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제내성결핵 치료 못하나 안하나②…신약 급여기준 놓고 심평원-전문가 이견

지난해 정부는 OECD 국가 중 결핵 환자 발생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결핵 환자의 치료비 무료 지원, 학교·유치원·어린이집·산후조리원 등 종사자의 결핵 및 잠복 결핵 검진 의무화 등이 대표적이 예다. 이렇듯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으며 결핵 퇴치에 나선 정부지만, 정작 다제내성결핵 문제에선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치료가 쉽지 않고, 감염 예방 우려도 더 큰 다제내성결핵을 되레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문제를 2회에 걸쳐 살펴봤다.<편집자주>

“(다제내성결핵 급여기준 관련) 심의위원회를 사퇴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열린 다제내성결핵 신약(서튜러, 델티바) 급여기준 마련을 위한 심의위원회 회의 후 A심사위원은 이처럼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심평원이 결핵 전문가들의 의견과 환자의 상황은 고려치 않고 급여기준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다제내성결핵 신약 급여기준 마련에 앞서 사전심사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전심사제는 서튜러와 델티바 각 약제가 환자 당 3,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드는 고가의 신약인 만큼, 보험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급여기준의 근거들을 찾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사전심사제는 요양기관이 결핵 신약 심의를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하면 이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1차 심의를 하고, 이후 심평원의 2차 심의를 거쳐 사용 여부가 결정된다.

올해 1월까지 총 92건의 신청을 받아 1차 심의에서 74건이 승인됐지만, 2차 심사에서 10건이 불승인 돼 64건만 승인됐다. 다만 10건의 불승인 사례 중 2건은 재신청을 통해 승인을 받아 최종적으로는 66건이 승인됐다.

수치상으로는 불승인 건이 많지 않음에도 심의위원들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이 1차 심의에서 약 사용이 필요하다고 했음에도 심평원이 이를 뒤집어 최종 불승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2차 불승인된 사례 대부분은 두 신약을 순차, 병용하는 경우로 심평원이 순차, 병용을 무조건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최종 불승인 8건 중 신약 동시사용(병용) 또는 순차 사용은 6건이었다.

때문에 치료를 잘 받고 예후도 좋은 환자가 치료를 중단하거나 이미 심한 부작용 등을 경험한 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제내성결핵 환자를 방치하란 건가” vs “근거가 없다”
실제로 B대학병원 모 호흡기내과 교수는 “신약 두 개를 쓰는 것에 대해 불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심평원에) 이유를 물어도 답을 들을 수 없다”며 “신약이 고가라는 점도 알고, 혹시 내성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든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신약을 두 개 쓰겠다는 거였다. 다른 전문가들(1차 심의)도 인정한 걸 못 쓰게 하면서 이유도 얘기해 주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다른 환자도 아닌 사회적 감염 우려가 있는 다제내성결핵 환자다. 그런 환자를 눈 뜨고 방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환자가 너무 안쓰럽고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두 개의 신약 (병용 또는 순차)사용이 근거가 확보되지 않아 급여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불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제내성결핵치료는 매우 복잡하고 힘들다. 허가사항만 보고 ‘결핵약’이니까 되는 게 아니다. 또 결핵치료는 약 하나만 쓰지 않는다. 내성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 신중하게 병용 치료를 선택해야 한다”며 “임상에서 가이드라인에 기초해 어떤 약을 쓸 것인지를 결정하듯 심사도 그렇다. 근거가 부족한 사례를 건강보험에서 인정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WHO 지침을 기반으로 한 국내 (다제내성결핵 치료) 지침에서도 이 두(서튜러, 델티바) 약제를 같이 쓰는 것을 권고하지 않았다. 지침에선 A or(또는) B라고 돼 있지, A and(그리고) B라고 적혀있지 않다. 이들 신약의 병용 또는 순차 투여에 대해 ‘좋다’는 임상적 문헌이 없을 뿐아니라 유럽도 일부에서 허용하고 있고, 스위스 등 특정 국가에서도 (모든 결핵 치료제에 내성이 있는 환자 등) 특정한 환자에게 국가의 펀드 등을 활용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심사는 의학적 타당성에 따라 한다. 결핵은 효과가 없는 약을 쓰면 내성만 생긴다. 때문에 효과가 있을 때만 건보에서 적용해 주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C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심평원의 결정이 일관성 없다는 게 문제다. 사전심사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두 신약의 병용 또는 순차사용을 인정해 준 사례가 있다. 이는 2016년 11월 호흡기학회 심포지엄에서도 발표되고 학회 전문가들과도 공유됐다. 2016년 9월 사전심사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어떤 사례는 인정이 되고 어떤 사례는 인정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사전심사제 도입 이후 두 신약의 순차 사용 2건을 신청했는데 1건은 승인이 되고, 1건은 불승인됐다. 거의 비슷한 난치성 다제내성결핵 환자였는데 어떤 기준에서 이렇게 다른 결정이 내려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두 개의 신약 사용에 대해 급여 적용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심평원 측은 “신약은 2015년 5월, 11월에 각각 도입됐다. 도입 초 (면밀한) 사후 심사가 이뤄지지 않아 일부 인정됐을 수는 있다. 하지만 (두 약제의 처방에 대한 논란을) 인지하고 심사방향의 일관성을 만들어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제내성결핵 치료 책임 떠넘기는 심평원과 질본?

질병관리본부

심평원은 급여기준에 대한 회의가 마무리 됨에 따라 상반기 중 급여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두 신약의 병용 및 순차사용은 심의위원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는 만큼 급여기준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9일 회의에서는) 두 약제의 동시사용과 순차적인 사용에 대해 질병관리본부와 심평원 위원들 간 입장 차이가 있었지만, 그 외 급여기준은 WHO 가이드라인에 기초한다는 점에 동의했다”며 “명확하게 엇갈리는 기준을 제외한 나머지 기준은 일치한다고 보고, 이(일치하는) 부분만이라도 급여기준을 만들 계획이다. 회의에서도 위원들이 (두 신약 병용, 순차 사용의) 급여가 안 된다는 이유에 대해 동의는 아닐지 몰라도 수용은 했다”고 말했다.

심평원의 의도대로 두 신약 병용 및 순차 사용이 급여에서 제외될 경우, 다른 치료 대안이 없는 다제내성결핵 환자들은 방치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급여, 심사 기준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별도의 대책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결핵은 감염성 질환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신약 급여기준 마련을 위한 회의나 사전심사제에 심평원 외 질병관리본부가 선정한 심의위원들이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측은 지난해 9월 사전심사제 시행 후 합리적 급여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결핵환자 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고 한 만큼 약제내성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약이 나와도 보험에서 자꾸 삭감돼 합리적인 급여기준을 만들고자 사전심사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전문가가 인정하는 환자들은 보험급여를 통해 치료 관리되게끔 하고자 한 것”이라며 “(1차) 심의위원회에서 승인해도 심평원은 근거가 없다고 인정하지 않은 환자들이 생겼는데, 현재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지원을 위해선 별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심평원, 복지부와 협의를 해서 해결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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