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김현지 부회장 “PA문제에 대해 양보나 협상은 없다”

최근 PA(Physician Assistant) 문제로 의료계가 다시 한 번 들썩였다. 지난 12일 대한병원협회 학술세미나에서 나온 서울대병원 왕규창 교수의 “‘전문간호사’ 등을 진료보조인력으로 활용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왕규창 교수의 발언에 대해 반발하며, 'PA제도화 절대 불가' 원칙을 재차 천명했다. 병원계가 PA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인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당시 학술세미나에 참석했던 대전협 김현지 부회장을 만나 이번 논란에 대한 전공의들의 입장을 들었다.

- 병협 학술세미나에서 PA제도화 문제가 다시한번 나왔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대전협에 공식 초청장까지 보내놓고 우리가 반대하는 것을 뻔히 아는 PA제도화 강연을 집어넣은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전공의특별법이라는 세션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PA 문제를 넣은 것은 매우 의도적이라는 생각이다. 도대체 전공의특별법과 PA제도화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 ‘전문간호사’ 등 진료보조인력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 말장난이다. 지금 병원에서 근무하는 PA들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물리치료사 등으로 구성이 다양한데,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반감이 덜한 간호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 PA,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는 직업 역할이나 환자 안전에 끼칠 위해, 전공의 수련기회 박탈 등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보면 결국 같은 이야기다.

- ‘전문간호사’ 등이 도입되면 전공의 업무를 일부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반대하나.
지난 5년 사이 PA수가 급증했는데, 그에 비례해서 전공의 근무 시간이 줄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결코 아니다. 그렇게 전공의들 위해주고 싶으면 전공의특별법이나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 오는 12월 전공의특별법 시간 준수 조항이 발효된다. 하지만 발효를 앞두고 대전협에 가짜 당직표 관련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가짜 당직표를 만들어내라고 강요하고 주 100시간씩 근무시키면서 누가 누굴 위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현재 전공의 업무 중에는 의국 행사, 이메일 발송, 공지사항 출력해서 게시판에 붙이기, 입원 및 수술 일정 배정 등 의료인이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행정 업무나 연구원이 대신 할 연구 샘플 챙기기, 통계 돌리기 따위가 태반이다. 병원에서 이런 일을 수행할 비서나 연구원을 더 뽑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 먼저다. PA제도화 문제는 전공의의 업무경감과 관련이 있기 보다는 병원의 경제적인 이익과 관련이 높다. 제도화되더라도, PA가 하게 될 업무는 정책입안자들이나 각 병원의 필요에 의해서 특정 의료 행위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 PA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편이 부작용이 적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PA를 제도화해서 아주 제한된 의료 행위만 시키자고 한다. 설마 의사가 자기 손으로 전문 지식이나 기술도 없는 PA에게 개복이나 봉합을 시키겠냐고 전제한다. 그러나 이미 실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수술장에는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CCTV를 설치할 수 없고, 감염 예방을 위해 제한된 인력만이 존재한다. 폐쇄적인 병원 문화를 고려했을 때, 내부자 고발은 불가능에 가깝다. PA가 합법적인 의료인력이 되고, 수술방 문이 닫힌 뒤 그들이 환자에게 어떤 행위를 하는지는 고스란히 내부자들의 양심에 맡겨진다. 모든 의사가 좋은 의사는 아니며, 소수의 순수한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 만약 병원들이 인력 보강을 하지 않으면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가 어려운 곳도 생길 수 있다.
일은 많은데 그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하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 전공의 인력 줄어들면 이를 대신할 전문의를 더 뽑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전문의를 더 뽑으면 현 수가 체계에서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다고 우는 소리하는 병원장들이 있다. 그럼 정부를 대상으로 수가 정상화와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다. 왜 약자인 전공의들을 착취하고 불법적인 PA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의료인 업무 범위 조정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전제 조건이 있다면.
의사가 모든 의료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순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이미 법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해 기준을 삼을 만한 몇몇 판례를 내린 바가 있다. 상대적으로 저난이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비침습적인 행위들에 대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이 편이 PA라는 직종을 만들고, 관리 감독하는 행정적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이 또한 전공의특별법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수련환경이 제대로 개선되며,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 제도의 성공 후에 논의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전에 보건복지부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PA문제에 대해 정부에 바라는 점은.
우스갯소리로 ‘기승전수가’라는 말이 있다. 보건의료분야 모든 문제의 원인이 결국 저수가로 귀결된다는 소리다. 이 문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PA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가 체계에서 의료공급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형적인 직종이며, 보건의료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일부분이다. 2016년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방안 2단계 연구’에 따르면, 원가 보전율은 종별로 상급종합병원 84%, 종합병원 75%, 병원 66%, 의원 62%에 불과하다. 그 동안 병원은 상대적 약자인 전공의를 쥐어짜서 재정 적자를 메웠다. 그러나 전공의특별법이 발효되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했고, 현 수가체계에서는 돈이 없어서 전공의 수만큼 전문의를 채용할 수 없다. 환자 안전을 위해 전공의 수련 시간에 제한을 뒀고, 그로 인해 의료 인력 공백이 발생했다면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전공의 수련비용을 지원하고, 수가를 적정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PA를 제도화해 의료인력 공백을 메우려 한다면 나중엔 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리고 복지부가 작년에 공언한 PA실태조사도 하루 빨리 시행돼야 한다.

-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PA제도화, 절대 반대인가.
반대한다. PA는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전공의 수련기회를 박탈한다. PA든, 전문·전담 간호사든, 진료보조인력이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도, 협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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