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검사·비급여·기왕증 삭감 또 삭감...분심위서는 인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맡은 지 4년여가 지났다. 자보 심사를 전문심사기관이 맡아 전문성과 일관성을 높인다는 목적이었지만, 의료현장에선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간의 심사 기준이 모호하게 뒤섞여 납득이 안 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더욱이 삭감 등에 대한 심사가 잘못됐다고 하소연할 데조차 없어 그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심사를 위탁한 국토교통부는 이렇다 할 개선책도 내놓지 않고 있어, 사실상 방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계속되는 진료비 삭감, 자보심의회는 인정?

자보 진료비 삭감 논란은 한두 해에 걸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삭감이 줄기는커녕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늘어나는 한방 자보 진료에서도 기왕증, 첩약 등의 삭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자보심사 위탁 초기부터 논란이 있었던 CT, MRI 등 검사의 삭감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교통사고 환자는 건강보험과 달리 후유증 등 잠재적 위험을 발견하기 위해 충분한 검사가 필요한데, 뚜렷한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심평원이 모두 삭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건보에서는 비급여 항목으로 인정했던 유착방지제 등 치료재료를 자보에서는 인정하지 않아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도 비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로 인해 척추골절 등 기왕증이 악화된 경우라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기왕증 치료라고 무조건 삭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공통적으로 심평원이 자보환자에게도 건보 심사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발생하는 문제로, 여전히 자보환자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실제로, 이렇게 심평원에서는 삭감됐지만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이하 자보심의회)에서는 인정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심평원의 심사 기준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병원 관계자는 “교통사고 후 전방십자인대파열로 수술을 한 환자의 진료비가 삭감된 적이 있다. 심평원은 기왕증이 있어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자보심의회에서는 5급에 준하는 환자 상태로 수술료를 인정해줬다”면서 “수술료 이외에도 MRI, CT도 심사청구를 해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상태나 의료진 판단, 보험사의 의견을 들어 인정될 것이라 판단되는 사례는 매달 꾸준히 심평원에 이의제기를 하고, 자보심의회에 심사청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B병원 관계자는 “심평원에서는 초음파 잔료량 측정시 전액 삭감되고 이의신청을 해도 모두 기각되지만, 자보심의회에서는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심평원은 자보심의회가 상위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사항을 심사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심평원은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CT 검사도 결과상 노멀이면 무조건 삭감을 한다. 비용효과적인 (자보)관점에서만 심사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암과 같은 질병으로 CT를 찍는 것과 교통사고로 인해 뇌 출혈 등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CT는 목적자체가 다르다”면서 “의료기관에서는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게 되면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 자보에 가입한 것 또한 이러한 치료를 보장해준다는 이유에서가 아니었나. 그런데 심평원 심사 이후에는 의료진의 판단도 무시된 채 삭감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 한 관계자는 “자보심의회는 기왕증이 있다고 해도 사고로 증상이 악화됐다고 보면 원 치료비 전액을 인정하는 것이고 심평원은 기왕증이 있다고 깎기 때문”이라며 “심의회는 처음부터 자보심사를 위해 만들어진 합의기구로 자보기준대로 세팅된 심사기준이 있지만 심평원은 건보를 기준으로 세팅된 기준으로 심사한다. 원래 두 기관의 심사 목적 차이 때문에 결과도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자보 심사가 바뀌어야 한다. 상해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에 머리를 다쳐 환자가 불안해하면 CT 등 필요한 검사를 통해 이상이 없음을 빨리 알려줘야 하고 일본처럼 조속한 치료를 통해 불필요한 입원기간과 치료 등을 줄일 필요가 있다”면서 “현 심사기준으로는 의료기관은 치료해주고 비용을 못받고, 보험사는 장기 입원치료나 한방치료 등으로 합의금 등 비용이 증가하고 환자는 소극적 진료를 받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자보의 특성을 감안해 의학적 타당성을 심사하고 있다. 심의회에서 인정됐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결과를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아서 파악이 안된다”면서 “정식으로 자료를 요청해서 심사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파악해 보겠다”고 답했다.

심사청구까지 험난한 이의제기...인정률 30% 수준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꾸준히 이의제기를 해서 이를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평원에 이의제기를 하고 심사청구를 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사실상 이의제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자보 환자를 피하기 일쑤다.

현재 자배법에 따르면, 의료기관 또는 보험회사 등은 심평원의 심사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심사결과통보서를 받은 날로부터 25일 이내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 이후 심평원은 이의제기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 그 결과를 통보하게 돼 있다. 건강보험이 90일 이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물리적인 기간이 짧다.

