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원 원장의 미래 의료를 만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 이외의 회사, 기관에서도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법안에 따라서 건강관리 서비스의 범위가 다른데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생활습관의 관리 및 질병예방만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이들 법안은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대한의사협회 및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보험회사들을 중심으로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들면서 이의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국내 건강보험에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비 절감을 통해서 비용을 절감할 유인이 있는 보험회사들이 건강관리 서비스를 잘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국민 의료비 지출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우리나라 민간 보험회사들이 건강관리 서비스를 시행함으로써 의료비 절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한적일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비가 저렴한 편이며 그 의료비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부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전체 의료비의 2/3 이상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불하고 있으며 민간 보험회사들이 부담하는 비율은 낮다. 따라서 건강 증진을 통해 의료비가 줄어든다고 해도 이 가운데 보험회사들이 누릴 수 있는 부분은 적어 투자 대비 효용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보험회사들이 사업적인 면보다는 질병 예방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건강 향상에 이바지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사기업의 속성상 이윤추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도 지속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만약 보험회사들이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법 개정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을 우선 시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인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여러 회사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보험회사들이 이들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소규모의 파일럿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프로그램을 직접 제공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주장하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회사들의 프로그램을 외면하는 것은 모순적인 태도이다.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보험회사가 건강관리 서비스를 도입했을 때 의료비 절감을 통해 보험료 지출 감축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디지털 제품이 그렇듯 빠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성능이 개선되면 이런 상황이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보험회사들이 그 때를 미리 준비하고자 한다면 직접 건강관리 서비스를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통하는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수집되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서 회사 당 적어도 수천명을 대상으로 최소 1~2년 이상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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