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단체협의회, 정책워크숍 열고 공중보건 실태와 개념정립 논의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공중보건의 위기. 개인 의료서비스에 편중되면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공중보건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국내 보건의료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공중보건단체들이 연대해 공중보건단체협의회를 만들며 국내 공중보건체계의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도출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공중보건단체협의회(이하 공보협)는 대한예방의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한국보건행정학회, 한국농촌의학지역보건학회, 지역보건연구회, 지역보건의료발전을 위한 모임 등 6개 단체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여기에 대한공공의학회와 전국보건소장협의회가 참관단체로 참여하기로 하고, 최근 보건간호사회도 공보협에 합류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서울의대 교육관에서 정책워크숍을 열고, 공중보건과 공공보건, 공공보건의료 등 공중보건을 둘러싼 용어들의 개념이 무엇인지부터 논의했다.

공중보건활동을 하는 이들 모두가 그 노력과 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중보건의 위상에 대한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한데, 가장 먼저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

이에 이날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건강정책학회장)는 ‘한국 보건의료체계에서 공중보건의 위상과 역할’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다.

김창엽 교수는 “공중보건은 지금대로 가면 실패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공중보건을 비롯한 보건에는 권력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 교수는 “권력(power)이라는 관점에서 보건을 바라보면, 보건에는 권력이 없다. 사람들이 보건이라는 말도 잘 모르고 있으며, 대선 공약에서도 보건을 제시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공중보건은 열위에 있고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서 공공(public)은 주로 ‘정부’를 뜻하지만 유럽국가에서는 본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공공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보건은 ‘공공’-‘후진’에, 의료는 ‘민간’-‘선진’이라는 이분법으로 인식하는 등 우열을 가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공공이 민간과 대응되는 개념으로 자리잡는 기본 보건의료체계가 갖춰지고, 민간이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보건의료 전반의 구조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공중보건이 취약한 사회적 권력으로 받아들여져 이대로 가다가는 해체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대체로 보건은 국가권력과 정부가 주체이면서 인구집단에 비해 비치료적, 비의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장소도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로 인식됐다”면서 “문제는 이러한 이해조차 사회적으로 뿌리박히지 못하고 있어 특별한 사회적 개입이 없이는 추세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공중보건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실체로서의 체계가 정립돼 있지 않고, 목표 정의도 모호하다”면서 “제공해야할 공중보건서비스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공중보건을 독립된 체계로 사고하고 목표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공중보건체계에서 people을 고려하는 것은 전세계적 추세로, 시민참여 모형 또는 사람중심의 공중보건으로 시각을 이동해야하고, 이때 정부와 전문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영남대 의과대학 이경수 교수(농촌의학지역보건학회장)은 미국 공중보건의 사례를 들며 지역중심 사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경수 교수는 “공중보건의 미션, 정체성에 따른 역할, 용어 정리가 돼야 지식의 축적과 그에 따른 파워가 형성된다”면서 “우리나라는 공중보건에 대한 개념정립이 미흡한 상황에서 민간 중심의 견고한 프레임이 구축됐다”고 말했다.

이에 이 교수는 “지역이 주도를 하는 주민참여의 사업방식을 통해서 공중보건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야하는 발상이 필요하다”면서 “시민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것이 지역의 파워와 관심, 시스템화를 높일 수 있다. 다만,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 장안구보건소 김혜경 소장(대한공공의학회장)은 “지난 30년간 지역보건에서 근무하면서 몇차례 떠나고 싶었던 고비가 있었다. 지자체에서는 보건소의 위상이 매우 낮아 어떠한 정책결정에 끼어들 수 없었다”라며 “하지만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이 분야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정부가 메르스 대책위를 만들때도 예방의학은 제외한 감염내과 등의 의료인을 중심으로 한 것을 보면, 의료만으로 메르스 등의 감염병을 관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만성질환도, 감염병도 치료만으로 관리할 수 없고 공중보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복지부가 보건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여전히 공중보건에 대한 제대로된 논문을 쓴 사람이 없다”면서 “공보협이 TF를 만들어서 주체적인 노력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건국의대 이건세 교수도 “보건의료가 관심을 못받는 분야인 것은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마이너라고 한눈을 팔다가는 없어지게 될 것”이라며 “공중보건, 공공의료가 해야할 일은 굉장히 많다. 그만큼 하는 만큼 새로운 것을 발굴할 수 있고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오히려 전문가들이 정치권과 공무원을 상대로 더 많이 싸우고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라며 “이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활동했는가를 고민하고 노력해 나가야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