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

의료인은 환자를 대면해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직무 수행 과정에서 다양한 의무가 부과된다. 이에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노인복지법’, ‘장애인 복지법’은 의료인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아동· 노인·장애인 학대 범죄 등을 알게 되면 수사기관에 그 사실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

그런데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은 의료진이 진료 과정 중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의 학대를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면허를 정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료인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아동· 노인·장애인 학대 범죄를 알았는데도 정당한 사유 없이 수사기관 등에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부과되던 과태료 500만원을 6개월 이내 면허자격 정지로 처벌규정을 강화했다.

대법원 등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도 2014년 1만7,791건에서 지난해 2만9,669건으로 급증했다. 2014년 법원에 접수된 아동보호 사건은 144건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1,122건으로 8배로 폭증했다. 2016년 역시 전년보다 2배가 증가한 2,217건에 이르렀다.

아동학대신고가 부족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신고를 해도 피해 아동 보호 사건으로 송치되지 않는 등 사후 감독이 더 문제인 셈이다. 그럼에도 의사와 환자 보호자 사이에 단순 사고를 아동학대로 신고해 진료실에서 상호 불신을 조장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보육시설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례를 보면,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아이를 가두거나 식사를 주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정서적 학대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외상도 없어 정신과적인 상담 없이는 학대를 의심할 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발적 일회성 단순 폭력과 학대를 구분할 기준도 불명확하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상호 불신을 조장 하게 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아동 학대 피해자들의 의료기관 방문 자체를 가해자들이 방해하게 되어 치료를 오히려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아동만 양산 될 것이다.

직무 특수성에 따라 의사에게 신고 의무가 부여됐음에도 불구, 의료진의 범죄 신고율이 매우 저조한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주장하는 최 의원은 그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바란다.

입법 목적이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인지 아동 학대 피해자의 병의원 방문 자체를 꺼리게 할 목적인지 분명히 해주길 바란다. 학대 피해자들이 병원 진료자체를 꺼리게 된면 치료의 사각지대만 양산될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의 신고가 2015년 대비 69% 급증(4900→8302건)해 일반적 아동학대 신고 증가율(54%, 1만9000→ 2만9000건)보다 훨씬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신고 의무자의 벌칙 강화보다는 피해 아동 보호·치료, 피해아동 가정에 대한 안정적인 치료 지원이 의료기관에서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신고 의무자 벌칙을 완화하는 게 타당하다.

아동 학대 신고 의무 직업군 속에서 유독 의료인의 관련 범죄에 대한 신고를 유도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업무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면허 자격 정지가 필요한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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