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우 美국방부 수석역학조사관“질병관리본부, 관료 아닌 전문가 집단돼야”
맹목적으로 CDC 따라가는 건 지양…한국 상황 감안한 시스템 개편 필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가방역체계를 다시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질병관리본부 역할 재정립이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국가방역체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해 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졌다는 지적이 많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질병관리본부 개편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럴 때마다 모델로 거론되는 곳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다.

미국 CDC에서 6년 동안 근무하고 현재 미국 국방부 소속 수석역학조사관으로 있는 탁상우 박사는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관료가 아닌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메르스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모든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위기대응상황실’을 상설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보 공유와 위기 소통도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약점으로 꼽혔다. 미국 CDC 역학조사 전문요원 양성 프로그램인 EIS(Epidemic Intelligence Service)를 이수하고 CDC는 물론 미국 주정부에서도 근무했던 탁 박사를 지난 2일 만나 한국 질병관리본부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미국 CDC에서 6년 동안 근무하고 현재 미국 국방부 소속 수석역학조사관으로 있는 탁상우 박사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 질병관리본부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 메르스 사태를 지켜봤는데 정부 대응 면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우선 정보 공유 부분이다. 미국 CDC가 공중보건 위기대응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역량 12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게 정보 공유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한국 정부는 정보 공유에 대해 보수적이지 않았나 싶다.

미국도 처음부터 정보 공개가 잘 되진 않았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 당시 각 기관들이 갖고 있던 정보들을 공유하지 않아 그런 사태를 겪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이후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미국 CDC는 공중보건을 위해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래도 공중보건에 위해가 되는 상황이면 개인 정보를 노출시킬 수 있다고 법제화돼 있다. 공중보건 위기 시 보건복지부 장관, CDC 장, 지역 공중보건위기대응단 단장이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명시돼 있다. 9·11 테러 이후 바뀌었고 지금은 정보 공유에 적극적이다. 미국에서 에볼라 환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 바로 얼굴이 공개됐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은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개했고 그 이후 그 환자와 접촉했던 사람들의 신고가 들어왔다.

- 정보 공유 외에 미흡한 부분은 없었나.

위기 소통 부분도 아쉬웠다. 메르스 관련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 질병관리본부장에서 그 윗사람들로 순차적으로 바뀌면서 위기 소통에 대해 훈련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위기 소통은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다. 현재 잘하고 있으니 우리를 믿어 달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정보 공유와 위기 소통은 맞물려 들어가는데 그 부분이 미흡했다.

또한 위기 소통은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중요한데 브리핑을 하는 정부 관계자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말을 적게 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차라리 훈련된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거나 의사소통을 했으면 나았을 것이다.

- 미국 CDC는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나.

한국 질병관리본부와 미국 CDC의 큰 차이이기도 하다. 미국 CDC에는 ‘헬스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health communication specialist)’라고 해서 소통 전문가들이 굉장히 많다. 각 부서별로 한명씩 있을 정도다. 내가 있던 곳이 직업환경보건연구원 감시체계 부서였는데 50명 정도 되는 인원 중 소통 전문가가 2명 있었다. CDC 전체로 보면 수백명은 될 것이다. 그런 소통 전문가들을 통해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만들어 전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려운 과학 용어를 대중들에게 쉽게 풀 수 있도록 훈련돼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 CDC는 10여년 동안 이런 노력을 해 왔고 한국은 초기 단계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 메르스 사태를 키운 건 질병관리본부가 국가방역체계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고려의대 감염내과)을 국무총리 ‘메르스 특보’로 임명해 전권을 준 것을 두고도 지휘체계에 혼선을 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분야 최고 전문가에게 책임을 맡기거나 보건복지부 위로 위상을 갖춰 활동하게 하는 건 긍정적이다. 전문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은 좋지만 아쉬웠던 것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관계 설정이다. 질병관리본부 위로 올려버리면서 그 사람을 믿어달라고 하면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진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현상적으로 보면 질병관리본부가 못했으니까 이 사람을 따라서 하라는 게 돼 버렸다. 질병관리본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질병관리본부가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나.

- 그래서인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를 볼 수 없다.

한국은 월드컵 경기 중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국은 그런 모습을 볼 때 의아하게 생각한다. 한 번 맡겼으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기본이다. 문화적인 차이이기도 한데 중간에 교체하면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를 보고 일해야 하는가. 사령탑을 바꾸면 잘 굴러갈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직이 움직이려면 헤드와 그 밑에 있는 인원들이 한 마음이 돼서 가야 한다. 사령탑에 맞춰져 있는 팀워크가 있을 텐데 새로운 사람을 사령탑으로 앉히면 팀워크가 생기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 그렇다면 미국 CDC는 메르스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하나.

