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제내성결핵 치료 못하나 안하나①…사전심사제 있으면 뭐하나 최종 결정은 심평원 몫

지난해 정부는 OECD 국가 중 결핵 환자 발생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결핵 환자의 치료비 무료 지원, 학교·유치원·어린이집·산후조리원 등 종사자의 결핵 및 잠복 결핵 검진 의무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으며 결핵 퇴치에 나선 정부지만, 정작 다제내성결핵 문제에선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치료가 가능한 약을 정부가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일각에서는 치료가 쉽지 않고, 감염 예방도 어려운 다제내성결핵을 되레 간과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다제내성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2회에 걸쳐 살펴봤다.<편집자주>

# 제가 결핵이란 병을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당시엔 그저 감기처럼 스쳐지나가는 병으로만 알았습니다. 실제로 당시엔 완치 판정도 받았지요. 그렇게 결핵이란 병을 앓았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인 20대 결핵이 다시 저를 덮쳤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폐결핵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이후 1년 반 정도를 치료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검사를 했더니 1차 결핵약제 내성 반응이 나오더군요. 다제내성결핵이라고 하며 의사 선생님께선 다른 병원을 추천해주시더군요. 그곳에서 이 약 저 약 당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약제를 써봤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15년입니다

15년 간 안 써본 결핵 약이 없을 정도였지만 계속되는 내성과 부작용은 저를 낙담하게 만들었습니다. 15년 간 가래에서 내성균은 계속 나오고 오른쪽 폐의 위쪽은 결핵으로 모두 망가지고 공동은 커져만 가서 또다시 병원을 옮겨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새로운 병원에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으니 한번 써보자고 하시더군요. 다행히 신약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됐다면서요.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쓸 수 있는 약이라고 하는 델티바와 자이복스 2가지를 다른 여러 약제와 함께 복용했더니 15년간 가래에서 계속 나오던 내성결핵균이 2달이 지난 후에는 발견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완치의 희망을 본 거지요. 하지만 다제내성결핵이란 놈이 참 무섭고 끈질기더군요. 견디기 쉽지 않은 약물 부작용이 생긴 겁니다. 무릎 아래로는 감각이 거의 없더군요. 흡사 남의 살을 만지는 느낌이었어요. 아이들을 돌보기도 가사 일을 하기도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심하면 약을 중단하더라도 감각이상이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며 걱정하시더군요. 또 현재 6개월 밖에 쓰지 못하기 때문에 완치를 위해 베다퀼린이라고 하는 또 다른 신약을 함께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다만 고가의 신약을 사용하는 것은 행정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수십 년 간 저를 괴롭혀온 결핵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다시 찾은 병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심의 결과 제게 새로운 신약을 사용하는 것이 승인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현재 약제는 완치를 기대하기에는 약해서 다시 나빠질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데, 그리고 현재 약제를 계속 사용하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인데 말입니다. 혹시나 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 다시 내성균을 전염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과거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들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와 같은 환자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봤지요. 그런데 저와 비슷한 어떤 환자는 저는 승인받지 못한 새 약을 처방받아 사용앴다고 하더군요. 제가 사는 지역 보건소에 문의도 해 봤는데, 보건소 담당자조차 왜 승인이 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더군요. 의사 선생님께 호소를 해 봤지만, 방법이 없답니다.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왜 누구는 쓸 수 있는 약을 저는 쓸 수 없나요. 탄원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됩니다.

위 글은 인천에 사는 한 다제내성결핵 환자의 사연을 각색한 내용이다.

결핵 치료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전염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제내성결핵의 경우 약제 내성이 생긴 균이기에 이런 우려는 더하다. 정부가 결핵 치료를 적극적으로 나선 가장 큰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핵 전문가들 사이에선 위 환자처럼 다제내성결핵 환자 중에서 치료가 제한된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다제내성결핵환자 중에서도 중증에 속하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함에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1일부터 다제내성결핵 신약(서튜러(성분명 bedaquiline) , 델티바(성분명 delamanid)) 처방 시 보험급여 인정을 받으려면, 사전심사를 거치토록 '다제내성결핵 신약 사전심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사전심사제는 요양기관이 결핵 신약 심의를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하면 이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1차 심의를 하고, 이를 다시 심평원이 2차 심의를 해서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다.

하지만 결핵을 치료하는 일선 의료진들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결정과 상관없이 심평원에 의해 최종결정이 되는 구조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심의위에서 신약 사용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라고 뜻이 모아진 경우도 불승인처리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튜러와 델티바 두 신약을 함께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는 여지없이 불승인 처리가 되고 있다.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다른 약제만으로 효과적인 약제조합이 구성이 안 돼 신약사용이 필요하다고 해도 심평원은 다른 약제만으로 치료가 되니 신약사용을 인정치 않고 있다”며 “심지어 사전심사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두 신약 사용이 허용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없던 일로 치부하고 두 개의 신약을 연속이든, 동시든 사용하지 못한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승인 근거가 뭐냐고 물어도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뿐더러 현재로서는 재심을 요청할 수도 없고 심지어 환자가 3,000만~4,000만원 드는 약값을 본인부담 하겠다고 해도 쓸 수 없다"면서 "이는 결핵을 잡겠다던 정부가 정작 집중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은 방치하고 있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전심사제로 접수된 2차 심사건은 총 58건이며, 이 중 불승인된 건은 8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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