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가득 채운 환자들 "우리 목소리도 들어달라"
전문가들, 사법입원제도로 전환 강조...복지부 "우려할 일 없을 것"

5월 30일 시행을 앞둔 ‘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환자 가족들 또한 정부가 당사자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박인숙 의원실 주관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는 참석하려는 수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행사 시작 전부터 환자 가족으로 구성된 단체에서 피켓 시위를 열었고,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아우성이 이어졌다.

이번 토론회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내용과 이슈를 짚고 제도의 개선점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자리로,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한 법조계 전문가들은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의 한계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시행 전 재개정이나 시행 시기를 미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정신보건이사는 “최소한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한 내용은 충족시킬 수 있는 법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서로 다른 2인의 진단에서 두 번째 전문의는 직간접적 이익과 무관하고 법적인 문제로 보호를 받아야 하며, 국가로부터 권한과 책무를 위임받은 자여야 하는데 복지부가 민간의료기관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이는 헌재가 지적한 부분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이명수 이사는 “국공립병원의 전문의 충원정도에 따라 민간의료기관의 참여 수는 달라지겠지만 민간의 수백명에 달하는 전문의가 지정병원형태로 참여해야 한다면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원적합성심사를 하는데 1달이 소요되는 것은 너무 길고, 대면조사는 부분적이라 효과가 미약하다”면서 “강제입원의 기준이 정신질환과 자타해 위험성이 동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치료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행려환자의 후견인 지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비자의입원 시 2인의 전문의 진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봉직의협회 박성혁 학술이사는 “1년에 약 23만건의 진단업무가 발생하는데 주5일을 기준으로 보면 하루 900건이다. 현재 국공립병원 정신과전문의는 140명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진단업무를 민간에 주는 것도 법의 인권보호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혁 학술이사는 “입원판정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해도 진단업무를 간단히 봐서는 안된다. 실제 초진환자를 보는데 1시간이 걸리는데 복지부 말처럼 45분이 걸린다고 치고, 다른병원으로 이동시간 15분, 총 1시간으로 가정해도 하루 12명의 환자를 본다는 정부의 주장은 의사가 주5일 매일 12시간 일하라는 것이라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법입원제도로 전면 개혁도 필요”

현 개정안은 정신질환자를 치료가 아닌 치한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입원적합성심사를 원칙대로 한다면 2인 의사 진단을 의무화한 조항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예 사법부가 입원 여부를 관할하는 '사법입원제도'로 전면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창윤 교수는 “개정안은 강제입원 조건을 제한하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여도 위험하지 않으면 치료적 접근이 안된다. 증상이 나빠져 자타해 위험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미국도 입원 조건을 자타해 위험으로 변경하고 난 뒤 오히려 비윤리적이며 환자에게 해로워졌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위험기준이 아닌 치료필요성을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 외국 사례를 들면서 자타해 위험성이 아닌 치료필요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 입원적합성 심사는 형식적이다. 1개월이 걸리는 점도 문제지만 서류심사이고, 대면심사를 할 경우에도 형식적인 절차만 확인하게 된다”면서 “입원적합성 심사만 제대로 하면 2인 의사 진단에 외부의사를 반드시 포함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입원적합성 평가라면 평가 시점을 2주 이내가 아닌 처음 72시간으로 변경하고, 계속입원을 평가할 때는 2주로 바꿔야하며, 입원 기간 역시 2주로 고정하는 것이 아닌 현실적인 3주~6주로 변경해야 한다”면서 “사법입원제도에 준하는 입원적합성 심사로의 근본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국대학교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변호사)는 “헌법불합치 판결에서 말하는 문제점을 모두 다 강화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엄격한 기준을 가진 나라도 없다”면서 “의학적인 관점에서 입원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호의무자의 요건을 강화해 부당한 입원을 방지하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그러다보니 현실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담보해주지 못하면서 불필요한 규제가 쌓이고 의료인들은 인권침해 주체로 매도되는 상황까지 몰리는 것”이라면서 “비자의입원 혹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요건은 총체적 규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국회와 복지부가 해결해 줘야하는 문제이고, 학회 또한 하나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사회적 토론과 의견수렴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자 가족 “당사자 인권 없는 법 개정”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 의견들이 제기되는 동안 환자 가족들의 불만은 계속됐다. 정부가 환자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한 복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은 채 행정적인 절차만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이항규 경기남지부장은 “이 자리는 많은 정신장애인들의 탈원화로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 나와 범죄를 저지를 것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재활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논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냐”며 “본질은 놔두고 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자리가 불편하다. 최소한 비차별적인 의료서비스와 행정절차, 서류로 인해 입원이 거부되고 치료받아야 할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 방치되는 일은이 없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태화샘솟는집 문용훈 관장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시 점검이 필요하다면 즉시시행과 일정 유예후 시행하는 것 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지난해 헌법불합치에서 확인된 입원기준의 모호성을 개선하기 위해 신경정신의학회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초발정신질환자에게는 자기결정권의 기회를 높이는 등 보다 나은 내용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원적절성심사위원회는 초기입원 평가와 계속입원 평가로 나눠서 진행해야 한다”면서 “현재 사회복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정원은 추정 중증정신질환자 대비 1.4%수준으로, 이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지금이라도 함께 논의해 문제를 최소화 해야한다”고 말했다.

자유토론에서도 정신질환가족단체 관계자들은 환자 가족이 포함된 전문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며 전인격적 회복중심 프로그램 시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복지부, 대거 퇴원 없을 것...법적 보완 약속

하지만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이 정신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근거를 마련한 법으로 현재보다 의미있는 한 걸음을 떼는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차전경 과장은 “법 명칭에서부터 복지가 좋아지냐고 묻는데, 단언컨대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법이 나오기 전에는 정신장애인의 복지에 대한 근거조차 없었다”면서 “개정 이후 환자들이 대거 퇴원할거라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주장은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전경 과장은 “입원적합성 심사에 한달이 걸리는 것은 행정적으로 어쩔 수 없고, 신체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더 위원회를 거치게 한 것”이라며 “사법심사는 행정적인 문제가 커서 아직 준비가 덜됐다. 공급자, 인권단체, 가족 등과 소통해 만든 시행규칙이 곧 공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간의료기관의 입원판정에 대한 지적도 최대한 인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고 법적 문제도 법률 자문단을 구성하는 등 다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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