한국 질병관리본부와 미국 CDC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위기 대응을 누가 하느냐이다. 미국 CDC는 위기 단계에 따른 대응팀이 있다. 센터별, 오피스별로 위기대응팀 구성원을 미리 정해 놓는다. 경험이 있거나 훈련이 돼 있는 사람들을 미리 정해 놓고 위기단계에 따라 그 인원을 파견한다. 현장에 파견하는 경우도 있고 ‘위기대응센터’(emergency operation center)로 파견해 다른 부서와 공조한다.

이는 간단한 논리다. 미국 CDC는 상시적인 임무가 있다. 만성병관리, 병원감염관리 등 상시적인 활동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고 그게 공중보건활동이다. 그걸 중단하면 상시적으로 보호받던 사람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말이 안되는 상황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보건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따로 선정해 놓는 것이다. 상시적인 임무는 그대로 둬야 한다는 마인드가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에 업무가 집중됐다.

- 위기대응센터는 어디에 있나.

상시 운영되는 상황실로 애틀랜타주 CDC 내에 있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때는 전 세계를 모니터링한다. 이때 국내 상황은 CDC 내 다른 부서에서 감시해 위기대응센터로 보고한다. 위기 상황이 격상되면 위기대응센터 인원이 보충되고 더 많은 정보가 집중된다. 위기 상황 최고 단계가 되면 CDC 장이 매일 위기대응센터로 출근해 직접 보고 받는다. CDC 내 센터장들은 물론 국방부, 보건복지부, 국토안전부 등 다른 부처에서도 협력관을 파견한다. 정보가 위기대응센터로 집중되고 거기서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

위기대응센터 장점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결제 과정을 단축시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 조직은 결제를 받아야 일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할 수가 없지만 위기대응센터만큼은 다르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에도 감시 업무를 하는 과(감염병감시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기상황과는 잘 연계되지 않고 경험도 없는 것 같다. 위기 대응을 위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생겨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도 상황실이 있지만 전문 인력을 충원해 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필요하면 그곳에서 국제공조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 한국 질병관리본부 조직이 작아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원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무조건 인원만 확대한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와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현재 질병관리본부에는 관료 출신들이 많은데 미국 CDC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 관료 출신이 들어오는 구조가 돼 있지 않다.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를 이수하고 조직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와서 시작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공중보건에 대한 이해가 없지는 않다.

미국 CDC 내 여러 센터들이 있는데 센터별 디렉터들 중에는 역학조사관부터 시작해서 부서장이 되고 디비전(division), 센터 디렉터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지역 주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했던 사람들이 센터장으로 와서 역할을 한다. 결국 전문가들이 와서 일하는 구조다. CDC 전체가 전문가 집단이다. 그렇다보니 미국 CDC 장은 자기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정보를 바로 자기 밑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 얻는다. 그들이 최고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를 듣고 상부에 보고한다.

질병관리본부의 권한도 더 많아 져야 한다. 질병관리의 전문가집단은 질병관리본부다. 그 전문가들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기 위해서는 위상을 올려줘야 한다. 미국 CDC 장은 차관급이다.

- 질병관리본부 규모가 얼마나 커져야 한다고 보는가.

국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주 정부와 시 정부, 카운티 정부가 있는데 카운티 정부에서도 이미 보건인력을 갖추고 있다. 주 정부에도 역학조사관이 많다. 주에 상황이 발생하면 주 정부 소속 역학조사관들이 대응한다. 그런 인원까지 합치면 미국 내 공중보건대응 인력은 굉장히 많은 것이다. 그 중 일부가 CDC 소속인데도 1만명 가까이 된다.

한국도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을 우선 짚어봐야 한다. 지자체의 역량까지 고려해서 질병관리본부에 필요한 인원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에 공중보건대응 역량이 없으면 질병관리본부가 훨씬 더 커질 필요가 있다. 중앙 정부가 너무 비대해지는 게 경계된다면 지자체 인력을 늘리면 된다. 어느 쪽에 중점을 둘 것인가는 행정하는 사람들의 권한이지만 국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 전문 인력을 양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전문 인력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현재 질병관리본부 내 전문 인력들은 결정권이 없다. 전문 인력이 행정관료인 과정을 설득해야만 한다. 얼마 전 유능한 연구관이 질병관리본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 연구관이면 과장 아래인데 무슨 일을 하든 과장의 결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제때 할 수가 없는 구조다.

