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고가라도 투여할 수만 있다면”…면역항암제 찾아 헤매는 환자들’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후 암 환자들로부터 정말 많은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기사는 면역항암제를 보다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일부 면역항암제를 상술로 악용하는 의료기관들이 있어 주의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암 환자(주로 말기 암 환자와 보호자)들은 기사의 ‘오프라벨’(off-label, 허가 외 적응증) 처방에 대한 문제제기로 면역항암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히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항의를 받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보건의료 분야인 만큼 욕 먹는 일은 다반사지만, 이번 기사 만큼은 아쉬움이 컸다.

환자들이 임상시험을 통해 증명된(허가 적응증) 이외의 질환에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는 것은 불확실성에 몸을 맡기는 것이고, 일부 의료기관들이 환자들의 희망을 빌미로 면역항암제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

우려와 항의가 이어지던 와중에 관련 온라인카페 운영자가 만남을 청했다. 개인적으로도 환자들의 속내가 궁금했던 바, 암 환자 보호자라고 한 이 운영자를 만났다.(다음은 카페 운영자와의 대화를 요약한 내용이다.)

“작년 이맘 때였습니다. 의사가 제 아이의 삶이 6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더군요. '해줄 게 없다고, 쓸 수 있는 항암제도 몇가지 없고 치료효과 또한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 하더군요. 기자님, 그 말을 들은 애비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이를 집에 들이고, 밖으로 나오니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우연인지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비를 맞으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을 그대로 보내고 싶을까요. 그날 실컷 울고 나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민간요법, 한약, 해외 자료 등 알아보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러던 중 사정을 아는 지인이 면역항암제라는 게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원칙대로라면 폐암, 흑색종 등에 허가된 면역항암제를 육종암을 앓고 있던 제 아이가 맞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 등으로 가서 처방을 받는 길도 있었지만, 제 아이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면역항암제를 맞췄습니다. 면역항암제를 두 번째 맞은 후 검사를 해봤더니 암 세포 70%가 사라졌다고 하네요. 오프라벨 주사를 놓은 의사도, 원래 주치의도 놀랄 정도였지요.

(사진을 보여주며) 제 아이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면역항암제를 투여받으며, 가족들 곁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행운이라면 행운이고,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지요. 하지만 기자님, 저는 면역항암제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신봉하지 않아요. 제 아이 이야기가 ‘간증’처럼 언론에 노출되는 것도 싫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기자님을 만나자고 한 건 암 환자들이 오프라벨을 맞고자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 암환자와 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들에겐 면역항암제가 지푸라기이고 희망입니다. 그나마 안전하게 ‘기적’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말도 안 되는 소금물 치료나,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한약에 수백만원을 들이는 말기 암환자가 있어요. 그들이 바보라서 허무맹랑한 방법에 그 돈을 들일까요? 방법이 없으니까, 허무맹랑한 방법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는 거예요. 하지만 면역항암제는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통해 효과를 확인할 수 있잖아요. 부작용도 체크할 수 있잖아요. 그저 대규모 비용을 들인 임상을 통한 연구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이들이 자신들의 돈을 들이는 것을 막는 게 옳은 겁니까. 그저 막기만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치료법을 받으라고 환자들을 내모는 거예요. 정말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국립의료원 같은 일부 공공의료기관에 통로를 열어주는 방법도 있잖아요.

더구나 제 아이와 같은 (치료)사례를 다른 환자들이 보고 듣고 있어요. 그들이 가진 희망을 뺏아야만 할까요. 기자님이라면, 기자님 가족이 같은 상황이라면 어땠겠습니까.

물론 (면역항암제는) 비싼 약이지요. 제 아이만 해도 3주에 한 번 면역항암제를 맞는데 300만~400만원이 듭니다. 저 역시 부담스럽지만, 그나마 감당할 여건이 됩니다. 돈이 든 대신 제 아이는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니까, 오프라벨이니까, 면역항암제를 맞지 못하게 막을 겁니까.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제 아이는 잘 살고 있는데요?

제가 아는 한 환우는 전라도에서 엠블란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면역항암제를 맞고 가요. 엠블란스를 하루 빌리는 데만 100만원이 듭니다. 거동이 어려운 그 환우는 왜 그렇게까지 면역항암제를 맞고 있을까요. 그저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치료로 6개월을 선고 받았던 그 환자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잘 살고 있으며 치료효과 또한 좋아 점점 건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카페 운영자의 말처럼, 면역항암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관련 전문가들도 공식적인 처방 경험이 수년에 불과한 면역항암제를 맹신해선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한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국제학회에서 면역항암제에 대한 내성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때문에 면역항암제 오프라벨 처방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말기 암환자 또는 희귀질환자와 그 보호자들에게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면역항암제는 안전하고 증명된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프라벨 처방은 옳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못하겠다.

나 또한 카페 운영자나 다른 암 환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바란다. 이같은 궁지에 몰린 암 환자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받고, 혹여라도 치료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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