용화가 될 수 있는 연구에 더 집중하고 이후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를 산업계에서 잘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학계의 연구가 기업의 니즈(needs)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황 소장은 "학계에선 기업들이 다 진행된 연구만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원하는 방향이 맞지 않는 것"이라며 "국가 R&D의 평가기준을 봐도 현실성 없는 것들이 실용화 과제로 요구된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한양대 생명나노학과 이은규 교수도 "학계의 기초연구는 유니크(unique)한 것을 찾아 논문을 쓰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다. 젊은 교수들 사이에선 벤처 등을 창업해 적극적으로 사업화하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교수들이 논문의 아성에 휩싸여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이어 "외국의 제약사들처럼 하나의 오픈이노베이션 개념으로 대학교수들을 초청해 컨소시엄이나 컨퍼런스를 만들어 기업의 니즈에 맞는 기초연구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학계 연구와 기업 니즈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국내 제약사는 대학 부근에 연구소를 만들고 직접 R&D 펀드를 공모해 필요한 기초연구를 공급받는 글로벌제약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산업부 산하 산업연구원 최윤희 선임연구원은 "자금이 많은 글로벌제약사에는 대학에서 알아서 자원을 가지고 오지만 국내 제약산업에선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이에 대한 정부와 기업 역할을 공론화해서 어디까지 정부가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즉 R&D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연구자 임상 위주로 R&D를 지원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연구들이 기업의 니즈와 얼마나 연결이 될 것인지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CJ헬스케어 하경식 수석연구원은 학계 연구와 산업계 니즈를 연계할 해결책으로 대학, 정부, 투자기관이 출자한 형태의 '바이오신약개발 기관 설립'을 내놨다.

상업화를 위한 기초연구를 담당할 별도의 기관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하 연구원은 "정부 정책은 유연성을 가지기 어렵고, 기업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든 수직적 구조가 있다"면서 "이 중 가장 자유로운 대학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 대학이 직접 투자를 하고 펀딩을 유도해 바이오벤처와 유사한 기관을 설립하고 의약품 개발을 위한 산업전문가를 초빙, 대학교수들의 원천기술이 신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책적, 법적 장벽이 있겠지만, 이같은 부분을 정부가 지원해준다면 기술상용화에 있어 대학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기업으로 기술이전을 해야만 상용화가 가능하지만 이를 통해 더 손쉽게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하면 한국의 바이오에 관한 여러 지표들도 개선될 거라고 본다"고 했다.

정부 투자가 소위 '뜨는 트렌드'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투자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R&D 투자기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녹십자랩셀 황유경 소장은 "정부의 투자는 몇가지 핫(hot)하다는 트렌드에만 집중된다. 정부는 바이오의약품이 가야할 길이 첨단바이오의약품이라면서 주로 재생의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온통 줄기세포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줄기세포에 그간 많은 연구비가 들어가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글로벌트렌드를 볼 때 (시장규모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어 산업화 관점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한국에서 줄기세포치료제를 가장 먼저 허가받았다고 하지만, 면역세포치료제는 더 일찍 허가를 받았다(녹십자셀 '이뮨셀-엘씨' 2008년 7월 허가). 편향되지 않게 정책에 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여러 부처들이 진행하고 있는 R&D 사업이 시너지를 극대화하기에 조화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세원셀론텍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는 미래부에서 R&D와 관련된 전 부처를 총괄한다는 이미지를 받았다. 지금도 부처간 관계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부처의 나눠먹기식 R&D가 아직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유사한 내용의 연구과제가 이름만 조금 바꿔서 여러 부처에서 진행 중에 있다"면서 "컨트롤타워를 통해 관리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 "문제점 인식, 노력하고 있다"

제2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 중인 보건복지부는 정부의 R&D 시스템 개선과 관련해 많은 전문가들과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 김주영 과장은 "(계획 수립을 위해) 비공식 인원까지 100여명이 논의하고 있다. R&D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다"고 했다.

이어 "학자들은 사업성을 근간으로 하는 연구보다 학술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욕구가 많고 기업에선 사업 가능한 연구를 원한다"며 "기초연구를 하는 대학에 무조건 연구방향을 바꾸라고 하기 어려운 만큼 사업화가 가능한 물질들이 개발로 이어지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고 했다.

산업부에서도 상업화 가능성이 있는 연구를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R&D 사업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부 바이오나노과 서성태 서기관은 "그동안 제약사가 대학의 기술의 이전받아 크게 성공하는 사례를 만들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대학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제약사가 개발할 수 있는 (R&D 사업)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성공사례가 생겨나면 산학협력이 더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조원준 위원은 정부 R&D 사업 과제의 '기획단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은 "R&D를 수행하거나 평가하는 단계에선 행정적으로 책임이 부과되기 때문에 투명성이나 절차적 정당성은 어느 정도 확보됐다고 판단한다"며 "문제는 기획단계다. 기획단계에서 문제는 '독식에 의한 특혜 및 불공정에 의한 도덕적 측면'과 '상용화 가능성 판단에 대한 코디네이팅 부재' 2가지다"라고 봤다.

그러면서 "첫 단추가 잘못 끼어져 있는데 다음 단추와 마지막 단추가 끼어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전체 연구용역 사업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잘못된 것"이라며 "도덕적 해이는 별도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기초연구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코디네이팅 부분은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상업화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대기업 특혜논란' 등의 반대급부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조 위원은 "규제완화와 지원이라는 정책수단으로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목적이다. 하지만 선도기업을 지원했을 때 특혜나 불공정이라는 이면에 맞닥뜨릴 수 있다"면서 "균형점이 필요해 설계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했다.

정부가 기업과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공유하는 만큼 성과 공유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조 위원은 신약개발을 위해 바이오시밀러 등과는 차별화된 정부의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이 필요하다는 한 벤처기업 관계자의 주장에 "정부가 위험도 높은 부분에 대한 지원을 과감히 했을 때에 실패에 대한 공유는 가능하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공유는 이뤄지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적인 영역에서 실패는 공유하면서 성공은 공유하지 않으면 불공정할 수 있다. 관련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데에 있어선 정부가 아닌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러한 판단은 공공에서는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최윤희 연구원은 "향후 특정 시장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있어 기업들의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가정 하에서는 기업의 니즈가 반영된 기획을 하면 된다"면서 "신약개발에 대한 니즈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에서 기획에 참여하면 R&D 사업의 목적성이 더 뚜렷해질 거라고 본다"고 했다.

그간 R&D 사업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필요한 기술을 과제로 기획하는 식이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최 연구원은 "정부에선 R&D를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것인지 복지차원에서 지원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신성장동력을 위한 R&D 70%, 복지차원의 R&D 30% 하는 식으로 공론화와 합의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조원준 위원은 보건의료 규제에 대한 당의 입장으로, 모든 규제가 아닌 불필요한 규제를 합리적인 기준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점과 이전 정부에서 당이 규제완화에 보수적인 입장이 아닌, 과도한 규제완화에 반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위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규제완화와 관련된 문제를 정리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오해가 발생한 부분은 당시 민주당이 진보적 정책성향을 표방하면서 규제완화에 대해 보수적이라는 논쟁과 비판"이라며 "과도한 규제완화와 대척점에 있다보니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했다.

이에 "국제적 규제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중장기적 종합계획을 설정하겠다"는 공약은 이같은 고민을 거쳤다고 그는 부연했다.

조 위원은 "일단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전 정부의 프레임에 새정부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규제는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가 있다. 국제기준이라는 지향점을 두고 부합하는 합리적 규제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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