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지 원격협진‧전원조정센터 확대 등 지지부진…현장에선 "실효성 의문” 지적도

지난해 9월 두살배기 아이가 수술할 병원을 못찾고 7시간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한 이후 정부가 전원시스템 등 '응급의료제도 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준비부족으로 시행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현장의 전원시스템 변화를 위해 ‘취약지 원격협진 시스템(3월)’을 구축하고 ‘다기관 동시 전원 요청(10월)’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준비가 더디고, 전원조정센터 확대도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급환자 전원 기준의 경우 오히려 응급의료기관의 전원을 제한해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정부와 현장 간 괴리감이 크다.

3월부터 시작되는 변화, 준비 상황은?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북대병원 중증외상 소아환자 사망사건 후속대책으로 응급의료 제도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당초 계획은 의료인의 전원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응급환자 전원지원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취약지 원격협진 시스템, 다기관 동시 전원 요청 가능 시스템 마련 등이 포함돼 있다.

이외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권역 내 중증응급환자의 최종 치료를 책임질 수 있도록 응급환자 전원 기준안을 마련하고, 전원조정센터 역할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 중 신속한 전원 지원·조정을 위한 응급환자 전원지원 정보시스템의 경우 취약지 원격협진 시스템과 다기관 동시 전원 요청 가능 시스템 구축이 골자지만, 아직 시스템 개발도 완료하지 못했다.

취약지 원격협진 시스템 구축은 현재 취약지병원에서 거점병원으로만 환자 정보를 보내던 방식을 개선해 권역센터 간에도 환자 검사·진단 정보를 공유해 응급환자 정보를 좀 더 빠르게 공유하는 것이 목적인데, 3월부터 시스템을 가동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취약지 원격협진 시스템을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3월 시작하기에는 촉박한 상황인데, 마냥 개발만 할 순 없어서 3월말에는 성능이 좋지 않은 베타버전이라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선 베타버전이라도 현장에 적용한 후 참여 의료진을 통해 개선사항을 접수해 개선해 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동시 다기관 전원 요청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기존 전화를 통한 전원 요청 외 애플리케이션이나 문자 등을 통한 전원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전원요청을 하려면 전화를 통해 하고 다시 데스크탑을 통해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앱을 사용하는 시스템을 마련 중”이라며 “데스크탑을 이용해 전원 요청을 해도 받는 쪽에서는 앱을 통해 확인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도 개선과 관련한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 중인데, 모든 시스템을 완성한 후 현장에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은 먼저 적용할 예정”이라며 “우선 도입하고 개선방안을 피드백 받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월이면 시스템이 가동돼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불완전한 시스템을우선 적용한 후 현장 목소리를 들어 개선해 나가겠다는 식이다.

전원조정센터 확대, 지원자 없어 난항

응급환자 전원조정 총괄기관으로 전원조정센터를 지정하고, 인력 등을 확충하겠다는 방안 역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윤한덕 센터장은 “센터 일이 3교대라 충원에 문제가 있다. 일단 현재 12명인 인력을 올해 20명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간호사 또는 응급구조사 등 병원경험이 많은 분들을 모집 중”이라고 밝혔다.

윤 센터장은 “지금쯤이면 이미 인력을 다 충원해서 교육시키고 현장에 투입해야 할 시기인데 아무래도 일 특성상 충원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윤 센터장은 “전원조정센터 기능 개선을 통해 동시에 몰리는 전화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동시에 오는 전화를 한번에 처리하지 못하면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외부에서 볼 때는 더 빨리 일처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정적 의견’ 많아

그러나 정부의 응급의료제도 개선 노력을 바라보는 응급의료 현장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우선 정부가 마련한 개선안이 실질적으로 현장의 전원업무 간소화를 이루기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외과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병원 응급실에 전화하면, 응급실에서 외과로, 외과에서 당직으로, 당직이 파트장으로 연락해 전원 가능성을 보는 상황”이라며 “이런 시스템에서 전원조정센터를 강화하고 각종 시스템을 도입해봤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별로 행정절차 간소화가 우선돼야 한다. 병원별로 전원과 관련한 총괄자를 한명 둬서 그 사람을 통해 모든 결정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전원조정센터 확대가 현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장의 의사들도 환자를 정확히 보지 못하면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전원인데,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오히려 전원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그렇다고 센터 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센터 인력을 100% 신뢰하기에는 아직 의문이 있다. 전원조정센터가 정말로 큰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대량 확보해 전국적인 단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정도가 아니면 아무리 센터 기능과 인력을 확대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응급환자 전원 기준안 둘러싼 이견 여전

시스템 구축과 함께 정부가 내놓은 또 다른 방안은 응급환자 전원 기준안을 마련해 3월부터 현장에 적용, 전원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 기준 원칙은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권역 내 중증응급환자의 최종 치료를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이다.

다만 ▲결정적 치료 불가능(대동맥박리, 사지절단 등) ▲재난 상황으로 인한 의료자원 고갈 ▲환자 및 보호자의 전원 요구(환자의 연고지병원 또는 요양병원으로의 전원 등을 환자·보호자가 요청한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전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서는 ‘현장의 자율성을 훼손해 적절한 전원을 막을 것’이라는 주장과 ‘권역외상센터 정도면 벌써 했어야할 역할’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환자 전원이라는 것이 당시 의료기관의 상황과 전문의 여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빠른 결정을 해야 하는데,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모두 처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해놓으면 이 기준을 지키느라 치료가 지연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수도권 내 권역응급의료센터 소속 한 외상외과 전문의는 “응급환자는 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책임지는 것이 맞다. 중증도에 상관없이 응급환자라면 우선 기본 처치는 해야 한다”며 “정부가 기준을 통해 전원을 막고 있다고 볼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권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그정도 역할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응급의료 개선 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12월에도 부산 김해에서 얼굴과 눈을 다친 응급환자가 지역 내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우리 병원까지 오는 사례가 있었다. 부산에 외상센터도 있고 응급의료센터도 있다. 굉장히 어려운 수술도 아니었다”며 “이런 일이 계속돼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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