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 홍성태 간행이사 “기여 없이 논문에 이름만 올리는 ‘명예저자’ 정리하자”

논문 작성에 기여하지 않았지만 상급자라는 이유로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저자실명제를 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한의학회 홍성태 간행이사(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는 의학회 E-뉴스레터에 기고한 글을 통해 ‘명예저자(honorary author, 또는 선물저자 gift author), 유령저자(ghost author), 교환저자(swab author), 도용저자(theft author)’ 등을 막기 위해 저자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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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저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는 경우를 말하며, 유령저자는 그 반대로 실제 연구에 기여했는데도 논문 출판 시 저자에서 제외되는 경우다. 교환저자는 두 연구자가 합의 하에 서로 각자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려주는 것을 말하며 특정인의 이름을 일방적으로 공저자로 기입하는 것을 도용저자라고 한다.

홍 이사는 글로벌 표준에 따라 저자와 기여자(contributor)를 구분해서 기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이사에 따르면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는 저자 기준으로 ▲연구 주제 선정과 상당한 지적 기여나 연구결과의 직접 생산 ▲논문의 작성 또는 수정 ▲최종 원고 검토 및 투고 동의 ▲전체 연구내용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제시한다. 이 4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논문에 저자로 표시할 수 있으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을 저자로 기재하면 저자됨 위반(inappropriate authorship)이다.

하지만 저자됨 위반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홍 이사는 저자됨 위반 유형(명예저자, 유령저자, 교환저자, 도용저자 등) 중 명예저자가 가장 흔하며 국내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홍 이사가 저자 수 실태 파악을 위해 국내 종합의학학술지인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JKMS)와 Yonsei Medical Journal(YMJ)의 저자수를 5년 단위 연도별로 전수조사로 집계해 미국의사협회 학술지인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와 비교한 결과, 국내 학술지의 단일기관 연구 논문 평균 저자 수가 미국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단일기관 연구 논문만 따로 환산하면 국내 학술지는 평균 저자 수가 6~7명인데 JAMA는 2.2명이었다.

자료제공 : 대한의학회

홍 이사는 “미국에서도 명예저자는 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적다. 이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저자수가 공동연구에 의해서 많은 것이 아니라 연구팀별로 기본 저자수가 이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편집인으로 또 저자로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이 자료는 우리 단일기관 원저 논문은 대체로 여러 명의 명예저자를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홍 이사는 “명예저자가 만연된 경우 저자됨에 대한 윤리의식이 흐려지면서 자칫 출판윤리 전반에 대한 경시 태도가 생기게 된다”며 “저자됨은 개인적인 일이므로 편집인이나 독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태도로 발전하면서 심각한 윤리 문제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홍 이사는 “기여 없는 공저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명예저자의 희박한 윤리의식은 실제 열심히 연구를 수행한 주연구자(특히 제1저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연구업적 환산 방식에 따라서는 열심히 연구하는 젊은 주저자의 연구업적 환산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며 “연구계에 명예저자가 많아지면 연구업적 지표(research metrics)에도 거품을 만들어 여러 연구관련 지표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했다.

홍 이사는 “국내에서는 명예저자가 과거부터 만연했고 우리 유교문화 전통에 따라서 스승이나 선배를 공경하는 미덕으로 간주되기도 했다”며 “그러나 우리가 학술적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면서 경쟁할 목표를 가진다면 이런 관행은 이제 정리할 시점에 이르렀다. 자칫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어 추락하거나 일부 사례를 빌미로 국내 연구자 모두가 도매금으로 비윤리적인 연구자로 낙인찍힐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홍 이사는 이어 연구에 기여한 사람만 저자로 기록하는 저자실명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홍 이사는 “핵심은 우리나라의 유교문화에서 비롯한다. 교수나 나이든 전문가는 연구나 논문 쓰는데 뒷전에 있고 참여는 물론 내용도 모른 채 책임저자로 기록되는 우리 의학연구 문화와 이런 관행을 고쳐 나가야 한다”며 “무릇 저자라면 내용에 대해 지적인 기여를 하고 원고를 쓰거나 수정에 참여하고 최종본 원고를 읽고 함께 그 내용을 알고 책임져야 한다. 그런 연구자만 저자로 기록하거나 저자가 되려면 그렇게 역할을 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홍 이사는 “특히 책임저자는 그 역할을 분명하게 제대로 담당하자. 책임저자는 전체 저자를 대표해 편집인과 독자를 상대해야 한다. 그러면 저자실명제가 자연스럽게 실현된다”며 “저자실명제가 정착되면 우리가 디디고 서있는 우리나라 연구 인프라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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