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의학회·역학회 심포지엄서 공중보건체계 개선 제안 쏟아져

국민들을 감염병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공중보건체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개선 작업을 진행했지만 감염병 거버넌스 체계 구축 및 공중보건전문인력 양성, 감염병 연구 지원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아직 산적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보건소 김혜경 소장은 지난 24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서울대 암연구소에서 개최한 ‘메르스 2년, 우리나라 감염병 관리체계 변화:진단과 처방’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감염병 관리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공중보건전문인력 양성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공중보건체계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면서 “그동안은 공중보건체계가 수행하는 사업에만 관심을 가져 조직과 인력에 대한 논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의료체계에 비해 공중보건체계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치료 중심의 국가보건정책을 운영해왔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공중보건과 의료를 구분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당연히 공중보건전문인력이 무엇인지, 이들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감염병 관리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감염병 위기대응의 중요성을 몰랐다”면서 “결국 메스로 사태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확인한 후에야 평시 위기 대비 및 대응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소장은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제도 개선으로 남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 소장은 ▲중앙과 지방의 거버넌스 체계 구축 ▲지방 감염병 관리 조직 강화 ▲공중보건전문인력의 체계적 양성 등을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 소장은 “감염병 관리를 중앙에만 맡겨둘 수 없다”면서 “중앙과 지방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이어 “지방자치제 20년을 거치면서 지방 행정 역량도 많이 향상됐고 감염병이 주로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현장 지휘는 지방이, 이를 위한 조정과 지원은 중앙이 하는 방향으로 역할 분담이 돼야 한다”면서 “중앙 정부가 지방에 대한 불신감을 버리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역할 분담의 방향 및 세부 기준에 대해서는 중앙과 지방 및 민간 전문가 간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공중보건체계 재정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보건전문인력 양성”이라며 “우선 공중보건의 책무를 명확하게 정의한 후 핵심 역랑을 정해야 전문인력 충원 및 업무 평가,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 등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의대와 간호대 등 보건의료관련 학과 교과과정 중 공중보건 교과목의 시간를 늘리고 그 내용을 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또 예방의학 내에 공중보건 세부 전공을 개설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보건부서에서 일할 공중보건의사 양성 과정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토론자들도 공중보건전문인력 체계적 양성과 감염병 연구 지원 등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분당서울대병원 이희영 교수는 “감염병 연구 특성은 실제 경험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라며 “국내 연구진들을 해외로 보내 에볼라 등 감염병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르스 이후에 늘었던 인력과 예산이 다시 줄어들고 있다”면서 “당장은 감염병 위기가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해외에서 나오는 케이스를 차분히 정리하고 준비해야 한다. 메르스처럼 갑작스럽게 준비하려면 또 다시 혼란만 발생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시 나백주 시민건강국장은 “감염병 연구는 정책적이고 종합적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는 자기 전공분야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연구 지원을 통해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그 방향이 임상적인 것 외에도 정책적이고 입체적인 연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중보건전문인력을 해외로 보내 다른 지역의 감염병 연구를 진행한다면 우리나라의 감염병 연구 및 대처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선진국인 우리나라가 메르스를 통해 방역후진국으로 전락한 원인이 거버넌스 문제라고 지적하며 보건부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은철 교수는 “2002년 보건복지부 공무원 중 40.7%를 차지했던 보건의료 인력은 2013년 31%로 축소됐다”면서 “반면 사회복지분야 공무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예산 비중도 점점 커졌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복지부의 많은 정책들 증 보건과 복지가 분명 같이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굉장히 많은 부분은 같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며 “독립시켜도 기능상에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OECD 국가 중 61.8%는 중앙부처 조직에서 보건과 복지를 분리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복지에 매몰되고 있는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독립시켜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현 정부가 복수차관제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보건부 독립 만큼 최선의 대안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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