"미국 CDC, 역학조사관들에게 비전을 제시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전문 인력 중 역학조사관 양성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감염병예방관리법’이 개정돼 역학조사관을 최소 64명은 뽑을 수 있도록 했고 병원 폐쇄 등 권한도 부여했다. 그런데도 현재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 대부분은 직업으로 역학조사관을 선택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자리를 만들어 놔도 올 사람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역학조사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전문가들이 모인다는 미국 CDC의 EIS 프로그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역학조사관을 양성하는 EIS 프로그램의 특징은 무엇인가.

미국 CDC는 역학조사관을 양성할 때 학문적인 역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현장에서 효율적이고 빠르게 역학조사를 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위기소통에 대해 가르친다. 언론과 인터뷰할 때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환자 상태를 묻는 질문에 “아직 죽을 만큼 위중하지는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듣는 대중은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 대신 “힘든 부분이 있지만 아직 상태가 양호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가르친다. 역학조사를 하는 현장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역학조사관들은 현장에서 환자들과 인터뷰를 해야 한다. 정부를 대신해서 환자들에게 묻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와 같은 말을 해야 한다.

- EIS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은 어떻게 되나.

EIS는 한해 70명을 받는다. 2년 과정이니까 140명이 항상 준비돼 있는 셈이다. 경쟁률도 높아서 내국인은 7대 1, 외국인은 10대 1 정도다. 그러다보니 목숨을 걸고 일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들이 온다. 그렇다고 현장에 가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다. 그만큼 사명감이 남다르다는 의미다. 의사나 간호사 등 임상을 하는 사람들은 보건학 석사 이상이어야 들어올 수 있다. 임상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건학이나 보건학 관련 박사 과정을 밟아야 한다. CDC는 10년 전부터 보건과 관련 없는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관련 박사들도 뽑고 있다. 역학조사팀에 전문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 처음부터 다양한 영역에서 역학조사관을 뽑았나.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의사와 간호사만 뽑았는데 그러다보니 한계를 느낀 것이다. 실제 역학 문제가 공중보건이나 감염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이나 정치적인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것을 포괄해서 대응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처음에는 반발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각 분야에서 역할을 하면서 CDC를 키우고 있는 주역들이다.

감염병 관련 문제가 생기면 감염병 전문가만 현장에 파견하는 게 아니다. 환경과 관련된 역학조사관들도 파견된다. 한국 메르스 첫 환자가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 환경 전문가가 파견됐다면 그 관점으로 대기나 환기시설을 봤을 것이다. 그러면 쉽게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미국 CDC는 다양한 전문 인력들이 함께 일하는 게 큰 장점이다.

- 얼마 전 개정된 ‘감염병예방관리법’ 중 역학조사관 자격에 약사와 수의사를 포함시킨 것을 두고 의료계 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 하든 제대로 훈련만 받으면 상관없다. 의사이기 때문에 역학조사관이 될 수 있고, 약사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그런 것은 없다. 의사들도 교육을 받고 훈련을 거쳐 역학조사관이 된다.

- 역학조사관 인력도 늘리고 권한도 확대했지만 지원자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현재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공보의들조차 회의적이다.

공보의들이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한 3년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4년 정도 일하면 전문가에 가까운 경험을 습득하는데 그것을 다 버린다니 안타깝다.

현재 미국 CDC 장은 EIS 1992년 클래스다. EIS를 이수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했고 뉴욕시에서 보건복지 담당자로 일했으며 그 이후 CDC로 왔다. CDC에서 역학조사관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롤모델이 있다. 나중에는 저 사람만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EIS 프로그램을 이수한 70명 중 다시 임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3~4명 정도인데 이들도 돈이 적거나 일이 재미없어서라기보다 환자가 그리워서 돌아간다고 한다. CDC에서 역학조사관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비전도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와 미국 CDC의 차이점을 설명하던 탁 박사는 맹목적으로 CDC를 따라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방제인 미국과 중앙집권제인 한국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국내에서는 미국 CDC를 질병관리본부의 롤모델로 꼽는다.

한국 질병관리본부를 미국 CDC와 같은 구조로 만들기는 힘들다. 장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국 문화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그 부분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매년 70명씩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역학조사관을 뽑을 것인가. 쉽지 않다. 미국 CDC도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 미국은 연방제이기 때문에 한국 질병관리본부처럼 일할 수 없다. 주지사가 도움을 요청해야 CDC가 파견될 수 있다. 우리가 다 맡아서 하겠다고 하는 게 안된다.

- 그렇다면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미국 CDC로부터 배워야할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신뢰 받는 정부 조직이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미국 CDC는 홍보도 ‘I am CDC’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식이 좋다. 미국 정부 조직 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도 몇 번 있다. CDC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도 CDC가 무슨 일을 하는 조직인지 알 정도이며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미국국립보건원)는 몰라도 CDC는 안다. 그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그 분야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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