또 자보심의회에 심사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심평원의 통보서를 받아야 하며, 심사 청구 시 건당 기본 5만원의 비용과 심사청구액의 10%인 부가비용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더욱이 심사청구의 경우 결과 통보일이 자배법상 규정돼 있지 않아, 길게는 1여년 뒤에서야 청구결과를 통보받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심평원의 이의제기 비율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심결건수(1,552만5,771건)의 단 1.13%(17만5,630건)에 불과하다. 이중에서도 이의가 인정된 비율은 단 32.05%(5만6,281건)에 그친다(심평원 자보 이의제기(보험회사+의료기관) 신청현황 자료).

더욱이 자보 이의제기가 기각돼 자보심의회에 심사청구를 한 건수는 같은 해 2,594건에 그치는 등 전체 심결건수 대비 0.017% 수준이며, 이중에서 실제 인정된 건수는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자보심의회 자료).

특히 최근에는 의료기관보다 보험회사의 이의제기 신청이 크게 증가한 현상도 포착됐다.

이의제기 처리건율이 2014년 2.89%에서 이듬해 1.12%, 2016년 1.13%로 감소했는데 이는 의료기관의 이의제기가 2015년 80.72%에서 57.16%로 급감한 반면, 보험회사의 이의제기가 19.28%에서 42.85%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심사청구 역시 2014년에는 보험회사 청구가 19%였던 데 비해 이듬해 16%, 지난해는 69%로 급증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 또다른 관계자는 ”의료기관의 이의신청이 적다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이나 이의제기를 해야 하고 비용적인 부분도 무시하기 어렵다“면서 ”더욱이 의료기관의 문제제기가 더 줄었다는 건 그만큼 포기하는 게 많다는 것일 수 있다. 반대로 심평원에 심사를 위탁한 보험사조차도 이의를 제기하는 건수가 높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고 지적했다.

별도의 분쟁조정위 필요...국토부 “개선은 하겠다”

계속되는 자보 진료비 삭감으로 인해 소극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한 병원. 그렇지 않고서는 한달에 수백만원의 삭감은 감수해야 한다고 하소연 한다.

심평원이 심사를 맡은 2013년 7월에는 초기니까 어느 정도 삭감이나 착오를 감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기관에서는 4년이나 흘러도 변함없이 심사기준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번 삭감과 이의제기, 인정과정을 두고 자보심의회와 심평원, 국토교통부는 제도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정작 심사 기준이 심의회와 심평원이 왜 다른지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더 커지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서로 다른 기관이라도 심사기준을 일정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잘안되고 있다”면서 “기관대 기관의 자존심 문제로, 서로 심사사례를 공유하지 않는다. 지금의 심의회는 재정이나 운영의 어려움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심평원의 일방적 심사를 견제할 기구가 필요하며, 국토부가 아닌 복지부 소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심평원이 현재 심사패턴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만 심평원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분심위 심사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의료계 입장에서 분노할 일이다”라며 “심사일치성을 위한 노력을 보여 치료를 다해주고 돈을 못받는 사례가 없도록 해야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자보심의회나 심평원은 지속적으로 국토부에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평원에 심사위탁이 됐지만 기존의 심의회가 유지된 현 상태에서는 양 기관의 역할이나 기능이 모호해져 과도기적 현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자보심의회 관계자는 “심의회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국토부에 심의회의 역할을 강화해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건의했고 이를 추진해 온 것으로 안다. 기존에 심의회가 했던 역할인 만큼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보단 현 체제를 잘 정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 자보센터 관계자는 “심의회는 현재의 자보심사기준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건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합의기구다. 필요하다면 제도개선 건의 등의 역할을 해줘야한다”면서도 “현재로는 전문기관에 심사를 위탁하고 기존의 심의회 제도를 존속하는 제도 자체가 불합리해 개선을 국토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심사를 공정히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는데 국토부에 계속 건의를 해도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국토부와 만나서 기준과 제도 개선을 건의할 것”이라며 “의료기관에서 심사기준을 더 잘 인지할 수 있도록 사례 발굴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를 더 많이 공개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자동차운영보험과 관계자는 “지난해 심의회와 심평원의 기능 개선에 대해 논의를 한차례 했었다. 하지만 팀장이 바뀌어서 추가적으로 더 논의한 바는 없으며, 업무파악을 한 이후 개선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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