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원 원장의 미래 의료를 만나다

새해에도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인 CES에서는 올해도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이 소개되었고, JP 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는 일루미나가 새로운 차세대 유전체 분석 장비를 공개하면서 100달러에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선언했다. 이렇게 많은 뉴스들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에 대한 소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년 말, 길병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서 환자 진료에 적용하기 시작한 IBM 왓슨과 의사의 의견이 다른 경우 환자들이 왓슨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는 뉴스이다.

인공지능이 의료에 미칠 영향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갖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특성을 들면서 의사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의사라면 학생 때부터 늘 듣던 이야기 중에 ‘진단은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환자의 얼굴 색깔, 걸음걸이 등 모든 것을 종합해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이를 들어 단순히 의무기록 데이터에 바탕을 두고 진단하거나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를 따라오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이런 다수는 머지않아 극복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앞서 다룬 환자의 얼굴 색깔, 걸음걸이의 경우 지금은 의사가 진료실 내에서 보는 것만 가지고 진단한 반면, 다양한 센서들이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본격화 된다면 시간대별로 바뀌는 얼굴 색깔을 측정하고 이를 진단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가 장기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신용재라는 의료의 특성이다. 사용해보면 평가가 가능한 경험재나 사용하지 않고 주위에 잘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평가가 가능한 탐색재와 달리 신용재는 소비자들이 품질을 평가하기 어렵고 소비자의 마음속에 신뢰를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의료에서는 의사가 권유하거나 처방하지 않은 것은 신용을 부여 받기 힘들었다. 다양한 센서를 탑재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이 받아들여지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 중 하나도 아직 기존 의료계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병원에서 환자들이 의사보다 왓슨의 의견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뉴스는 이런 점에서 충격적이다. 의사의 위치를 보장해주는 근원인 신용에 대한 독점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료받은 환자 가운데 의사와 왓슨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까지 진료받은 환자들 다수는 여러가지 이유로 왓슨 진료를 받기를 강력히 원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상황을 아직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의료에서의 신용 독점이 강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신용을 나눠 갖기 시작하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의사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인공지능을 진료 현장에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적어도 아직은 인공지능이 갖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환자와 관계를 다지면서 신용을 쌓는 것이다. 또한, 과거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공지능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만성질환 환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시어머니로서 의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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