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 도입하는 지방 대학병원 4곳으로 늘어…”빅4병원 중심인 판 흔들겠다”

대학병원들 사이에 ‘인공지능(AI) 바람’이 불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공지능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가천대길병원이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IBM ‘왓슨(Watson)’을 도입하면서 물꼬를 트자 몇 달 사이 대학병원 3곳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길병원에 이어 부산대병원이 올해 1월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와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를 도입했다.

건양대병원은 오는 4월 1일부터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암 환자 진료에 적용하기로 했다. 중부권 의료기관으로서는 최초다. 대구가톨릭대병원도 4월 중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들 대학병원 모두 지방을 근거지로 하고 있다. 이른바 ‘빅4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들은 왓슨 도입에 시큰둥한 모습인 반면 지방 대학병원들이 오히려 적극적이다.

지방 대학병원들이 큰 돈을 들여 왓슨을 도입하는 데는 수도권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는 환자들을 잡기 위해서다. 빅4병원과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최첨단 기술인 왓슨을 선택한 것이다.

가천대 길병원이 공개한 왓슨 진료 모습.

가천대길병원 이언 인공지능기반정림의료추진단장(신경외과)은 지난 19일 본지가 ‘인공지능 시대, 왓슨을 만난 의사’를 주제로 개최한 2017 KIMES 컨퍼런스에서 인공지능이 우리나라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빅4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 단장은 “암 진료의 70% 정도가 빅4병원에 몰려 있다. 진료비로 보면 90%가 빅4병원에 몰린다. 빅4병원 중에서도 일부 유명한 의사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폐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길병원 등 다른 병원에도 훌륭한 의사들이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다. 왓슨이 이런 판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왓슨 포 온콜로지와 왓슨 포 지노믹스를 모두 도입한 부산대병원도 길병원과 마찬가지였다. 부산대병원 정주섭 정밀의료센터장은 “지역 내 환자들이 KTX를 타고 서울에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왓슨을 도입한 것도 환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안심하고 지역 내에서 적기에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라며 “그간 꾸준히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해왔고, 최근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국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는 AI 분야에 우리가 먼저 발을 내딛기로 했다”고 말했다.

4월부터 왓슨으로 암환자 진료를 시작하는 건양대병원은 29일 이를 알리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한국형 인공지능 왓슨의 과제와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건양대병원 최원준 병원장은 “지역 환자들이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기 위해 일부 수도권 병원으로 가는 현상이 있었는데 왓슨 도입으로 여러 병원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건양대병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함께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녹내장 조기 진단 기술도 개발할 계획이다.

인공지능을 돌파구로 생각하는 건 지방 대학병원뿐이 아니다.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면서 상급종합병원과도 경쟁해야 하는 의원급 의료기관들도 인공지능으로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의료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왓슨을 도입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환자들의 신뢰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 도입했다고 하더라”며 “그렇다면 의원급도 인공지능을 잘 활용한다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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