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법률 위임 없이 처벌조항 둔 것 죄형법정주의 위반”
재판 중 의료법 개정으로 규정 신설…오는 6월부터는 처벌 가능

당직의료인으로 간호사만 배치했다는 이유로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요양병원 원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I 요양병원 A원장에 대해 검사의 상고를 각하며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검찰은 I 요양병원 A원장이 지난 2014년 6월 24일 오후 6시부터 25일 오전 9시까지 응급환자와 입원환자 진료를 위해 당직의료인을 두도록 한 의료법시행령을 지키지 않았다며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의료법시행령 제18조에서는 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입원환자 진료를 위해 당직의료인을 둬야 하며 이를 어길 시에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재판에 넘겨진 A원장은 “당시 병원에 간호사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면서 “의료법 조항은 당직의료인을 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수나 자격에 대해서는 제한하고 있지 않으며 병원 시설 외에서 대기하다가 호출이 있으면 병원에 와서 근무하는 경우에도 당직의료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법시행령에서 병원 규모에 따라 배치해야 할 당직의료인 수를 정하고는 있지만 법률의 구체적인 위임 없이 규정돼 있다”면서 “이를 근거로 형사처벌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원장의 주장에 이유가 없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법원은 “‘당직’이라는 단어는 근무하는 곳에서 숙직이나 일직 따위의 당번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며 “응급환자와 입원환자의 급박한 진료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만든 의료법 제41조 취지에 비춰봤을 때 병원 외부에 있다가 호출이 있으면 병원으로 와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당직의료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원장은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고등법원은 A씨의 주장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고등법원은 “의료법 조항으로 처벌되는 행위는 당직의료인을 전혀 두지 않은 경우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의료법시행령에 규정된 당직의료인 수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행위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처벌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은 “당시 A씨의 병원에는 간호사 3명이 당직의료인으로 배치돼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A씨가 의료법 조항을 위반했다고 할 수 없고 의료법시행령에서 정하는 당직의료인 수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A원장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법원의 판결이 정당하다며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전원합의체에서는 의료법의 위임 없이 대통령령인 의료법시행령으로 당직의료인을 규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한지를 재판의 쟁점으로 봤다.

전원합의체는 “시행령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모법인 법률의 위임 없이 개인의 권리 의무에 관한 내용을 변경·보충하며 법률에서 규정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규정할 수는 없다”면서 “특히 형사처벌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면서 법률에 명시적 위임범위를 벗어나 처벌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무효라고 하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견해”라고 설명했다.

전원합의체는 “의료법 제41조는 각종 병원에는 응급환자와 입원환자 진료 등에 필요한 당직의료인을 둬야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병원에 둬야할 의료인의 수와 자격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고 하위법령에도 이를 위임하고 있지도 않다”면서 “그런데도 의료법시행령 제18조 제1항은 당직의료인의 배치 기준을 임의로 규정했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의료법 90조에 의해 처벌이 되도록 형사 처벌의 대상을 신설 또는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료법시행령 제18조 제1항은 위임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무효라 판단된다”면서 “A원장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A원장은 처벌을 면했지만 오는 6월 21일부터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당직의료인 수와 배치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발의한 당직의료인의 수와 배치준을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는 6월 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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