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청년의사는 최근 북토크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책에 관한 걸쭉하고 상큼한 이야기)’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전문기자 강양구(YG)와 의사 출신 저널리스트 박재영(JYP)이 진행하는 오디오 팟캐스트로, 저자(국내서) 또는 관련 전문가(번역서)가 게스트로 출연한다. ‘책걸상’ 5회와 6회에서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책 <면역에 관하여>를 다루었는데,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KAIST 의과학대학원 신의철 교수가 다음과 같은 서평을 보내왔다. 오디오 파일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앱을 다운로드 받은 후 들을 수 있다.

지난 연말, ‘청년의사’로부터 <면역에 관하여>라는 책을 갖고 북토크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다음 날 이 책을 사러 서점에 갈 때만 해도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일반 대중에게 면역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교양과학 서적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사서 2016년의 마지막 날에 읽기 시작하면서 예상과는 다른 이 책의 특이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2016년의 마지막 날과 2017년의 첫 날을 이 책과 함께 하게 됐다.)

한마디로, 이 책은 단순한 교양과학 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인 팩트에 대한 서술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저자인 율라 비스는 과학자가 아닌 논픽션 작가로서,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백신접종 거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슈들에 관해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시각들을 총동원하여 이 책을 썼다. 일단 작가가 백신접종과 관련하여 사고하고 천착한 깊이와 넓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의 과학자나 작가라면 백신접종 회의론과 옹호론 사이에서 과학적 또는 공중보건학적으로 무엇이 옳으냐를 논증하였을 텐데,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역사, 은유, 신화, 사회계급 등 인문학적 및 사회학적 시각으로 확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최근에 직접 육아를 하며 이 책의 주제인 백신접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사고의 범위를 이렇게까지 확장시킨 듯하다(고민을 한다고 모든 부모가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이러한 감탄과 동시에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백신접종 회의론과 옹호론 사이에서 치열한 공방이 있은 후 현재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된 상태라면 이런 폭넓은 관점의 에세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비합리적인 백신접종 회의론이 남아서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트럼프도 백신접종 회의론에 동조한 바 있다), 이런 폭넓은 관점의 에세이는 오히려 백신접종 회의론과 옹호론 사이의 논점과 전선을 흐리면서 회의론자들에게 심리적 위안과 면죄부를 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으로서의 면역’을 강조하며(이는 집단면역의 시각을 강조한 것이다) 백신접종을 분명히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확정적이지 못한 웨이크필드의 연구를 가져다가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데 썼던 사람들의 죄는 무지나 과학 부정이 아니었다(p.110)”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술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신접종 회의론과 옹호론처럼 중요하면서도 시시비비가 분명한 이슈일수록 옳은 것은 옳은 것, 틀린 것은 틀린 것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틀린 관점의 입장도 이해해 주는 관용의 시각은 악용되기 마련이다. (이 책을 추천했다는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는 책 자체에만 감탄했지 이런 부작용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저자가 백신접종과 관련하여 폭넓게 확장한 시각들 중 나의 시선을 가장 끈 것은 정의 및 윤리학 그리고 법률의 시각이었다. 백신접종을 통한 감염질환의 통제는 집단면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이 유효해지는 것이다. 즉 조금만 생각해 보더라도, ‘집단이 위험해지더라도 나(또는 내 자식)의 백신접종을 거부할 권리가 있을까?’ 또는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백신접종을 강제할 권한이 있을까?’ 등의 쉽게 답하지 못할 생각거리들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백신의 부작용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저자는 존 롤스의 정의론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는 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인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만약 백신접종을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권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반면 백신접종을 과학적으로 잘 이해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학의 문제로만 여기기 쉬운 백신접종을 이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도 있구나’하는 새로운 경험과 감탄을 공유하고 싶기에 적극 권하고 싶다.

의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이 맹목적이고 미신적인 시각과 첨예하게 충돌하는 것은 서구와 우리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슈들은 약간 다른 것 같다. 이 책의 주제인 백신접종 이슈는 서구에 비해 한국에서는 덜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지만, 서구에서는 사실상 ‘정리’된 이슈인 ‘정규의학 vs 대체의학(한의학)’의 대립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중요한 이슈이다. 특히 한국처럼 의료가 공동체로 묶여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에 율라 비스와 같은 저술가가 있다면, 백신접종이 아니라 ‘대체의학(한의학)’을 주제로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 <YG와 JYP의 책걸상> 5회와 6회는 2월 6일과 8일에 각각 업로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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