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RB 김승민 회장 “임상시험, 과학적·윤리적 원칙 철저히 지켜가며 시행”

‘고수익 생체실험 아르바이트’, ‘마루타’, ‘모르모트’.

포털에 ‘임상시험’을 검색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다. 극단적으로는 ‘제약회사가 돈에 눈이 멀어 환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약을 먹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신약개발의 필수 과정으로,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던 임상시험이 어쩌다가 이렇게 자극적인 어휘와 짝을 이루게 되었을까.

아마 ‘안전성이 완전히 증명되지 않은 약을 먹는 것이니 위험을 수반한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임상시험을 권유하는 의사들은 정말 환자들을 제약회사의 마루타로 생각하는 것일까?

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이하 ‘KAIRB’) 김승민(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회장은 “마루타 식의 임상시험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못 박았다. 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는 전국의 IRB, 임상연구 관련기관 및 개인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협의체로서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임상연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KAIRB 김승민(연세의대 신경과) 회장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임상시험심사위원회)는 임상시험의 안전성, 과학성, 윤리성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독립적으로 설치된 상설기구다. 임상시험에는 병원, 제약회사, 환자 등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따라서 자칫하면 개인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 때 기준을 잡아주는 게 IRB다. 특히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의사 및 제약회사가 ‘갑’이 되지 않도록 피시험자의 권리 및 공정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IRB 위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임상시험관리기준에 근거해 구성된다. 기준에 따르면 IRB는 ‘경험과 자격을 갖춘 5인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돼야 하며, 그 중 두 명은 ‘변호사, 종교인, 윤리학자 등 해당 시험기관과 관련이 없는 사람’ 중에서 위촉하도록 돼 있다. 연구와 이해관계가 없는 비과학자를 필수적으로 참여시켜 객관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김승민 회장은 “모든 임상연구는 예외 없이 시작 전 IRB에 등록해 심의를 거치게 된다”며 “해당 연구의 의학적 타당성은 물론, 임상시험 대상자들에게 충분히 안전한지, 예상되는 부작용 혹은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심의에는 비과학계 인사들도 참여한다. 그들은 ‘환자 입장’에서 이 연구를 시행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지 살펴보게 된다”면서 “이렇게 과학성 및 윤리성이 철저히 검증된 뒤에야 비로소 동의서 제작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임상시험의 첫 과정은 ‘동의서에 서명하기’다. 하지만 그 동의서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심의를 거쳤는지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 과정을 알고 있다면 생체실험이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회장은 또 “첫 심사를 통과했다고 끝이 아니다”라며 “연구하는 중간에 계획이 변경된 게 있는지, 데이터 수집 현황이 어떤지 등도 지속적으로 보고하게 돼 있다”고 전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임상연구보호센터’라는 기구를 설립한 병원들도 있다. 임상연구보호센터는 좀 더 ‘환자 입장’에서 동의가 강압적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는지, 환자가 원하면 임상시험을 그만둘 수 있는 환경인지 등을 끊임없이 보고받는다. IRB와 임상연구보호센터가 힘을 합치면 환자는 절대 ‘을’이 될 수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KAIRB, 전국 IRB의 표준화 및 국민홍보 위해 노력할 것”

현재 의료기관에 설치돼 있는 IRB 가운데 133개 기관이 KAIRB에 가입돼 있으며, KAIRB는 이들 133개 기관이 최상의 임상연구 여건을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력하는 역할을 한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크고 작은 IRB가 모두 표준화된 기준에 의거해 임상연구를 견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모든 IRB에서 동일한 최고수준의 시스템으로 임상연구를 관리해야 임상시험 대상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IRB는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중소병원에도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병원의 경우 시설의 한계로 IRB가 처리해야하는 수많은 업무들(교육, 문서관리, 약무국 관리 등)을 완벽히 해내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또한 KAIRB에서 지원이 가능하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실제로 KAIRB는 회원기관의 목소리를 파악하기 위한 ‘IRB 위원장 모임’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지난 15일에도 전국에서 46명의 IRB 위원장들과 KAIRB 협의회 구성원들이 모였다. 각 IRB 위원장들이 각자의 고민을 공유하고, KAIRB에 대한 요청사항을 이야기하는 등 임상연구의 과학성 및 윤리성 강화를 위한 토론의 장이 열렸던 것이다.

김승민 교수는 KAIRB의 8대 회장으로서, 앞으로는 대국민 인식개선에도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임상시험이 단순히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과학적, 윤리적 절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도 알리고 싶다. KAIRB만 이를 홍보할 것이 아니라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기관도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이런 KAIRB 및 IRB의 노력 덕분일까. 우리나라의 임상연구는 국제적으로도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다. 많은 국내 IRB가 국제인간대상연구보호프로그램인증협회(AAHRPP) 및 세계보건기구(WHO)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FERCAP) 국제인증을 획득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로 임상시험 시행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단일 도시로 치면 서울이 세계 1위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한국 임상시험의 과학성, 윤리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에 김 회장은 “임상시험을 안전하게, 윤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장치가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오래 전부터 운영돼 왔다”면서 “국민들도 의사들, 제약회사들이 절대 마음대로 임상시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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