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 - 아프리카

남아프리카항공의 기내잡지의 제목이기도 한 사우보나(Sawubona)는 “우리는 당신을 봅니다”라고 해석되는 줄루어 인사말로 ‘깊은 통찰과 존재로 초대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보니 영화 <아바타>에나오는 나비(Na’vi)족들의 인사가 “I see You(나는 당신을 봅니다)”였다. 줄루족들은 hello 혹은 good day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evening)정도의 의미를 담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글의 제목으로 쓴 ‘사우보나 아프리카’는 후자의 경우이면서도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느껴보려는 여행이었음을 표현해보려고 했다. <I'm Your Man>으로 우리세대와 친숙한 캐나다의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은 “아무데도 가지 않기야 말로 바깥의 모든 장소를 이해할 수 있는 원대한 모험이다.(1)”라고 했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야 보지 않고 이해할 수 없으니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해본다.

홍콩공항에서 4시간 가까이 대기한 끝에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남아항공(SAA) 비행기에 탑승했다. 쌀집아저씨가 남아공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더니 온통 흑인들이더라고 했다지만, 우리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오히려 흑인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홍콩시간으로 11시 55분에 출발예정이던 비행기는 자정을 넘겨 0시 10분에 탑승구를 떠났다. 그리고 보니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우리는 요하네스버그로 향한다’라고 해야 되나? 우리는 밤을 도와 13시간을 비행해서 요하네스버그로 간다. 홍콩에서는 자정에 떠났지만 시차 때문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할 때는 그곳 시간으로 오전7시가 된다.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긴 밤을 지새우는 날인가 보다. 홍콩에 도착할 무렵이 어둠이 내리는 7시경이었고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면 아침 7시가 되는 셈이니 시차를 고려해보면 무려 18시간의 밤을 보내는 셈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임에도 활주로가 붐비는 홍콩 공항

탑승구를 떠나 활주로로 이동하는데 보니 자정이 넘은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줄을 잇고, 도착하는 비행기도 적지 않다. 홍콩공항에는 밤이 없는 듯하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쯤 음료를 제공하더니 식사가 나온다. 생각해보니 한밤중에 한 끼를 제대로 먹는 셈이다. 이 식사를 거르면 거의 열 시간이 넘어서야 다음 끼니를 챙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전부 먹었다. 아침에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보이지 않을까? 식사가 끝나고 나니 기내의 모든 불이 꺼진다. 밤이 되었으니 잠을 자라는 뜻이겠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불을 켜고 책을 읽을까 했지만, 기내가 캄캄하니 다른 승객의 눈치가 보였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꼼짝도 않는 것이 꿈나라를 헤매는 듯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엉치근육이 밭아드는 듯 조금 앉아있어도 배겨서 자꾸 몸을 비틀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는 비행기를 많이 타는 것을 감안해서 <킬리만자로의 눈>. <오브 아프리카>, <여행하지 않을 자유>, <참 괜찮은 죽음>, <13시간> 등 다섯 종류의 책만 담았지만,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다가스카르섬 인근 인도양 상공에서 맞는 아침

마다가스카르섬을 지날 무렵 창밖이 훤해진다, 창문을 조금 올리고 내다보니 저 아래로 가물거리는 불빛 하나가 흐르는 것은 아마도 인도양을 지나는 배인 듯하고, 하늘가에 흩어져 있는 구름이 조금씩 붉어진다. 착륙을 두어 시간 앞두고 아침식사가 나온다. 비행은 순조로웠지만 출발이 늦은 만큼 7시 20분에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출입국관리가 환승객의 여권도 확인한다. 수속을 마치고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의 탑승구까지 가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요하네스버그가 중남부 아프리카 관광의 중심인 탓인지 탑승구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흑인의 비중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

킬리만자로산의 스카이뷰(bing 지도를 캡쳐함)

