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고시 면허정지 법안에 醫 “현실 반영하지 못한 법안” 반발

의료인의 아동학대 신고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면허정지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은 지난 10일 의료인이 진료 시 아동·노인·장애인 학대를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6개월 이내의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은 “의료인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아동 등의 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의무가 부과돼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개별법에서 정한 과태료만 부과될 뿐제재처분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아 신고율이 저조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서 “개정안을 통해 범죄 신고를 유도하고, 의료인의 업무상 책임을 강화하려 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처벌 강화는 미봉책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법안 취지는 공감하지만 너무 과도한 입법이라며 신고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의사들이 아동학대 피해자를 최일선에서 만나고 있어 이에 대한 신고의무가 부과됐지만 이미 그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다”면서 “아동학대의 모든 책임을 성실히 의무를 이행하는 의사들에게 부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아동학대 신고로 피해를 보는 의사들의 권익 보장을 위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면서 “아동학대가 사라져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의사들이 신고를 하지 않아 근절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했다.

이에 의협은 오는 16일 국회에서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 보건복지부와 함께 아동학대 신고율 제고와 예방대책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의협은 아동학대 신고율이 낮은 원인이 수사기관의 강압적인 태도, 진료 시간 중 조사 참여 등으로 신고에 부담을 갖기 때문이라고 봤다.

의협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신의진 학대대책분과위원장은 “최근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고 등 아동의 인권을 경시한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신고의무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동학대 범죄 신고 시 수사기관의 강압적 수사태도와 의료인이 진료 중에도 조사과정에 참여하는 등 부담감을 갖고 있다”며 “신고의무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미신고 처벌 강화에 대한 일선 의료 현장의 반응을 더 냉담했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현장이 얼마나 긴박하고 바쁘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법안”이라며 “아동학대 감시와 예방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사회에 있는데 왜 그것을 환자를 진료한 의사에게 전적으로 돌리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실제 정형외과나 성형외과처럼 외상을 진료하는 과에서 아동학대를 의심해 신고를 했다가 피해아동의 부모가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신고 의사에 대한 보호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이런 부분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이 법안에 대해 “그저 한 숨만 나온다”고 했다. A씨는 “아무리 의사라도 신체검진만으로 아동학대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다”면서 “그것은 경찰이 수사를 해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이어 “아동학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이를 확실히 판단해 신고를 하라고 짐을 지우는데 그럼 의사들에게 수사권을 줘야지 왜 처벌만 강화하냐”면서 “어처구니가 없다. 그저 한 숨만 나온다”고 피력했다.

의료법의 전체적인 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입법이라는 법조계 지적도 나왔다.

법무법인 세승 조진석 변호사(의사)는 “피해 아동이나 주변에서 피해를 호소하지 않는 이상 구체적으로 아동학대를 알 수 있는 기준은 우리나라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사 면허까지 정지시키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아동학대를 의심해 신고를 했지만 실제 아동학대가 아닌 경우 오히려 환자 비밀유지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면서 “최근 환자 정보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해 이를 강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이 부분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 전체적인 법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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