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두 교수의 Palliative Care

미국 속담에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두 대상을 하나의 잣대로 비교하려는 오류를 빗대어 ‘사과와 오렌지 사이의 비교’라는 표현이 있다. 비교할 수 없는 대상끼리 억지로 끼어 맞추어 비교하여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다. 애초부터 같지 않은 것을 같다고 우기면 얼핏 보기엔 그럴 듯 하게 들리 수도 있으나,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논리의 모순인가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학회나 그룹 미팅 등에서 이런 오류를 지적할 때 경험 많은 노 교수님 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들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논문이 쏟아지고,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청년의사들에겐 정보의 바다에서 어느 정보가 좀더 논리적은 근거를 보여주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상반되는 결론의 논문이 한꺼번에 나오기도 한다. 때론 원래 논문저자들의 결론에서 좀더 세밀히 분석하는 Subgroup analysis에서는 특정 환자군 에서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일이 다반사 이다.

Palliative medicine에 주요 환자 군은 대부분 노년층이 차지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생기는 각종 질환들이 이제 더 이상 치료 불능의 상태로 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심해지는 증상과 약해지는 심신을 다스리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하게 하는 오류들이 이럴 때 발생하게 된다. 대부분 우리가 의과대학이나 전문의 수련과정에서 배우는 의학논문결과나, 진단과 치료의 진료지침들은 대부분 이런 환자분들을 상대로 연구 되어 진 것이 아니다. 매년 어떻게 당뇨병과 고혈압을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료지침 등이 내과 학회를 통해 발표 되지만 이런 자료들이 우리가 매일 보는 70-80세 어르신들을 상대로 연구되어지지 않은 까닭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범하게 만든다. 당뇨병 치료 시 요구되는 혈당조절의 목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환자들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5년 또는 10년 후 심장과 뇌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최적화 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남은 삶의 시간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말기 암환자 분 들에게도 이런 당료병과 고혈압 치료목표를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그분들에게 당장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는 당장 조절되지 않는 당뇨나 고혈압 등에 의한 급성 증상 등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치료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흔히 처방하는 아스피린, 고콜레스테롤 치료제 등은 이런 환자들에게 중단을 권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의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 이해 되어서 왜곡되고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을 삶을 이어가는 환자들에게 시간과 금전적 낭비는,물론 이로 인해 약물의 부작용 등으로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면 안될 것이다.

항암제에 대한 연구도 대부분은 70세 이하의 비교적 젊은 연령층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결과를 토대로 개발된 것이다. 80세 노인이 이를 근거로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과를 보면서 오렌지와 비교하려는 논리적인 오류에 가깝다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들이 진료실에서 많이 다루어 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이 약제가 어느 정도의 효능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 할 수 있다.

우리가 진료실에서 환자와 이야기 할 때 가장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환자 개개인에 대한 특수한 상황은 어떤 단 하나의 논문과도 일치하기 힘들다는 점이고, 다만 그런 비슷한 상황과 결과를 근거로 추론하기를 기대 하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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