요하네스버그에서 나이로비까지는 2,915킬로미터.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예정된 10시 10분에 출발하였고, 10분 정도 일찍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제주공항만 할까? 계류장에 선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했다, 한적해 보이는 심사대 가운데 비자발급담당 창구에 줄을 만들어 섰다. 처음에는 창구가 하나였는데, 창구가 하나 더 늘면서 뒤에 온 사람들이 새로 줄을 만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혼돈이었다. 처음 비자발급을 시작한 창구에서만 영수증을 발급하였기 때문에 한참 뒤에 있던 사람이 여권을 먼저 돌려받는 일도 생겼다. 이번 아프리카여행에서는 대체적으로 줄을 잘 못서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로비행 비행기에서도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건너편 창에서 킬리만자로산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여권을 찾아 탁송한 가방을 찾으러 갔다. 다행히 우리 가방은 나왔지만 일행 가운데 한 분은 결국 가방이 도착하지 않는 불상사가 생겼다. 따로 2-3일 지내는데 필요한 물품을 기내로 들고 가지 않으면 정말 불편하겠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을 나와 기다리던 현지가이드를 만나 숙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사이에 케냐에 대한 설명을 듣다. 케냐는 우기에 접어들 시기인데 금년에는 다소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케냐 공화국(Republic of Kenya)는 인도양에 면한 동아프리카국가로 북동쪽으로는 소말리아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북쪽으로 에티오피아와 남수단, 서쪽으로 우간다, 남쪽으로는 탄자니아와 국경을 나누고 있다. 케냐라는 이름은 케냐산과 연관이 있는데, 그 케냐산의 이름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 다만 이 지역에 사는 키쿠유(kikuyu)족 언어 키린야가(kirinyaga), 엠부(embu)족 언어 키렌야(kirenyaa), 그리고 캄바(kamba)족 언어 킨야(kiinya)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신이 쉬는 곳’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이곳에 도착한 영국 사람들이 킨야(keenya)라고 잘못 발음했던 것이 굳어진 것일 수도 있다.

케냐의 국토는 582,646㎢로 세계에서 47번째로 넓다. 적도에 걸쳐있어 해안은 무더운 열대 기후이나 내륙 지방은 고지대로 건조한 기후이다. 수도는 나이로비이며,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인구는 4,666만으로 세계에서 31번째로 많으며, 키쿠유족(17.15), 루햐족(13.83), 칼렌진족(12.87), 루오족(10.48), 캄바족(10.08), 케냐의 소말리족(6.18), 키시족(5.71), 미지켄다족(5.08), 메루족(4.29) 순으로 구성되며, 그밖에도 소수부족들이 10.98%를 차지한다. 종교는 개신교(47.66%), 로마 가톨릭(23.46%), 이슬람(11.21%) 등으로 구성된다. 일인당 GDP는 3,516달러(2017년 기준)으로 동부와 중앙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높다.

화석자료에 따르면 260만 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같은 호미니드(hominid)가 살고 있었다. 기원전 500년 무렵 삼부루(Samburu), 루오(Luo), 투르카나(Turkana), 마사이(Maasai) 등 닐로트부족이 이주해왔으며, 기원후 100년 동안 서부 아프리카로부터 키쿠유, 루히아, 캄바, 키시, 메루, 쿠리아, 엠부 등 반투족이 이주해왔다. 그 무렵 몸바사(Mombasa), 말린디(Malindi), 잔지바르(Zanzibar)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아랍세계와 교역을 하였다. 10세기 무렵 이란 남부의 쉬라즈(Shiraz)에서 온 페르시아 술탄 알리 이븐 알하산 쉬라지(Ali ibn al-Hassan Shirazi)가 지금의 탄자니아 킬와(kilwa)에 왕국을 세웠다. 17세기에는 오만 아랍이 스와힐리해안을 지배하면서 노예를 중동지방으로 실어갔다. 케냐의 식민시대는 독일이 1885년에 지금의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에 있던 잔지바르 술탄의 케냐 해안 영토에 보호령을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는데, 1888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회사가 들어오면서 1890년에는 영국으로 식민지배가 넘어갔다. 195년부터 1959년까지 이어진 마우마우반란을 거쳐 조모 케냐타가 이끄는 케냐 아프리카 국민연맹이 독립정부조직을 주도한 끝에 1963년 독립을 선포하였다.(2)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시원한 물’을 의미하는 마사이어 에와소 니이로비(Ewaso Nyirobi) 또는 엥카레나이로비(Enkarenairob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구 336만(2011년 기준)으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우리나라 교민이 1,500명 정도 살고 있고, 교민이 운영하는 가발회사는 직원이 만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두피를 파고들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어 가발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비자발급이 늦어지고, 도착하지 않은 짐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숙소로 가는 도로가 차량으로 가득차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교통체증은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풀렸는데, 길이 60㎞정도의 고속도로는 중국의 건설회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중국정부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세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참고자료:
(1) 피코 아이어 지음. 여행하지 않을 자유 20쪽, 문학동네, 2017년.
(2) Wikipedia. Kenya. https://en.wikipedia.org/wiki/Ke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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